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축구선수 지소연

여자월드컵 16강 이끈 ‘첼시 10번’ 공격수

‘지메시’보단 ‘작은 마법사’ 마음에 들어

축구선수로서의 꿈은 ‘발롱도르’

또 다른 꿈은 엄마 찜질방 선물 

“선배로서 부담감 크지만 내 숙명”

 

26일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지소연 선수가 경기도 파주시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대표팀 선수들과 오전 훈련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6일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지소연 선수가 경기도 파주시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대표팀 선수들과 오전 훈련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올해 최고의 여성 스포츠 선수를 뽑는 2015 대한민국여성체육대상에서 최고상인 ‘윤곡여성체육대상’은 국가대표 여자축구 대표팀의 주장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 선수에게 돌아갔다. 그는 “수많은 여성 스포츠인들이 탄 상을 받게 돼 기쁘다”면서 “2008년에 신인상을 수상한 이후 7년 만에 대상을 받게 돼 정말 영광스럽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대상 수상에 이견을 다는 이는 없었다. 그만큼 올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열린 여자월드컵(6월 7일~7월 6일)에서 한국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끌고, 첼시 레이디스 소속으로 등번호 10번을 달고 잉글랜드 여자프로축구리그(WSL)에서 뛰며 팀의 리그 우승과 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최근엔 국가대표팀 주장까지 맡으며 ‘캡틴 지’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얻었다. 2008년 윤곡여성체육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축구 신동’은 7년 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스타로 성장했다. 그런데 직접 만난 그는 스물 넷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축구 신동에서 한국 대표 축구 스타로

“안녕하세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에선 영락없는 운동부 이미지가 떠올랐다. 지소연 선수와 마주 앉은 곳은 시상식 대기실이었다. 대한민국여성체육대상 시상식 직전 메이크업 아티스트로부터 화장을 받던 그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는 말을 이어가다가도 메이크업 브러시가 얼굴에 닿을 때마다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입술에 립글로스를 바를 때는 간지럼을 참지 못해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화장을 거의 해본 적이 없어요.”

스물넷 지소연은 직접 화장을 해본 적도, 시상식을 제외하곤 원피스를 입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이날 준비한 의상도 드레스가 아닌 블랙 슈트였다. “지난 4월에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P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을 때 부상으로 정장 맞춤권을 받았는데, 옷을 맞추고 오늘 처음 입는 거예요. 안감 진짜 예쁘죠?” 그는 재킷을 들춰 안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슈트는 영국의 전통 맞춤 정장점 스토워스(Stowers) 제품으로 영국 왕실과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 스포츠 스타 등이 주요 고객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축구를 시작하고 지난 15년간 그의 인생에는 오로지 축구밖에 없었다. 서울 이문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한 축구는 그의 특기이자 취미였다. 운동으로 받은 스트레스도 다시 축구로 풀 정도였다. 축구에 ‘올인’한 만큼 실력도 성장했다. 2010년 U-20 월드컵에서 실버볼·실버부트를 수상하며 한국 여자축구를 사상 최초로 4강(3위)에 올려놨고, 2011년부터 3년간 일본 고베 아이낙에서 활약하며 48경기에서 21골을 넣었다. 한국 여자 선수로는 처음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이뤄냈다. 영국 진출 당시 “이름을 알리는 것이 목표”라던 그는 첫해에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노력한 만큼 빠른 결실을 이뤄낸 셈이다.

“많이 부족한데도 첫해에 상을 받게 돼서 놀랐어요. 특히 2년 차인 올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첼시 레이디스가 리그 우승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우승을 하게 돼 기뻤죠. 사실 2년 차 징크스를 걱정하는 분들도 계셨고, 저 스스로도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축구 태교’한 어머니의 뒷바라지

지소연 선수는 영국에서 적응하는 일도 모범생처럼 최선을 다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영어를 배우면서 언어나 문화, 다른 축구 스타일에 차근차근 적응했다. “작년엔 감독님 앞에서 입도 벙끗 못했지만, 요즘엔 조금, 정말 아주 조금 할 수 있게 됐어요. 영국인들 앞에선 영어가 나오는데 아직 한국인들 앞에서 영어하긴 어렵네요.”

지소연 선수의 성공 뒤엔 어머니 김애리씨가 있다. 김씨도 초등학교 시절 운동을 했다. 주변의 권유로 핸드볼을 했지만 어려운 가정 살림으로 포기해야 했다. 그런 시기를 겪었기에 힘들더라도 재능 있는 딸을 밀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소연 선수도 엄마의 적극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소연 선수가 엄마 유전자를 많이 닮은 것 같다”는 말에 김씨는 “엄마 유전자를 닮았는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제가 워낙 축구를 좋아해 소연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축구를 즐겨보면서 ‘축구 태교’를 한 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재능을 타고난 ‘축구 신동’이었지만 그의 축구 인생에도 굴곡은 있었다. 그는 지난 캐나다월드컵에서 허벅지 부상을 당해 16강전에 결장했을 때와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을 가장 힘든 순간으로 꼽았다.

“가장 최근에 힘들었던 때를 꼽으라면 월드컵 때죠. 16강전에 대한 주변의 기대도 컸고, 저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는데 부상을 당해 16강전에 뛰지 못한 게 좀 힘들었어요. 그리고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것 같아요. 축구가 늘지 않아 고민이 많았죠. 되돌아보면 ‘너무 자만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 감독님인 최인철 감독님께서 절 불러 ‘이렇게 하면 큰 선수가 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확 와 닿았어요. 그때부터 정신 차리고 다시 열심히 했죠.”

 

10월 5일 선덜랜드 레이디스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지소연 선수가 환호하고 있다. ⓒ첼시 레이디스 공식 페이스북
10월 5일 선덜랜드 레이디스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지소연 선수가 환호하고 있다. ⓒ첼시 레이디스 공식 페이스북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지소연 선수만큼 별명이 많은 선수도 드물다. 키가 작고 얼굴도 까매서 ‘지똥이’, 가는 팀마다 하느님처럼 팀을 잘 이끈다고 해서 ‘지느님’, 플레이 스타일이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와 비슷해 붙여진 ‘지메시’, 친한 동료들 사이에선 ‘쏘발이’ 등. 그는 수많은 수식어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애칭으로 ‘작은 마법사(little magician)’를 꼽았다. 제2의 메시, 제2의 박지성이라고 불리던 그에게 처음으로 그의 경기 스타일에 맞춰 팬들이 직접 지어준 별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국 선수들은 빠르고 피지컬이 좋아요. 반면에 저는 체구는 작지만 패스와 드리블로 영리하게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팬들이 작은 마법사라고 부르더라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괜찮았어요.”

무릇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다. 대한민국 축구의 무게중심인 그에게 쏠리는 기대는 책임감인 동시에 부담감이기도 하다. 그도 “부담감이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한국 선수로서 해외에 진출해 있다 보니 행동이나 말 한마디도 조심하게 되죠. 선배가 되고 주장을 맡으면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특히 제가 평소 운동장에서 약간 덜렁대고 무게감도 없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해외 경력이 많다보니까 감독님께서 경험을 팀에 전해달라는 취지에서 주장 자리를 주신 것 같아요. 부담감은 크지만 제가 짊어지고 가야 할 것 같아요. 당연히.”

 

그는 꿈을 묻는 질문에도 한참이나 고민했다. “한국을 알리고, 한국에 좋은 선수가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어요. 월드컵에 나가 좋은 성적도 내고 싶어요. 축구를 하면서 계속 열심히 뛰어야죠. 언젠가 FIFA 발롱도르(올해의 선수상)를 받고 싶고요. 그런데 이게 꿈인가요, 목표가 더 정확한 표현 같기도 하네요.”

지소연 선수의 또 다른 꿈은 어머니께 찜질방을 차려드리는 것이다. 그는 웃으며 “아직 준비가 덜 됐지만 곧 차려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스물네 살 또래의 모습이 엿보였다. 세계무대를 휘젓는 그는 또래의 평범한 삶이 부럽진 않을까. “간호사를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긴 하지만 축구만 하다보니 평범한 친구가 많진 않아요. 그런데 문소리 선수나 아이를 낳은 친구들을 보면 빨리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이며 “네 명을 낳고 싶은데, 힘드니까 쌍둥이를 낳고 싶다”고 수줍게 말하는 지소연 선수에게서 스물네 살이라는 나이가 느껴졌다.

초반에 무표정한 얼굴로 “낯을 가린다”던 그는, 인터뷰 막바지에 다다르자, 사진기자의 요구대로 꽃받침 포즈도 하고, ‘브이’도 하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가 밝힌 대로 “털털하고 까부는” 자연인 지소연의 모습이었다.

 

지난 11월 12일 볼프스부르크와 1차전 홈경기에서 볼다툼을 벌이고 있는 지소연 선수. ⓒ첼시 레이디스 공식 페이스북
지난 11월 12일 볼프스부르크와 1차전 홈경기에서 볼다툼을 벌이고 있는 지소연 선수. ⓒ첼시 레이디스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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