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여성·인권단체, 27일 대토론회 ‘성평등 정책, 이론, 운동의 방향과 미래’ 열어

“정부 성평등 인식, ‘기계적’ 평등에 머물러… 실망스럽다”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성소수자 여성 배제·차별 조장”

“성 주류화 전략 재점검과 여성의 정치세력화 필요”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60개 여성·인권단체는 지난달 25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양성평등기본법 개정 이후 후퇴되는 성평등 정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60개 여성·인권단체는 지난달 25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양성평등기본법 개정 이후 후퇴되는 성평등 정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가족부는 나를 똑바로 보세요.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지난 10월 10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여성 성소수자 궐기대회’에서 터져나온 외침이다. 지난 8월 여성가족부는 ‘대전시 성평등기본조례’의 성소수자 인권 보호·지원 조항이 “모법인 ‘양성평등기본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대전시에 조례 개정을 요청했다. 여성·성소수자 단체는 “여가부가 성소수자 여성을 여성정책에서 배제했다”며 즉각 규탄했다. 여가부는 침묵했다. 일부 단체가 여가부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부됐다. 대전시는 관련 조항을 내년 1월까지 삭제키로 한 상태다. 

여성의 권리 신장과 성평등 실현에 힘써야 할 여가부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최근 잇따랐다. 양성평등기본법 개정 이후 성평등 정책이 후퇴했다는 우려도 크다. 

지난달 25일 60개 여성·인권단체가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러한 요지의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27일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7개 단체가 중앙대 법학관에서 연 대토론회 ‘성평등 정책, 이론, 운동의 방향과 미래’에는 200여 명이 참석해 정부의 성평등 정책 관련 이슈와 전망을 논의했다.

1부 주제는 ‘한국 성평등 정책의 토대와 방향을 다시 짚는다’로, 배은경 서울대 교수, 나영정 SOGI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류민희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소수자인권위원회) 등이 발제했다.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이사, 난새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박진경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장)가 토론에 참여했다. 사회는 조숙현 민변 여성인권위원장이 맡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7개 단체가 지난 11월 27일 중앙대 법학관에서 대토론회 ‘성평등 정책, 이론, 운동의 방향과 미래’를 열었다. ⓒ이세아 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7개 단체가 지난 11월 27일 중앙대 법학관에서 대토론회 ‘성평등 정책, 이론, 운동의 방향과 미래’를 열었다. ⓒ이세아 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7개 단체가 지난 11월 27일 중앙대 법학관에서 대토론회 ‘성평등 정책, 이론, 운동의 방향과 미래’를 열었다. (왼쪽부터)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조숙현 민변 여성인권위원장, 난새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이사, 박진경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장 ⓒ이세아 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7개 단체가 지난 11월 27일 중앙대 법학관에서 대토론회 ‘성평등 정책, 이론, 운동의 방향과 미래’를 열었다. (왼쪽부터)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조숙현 민변 여성인권위원장, 난새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이사, 박진경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장 ⓒ이세아 기자

올해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여성 혐오는 더욱 노골적이고 일상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여성 혐오 현상은 온라인 전체로 퍼졌고,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는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동성애 반대 시위를 열고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국제 성평등·인권 기준에도 한참 뒤처졌다는 평가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의 ‘2015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국 145개국 중 115위였다. 유엔 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한국 성소수자 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하며 한국 정부에 유례없이 강경한 시정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최근 ‘양성평등기본법 논란’은 이러한 젠더·섹슈얼리티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모순이 더욱 심화했음을 보여줬다. 특히 “여가부가 ‘양성평등’을 기계적 평등으로 해석해 젠더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했다.

앞서 김희정 여가부 장관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여성만 신경 쓰지 말고, 남성도 함께 챙겨달라는 요구도 종종 듣는다. 새해 여성가족부 모법이 ‘여성발전기본법’에서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돼 시행되는 것을 계기로,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일하는 명실상부 ‘양성 모두의 부처’로 거듭나겠다”고 말해 여성계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정 이사는 “여가부가 보여준 ‘여성과 남성이 일대일로 이야기되면 평등하다’는 식의 인식은 ‘여성부가 있으면 남성부도 있어야 한다’ ‘남자도 군대 가니 여자도 군대 가라’ 식의 인식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성차별에 대한 기본 인식도 없고,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의 지위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도 “젠더 관점 없는 국가와 국회로 인해,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이해보다는 여성 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 무분별하게 생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 6월 30일 공개한 양성평등기본법 카드뉴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 6월 30일 공개한 '양성평등기본법 카드뉴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홈페이지 캡처

‘양성평등 정책’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자주 제기됐다. 여성정책 전문가들은 양성평등기본법의 개정 의도가 여성정책을 양성평등 정책으로 전환하자는 것인지, 여성을 대상으로 했던 정책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는 뜻인지, 성소수자처럼 ‘제3의 성’을 위한 정책도 고려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봤다.

박 교수는 “양성평등기본법상 ‘양성평등’은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며 “여기서 ‘성별’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고,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적 성(gender)을 의미해 왔다는 점에서 성소수자를 제외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실제 정치·정책에서의 ‘양성평등’과 정책 연구에서의 ‘젠더 관점’ 사이에 상당 부분 괴리가 존재한다”며 “여전히 한국 여성정책은 성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치적 의제의 측면보다, ‘정책의 대상 혹은 수혜자’로서의 (생물학적) 여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이 이러한 국가의 섹슈얼리티 규제에 대해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한 결과”라고 나 상임연구원은 분석했다.

배 교수는 “양성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불평등의 완화를 위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여성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런 관점에서 여성정책은 정책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의 문제다.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힘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류 변호사도 “빈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다양한 비시민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주변화·배제되는지 검토해야 한다. 또 거시적 관점에서 복지국가의 재편과 여성정책을 연계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캐나다에서는 남녀 동수 내각이 출범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인권에 대해 직접 논의조차 한 적 있는가”라며 “거꾸로 가는 한국의 성평등 정책을 근본부터 점검해야 한다. ‘젠더’와 ‘성주류화’의 정의와 목적을 분명히 하는 법 제정 작업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들의 참여도 촉구했다. 박 교수는 “기계적인 참여가 아니라, 현존하는 차별과 폭력 해소, 여성의 권리 증진 및 세력화, 성차별적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로서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2부에서는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 다시 짜기’라는 주제로 토론이 진행됐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사회를 맡은 가운데, 정현희 SOGI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 이나영 중앙대 교수 등이 열띤 논의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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