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디자이너 이서윤

한국무용가에서 한복 디자이너로 변신

‘별에서 온 그대’ 김수현 한복 만들어

 

‘이서윤 한복’의  이서윤 대표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배우 김수현의 한복을 만들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서윤 한복’의 이서윤 대표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배우 김수현의 한복을 만들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복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한복에 꿈을 싣고 사는 디자이너 이서윤이라고 합니다.”

‘이서윤 한복’ 대표 이서윤(40)씨의 자기소개는 인상적이었다. 짧은 자기소개에도 꿈과 열정이 느껴졌다. 자기 일에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일에 ‘미쳐’ 있음은 물론이다.

‘일지매’ ‘아들 찾아 삼만리’ ‘왕녀 자명고’ ‘성균관 스캔들’ ‘옥탑방 왕세자’ 등 각종 방송 드라마에서 의상과 장신구를 제작한 그는 SBS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배우 김수현의 한복을 만든 디자이너로 더욱 명성을 얻었다.

“어릴 때 한국무용을 하다가 운명같이 한복을 하게 됐다.” 사실 그는 춤추는 사람이었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에게 한복은 늘 가까웠다. 버선을 신고 연습복을 입어야 하는데 남이 만든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내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겁 없는 용기가 생긴 그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한복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서윤 대표는 한국무용을 전공하다가 한복을 직접 만들게 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서윤 대표는 한국무용을 전공하다가 한복을 직접 만들게 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학에 들어가고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처음으로 슬럼프가 찾아왔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하루에 4개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이들도 가르치고, 서빙도 하고, 주방 일도 하면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빨리 알게 됐다. ‘아, 뭔가 열심히 해도 어른이 되면 무조건 가질 수는 없는 거구나’ 싶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집에서 재봉틀을 하게 됐는데 정말 좋더라. 춤도 생각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재봉틀로 옷과 소품을 만드는 걸 지켜본 그에게 옷 만드는 일은 낯설지 않았다. 한복 학원에서 기술을 배우고, 독학으로 실력을 쌓은 그는 1999년에 7평짜리 한복 가게를 열었다. “원장님 계신가?” 손님들은 가게 안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를 한복 가게 주인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큰 벽은 편견이었다.

“일단 내가 좋으니까 개의치 않고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머니도 ‘왜 네가 남의 속바지까지 만들어 입혀야 하느냐’고 반대하셨다. 만약 내가 양장을 만들었다면 유학도 다녀오고 뭔가 있어 보였을 거다. 한복은 문화유산이라는 인식 때문에 폐쇄적이다. ‘이렇게 어린데 무슨 한복을 해?’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도 어리고 젊은 남자고…. 극복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어려운 길로 걸어왔을까’ 후회하면서도 좋아서 계속 이 길을 걸었다.”

 

직접 만든 한복을 입고 한국무용을 선보이고 있는 이서윤 대표 ⓒ이서윤한복
직접 만든 한복을 입고 한국무용을 선보이고 있는 이서윤 대표 ⓒ이서윤한복

나이 어린 한복 디자이너가 설 곳은 많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사막이었다.” 지지 기반이 없는 그에게 한복연구가 허영(1947~2000) 선생의 옷은 교과서이자 롤 모델이었다. 이 대표는 “그분의 옷을 봤을 때 심장이 아팠다”며 “선생님의 모든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허 선생의 옷을 따라 하던 그에게 돌아온 말은 “네가 허영 선생이냐? 왜 카피를 하지?”라는 조롱이었다. ‘허영이 될 수 없구나’ 깨달은 그는 ‘나만의 것을 꼭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노력파다. 단골 매장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SBS 방송사 의상팀 직원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겼고, 1년이 지나서야 퓨전 사극 ‘일지매’의 의상 디자인을 맡게 됐다. 기대했던 일이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나이가 어리고, 존재감이 없던 그를 믿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기죽어 있을 수는 없었다. “전통 복식에 서구적인 향기를 입혀 퓨전의 특별한 맛을 내겠다. 대중이 입고 싶어 할 한복을 만들고 싶다”고 디자인 방향을 제시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한복을 해도 되는구나’ 많은 꿈과 희망이 밀려온 시간이었다.

이서윤 대표는 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관하는 멘토링 프로젝트 ‘신나는 언니들’의 첫 남성 멘토이기도 하다.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힌 이 대표는 “앞으로 평등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며 “많은 분야에서 여자와 남자를 따지지 않고 같이 나누고 공존하게 될 것”이라며 편견과 싸워온 멘토답게 전망했다. 이 대표는 “한복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인내를 가지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면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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