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 목적예비비로 3000억원 우회 지원

전국 교육감·보육단체 “무상보육 약속 어디로”

‘무책임한 대통령 공약사업’ 날 선 비판 이어져

 

3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사당 자이어린이집의 영아들이 놀이시간을 갖고 있다.
3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사당 자이어린이집'의 영아들이 놀이시간을 갖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회는 예산 심의 마지막 날인 12월 2일 반드시 누리과정 예산 2조원을 편성하고 매년 반복되는 누리과정 문제로 인한 갈등과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이청연 인천시 교육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등 수도권 교육감 일동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누리과정 예산은 3000억원의 목적예비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 같은 새해 예산안은 법정시한인 2일을 넘겨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정부가 찜통 교실, 노후 화장실 등 시급한 학교시설 개선을 위해 목적예비비 3000억원을 지원함으로써 누리과정 예산을 우회 지원하는 형태다. 여야의 대립이 치열했던 누리과정 예산이 미봉책에 그치면서 3~5세 영·유아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내년도 보육 대란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내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에 필요한 예산은 시·도 교육청 추산 약 2조1000억원이다. 정부·여당은 무상보육 예산은 각 지방교육청이 부담하게 돼 있다며 국고지원 불가 뜻을 고수했다. 교육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재정의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한 만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도 교육청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도 교육청과 야당은 정상적인 누리과정 운영을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며 맞섰다.

전국 시·도 교육청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3일 성명을 내고 “우회지원 방식으로 3000억원을 편성한 것은 누리과정 예산으로 인한 갈등과 혼선을 또다시 반복하게 만드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시·도 교육청의 누적 지방채는 이미 10조원을 넘어섰다. 서울, 경기를 비롯한 9개 시·도 교육위원회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있으며, 경기도의회는 지난달 30일 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예산마저 삭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부모들만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누리과정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누리과정 예산을 누가 부담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학부모는 “정부와 시·도 교육청이 3년째 싸우고 있어서 이제는 누구 말이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며 “아이들 교육은 중요한 문제인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건 무책임한 행태”라고 꼬집었다.

한편,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전국어린이집연합회, 전국보육교사총연합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실현전국학부모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보육·교육 단체는 “박근혜 대통령이 누리과정 예산 파동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0~5세 영유아 보육과 교육의 국가완전책임제’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누리과정 무상보육 30만원 지원은 어디로 갔나. 2016년에 완전 무상제가 시행된다고 했는데 22만원도 제대로 편성되지 않고 있다”며 “누리과정 3~5세아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보육·교육 과정에 대한 국가완전책임제는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 과정에서 약속한 일이다. 국가 장래를 위해 보육과 교육에 진정한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당연한 책무다”라고 말했다.

최은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누리과정 공약이 나왔을 때 학부모 입장에서 굉장히 반겼는데 결국 예산이 수반되지 않은 빈 공약이었다”며 “학부모로서 참담한 심정이다. 우리 아이들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미 유치원과 국·공립 어린이집, 민간 어린이집 순으로 서열화가 진행됐고, 가장 열악한 민간 어린이집의 타격이 크다. 집 앞에 있는 어린이집을 놔두고 멀리 있는 유치원으로 몰린다. 보육 대란이다. 더는 학부모들 간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마음 편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보육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누리과정 예산을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