조선대 의전원 가해자

4시간 반 동안 여친 폭행

갈비뼈 2개 부러져

대학 측 소극적 대처 ‘비판’

여론 악화되자 가해자 ‘제적’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1일 조선대 정문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교과과정에 폭력예방 인권교육 과정을 편성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광주여성의전화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1일 조선대 정문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교과과정에 폭력예방 인권교육 과정을 편성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광주여성의전화

대학생 A씨는 남자친구 B씨와 만난 지 한 달째 되던 날부터 데이트 폭력을 겪었다. 하지만 A씨는 1년 간 B씨와 헤어지지 못했다. 둘의 관계는 폭행 후 40일간 끌려다니던 A씨가 탈출한 후 남친을 형사고소하면서 끝났다. 

A씨는 “전에 만난 여자친구도 한 번 때린 적이 있다더라. 그때도 울고불고 빌면서 붙잡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A씨는 헤어지지 못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A씨는 “마지막에 진짜 심하게 맞았을 땐 얼굴이 선풍기 아줌마처럼 돼버렸다. 40일간 씻지도 못하고 끌려다니면서 하루 한 끼도 못 먹었다”며 “남친이 처음 폭력을 행사했을 때 바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고 했다.

연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치닫는 ‘데이트 폭력’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결혼을 반대하는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살해하는가 하면 트로트 걸그룹에서 보컬로 활동했던 여가수를 남자친구가 흉기로 사망케 한 사건, 헤어진 여자친구를 폭행하다 엘리베이터 통로에 추락하게 한 사건 등 생명을 위협하는 잔인한 폭력이 횡행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광주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생 박모(34)씨가 같은 의전원 동기인 여자친구 이모(31)씨를 감금·폭행한 사실이 공개돼 공분을 샀다. 박씨가 저지른 폭력은 예비 의사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했다. 박씨는 3월 28일 새벽 이씨의 집에 찾아가 전화 응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씨를 4시간 30분 동안 감금하고 무차별 폭행했다. 폭행을 당하던 이씨가 방으로 피신해 경찰에 신고하자 따라 들어가 전화기를 빼앗고 폭행을 계속하기도 했다. 이씨는 갈비뼈 2개가 부러지는 등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다. 녹취 내용을 보면 가해자는 “지금까지 진짜 수천 번 죽여버리고 싶은 거를… 죽여버릴 수 있으니깐 진짜 속이 편하다”라는 등 살해 위협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광주지방법원은 폭행 혐의(상해)로 기소된 박씨에게 벌금 12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학교에서 제적될 위험이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혀 봐주기 논란을 빚었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교육부는 1일 실태 파악에 나섰고 조선대는 이날 오후 학생지도위원회를 열어 박씨의 소명 절차를 거친 후 최종 제적처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학생 간 격리를 하지 않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하다 여론이 악화되자 이런 결정을 내려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인권침해가 자명한데 피해자의 고통에 눈을 감고 가해자를 동정한 것이 상식 이하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의전원을 졸업한 후 의사가 되면 생명을 다루는데 인권의식 없는 의사가 환자를 어떻게 대할지 끔찍하다는 것이다.

여성단체들은 조선대 의전원 사건 피해자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현재 이씨는 가해자를 동영상 유포, 협박 건으로 추가 고소해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 상태다. 한국여성의전화(여전)와 광주여성의전화는 피해자의 항소심과 검찰 수사 과정에 계류돼 있는 사건에서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여전은 피해자 지원 서명운동도 벌이기로 했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심각한 데이트 폭력을 겪어도 가해자가 처벌받는 경우가 드문데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권리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며 “다만 전문 기관의 도움 없이 8개월 동안 홀로 사건에 대응해 안타깝다. 데이트 폭력은 개인이 해결하긴 어렵기 때문에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데이트 폭력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특수성이 있다보니 피해자가 사건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조선대 의전원 사건도 피해자가 큰 고민 끝에 대응에 나섰을 것”이라며 “데이트 폭력은 가정폭력, 아내 폭력과 같은 양상을 띤다. 인권을 침해당한 뒤에도 데이트, 연애라는 환상에 빠져 상대가 ‘변하겠지’라고 받아주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단 한 번의 폭력도 있어선 안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폭력의 특성상 한두 번의 용서로 상대가 변화되지 않는다. 매 맞는 아내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더 심각한 폭력으로 되돌아온다”고 말했다.

조선대 의전원 사건 피해자는 데이트 폭력 후 심각한 2차 피해를 겪었다. 의대생 일부가 단체 카톡방에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메시지를 주고받은 메시지가 공개돼 시민들이 광주여성의전화에 제보와 항의를 하기도 했다. 박종희 광주여성의전화 대표는 “시민들은 ‘이런 인성을 가진 예비 의사를 국가가 키워야 한다니 걱정스럽다’ ‘가해자는 제적됐지만 같은 학교에 이런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면 피해자가 어떻게 학교에 다니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며 “피해자가 현재 가해자를 상대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보복 피해나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피해자 지원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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