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노인 10명 중 4명이 빈곤하다면, 여성노인은 10명 중 5명이 빈곤하다. 여성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성의 생애 과정 전반에 주목해야 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남성 노인 10명 중 4명이 빈곤하다면, 여성노인은 10명 중 5명이 빈곤하다. 여성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성의 생애 과정 전반에 주목해야 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노인 10명 중 5명이 빈곤

노령기만 주목해선 근본 해법 어려워

젠더 불평등, 노후 빈곤으로 이어져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빈곤한 집단이 노령집단이라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노령층 빈곤율은 50% 수준을 육박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노령빈곤율의 3배에 달한다. 특히 여성 노령 집단은 남성 노령 집단보다 더욱 빈곤하다. 남성 노인이 10명 중 4명이 빈곤하다면, 여성노인은 10명 중 5명이 빈곤하다.

산업 사회에서 빈곤은 결과적으로 최저 생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화폐적 빈곤으로 단순히 표현되곤 하지만 사실상 빈곤은 노동 시장, 국가 사회보장, 가족, 정치 참여 영역 등 다층적 차원에서의 차별과 배제의 과정이 복합적으로 쌓인 최종 결과다. 여기에 차별과 배제가 생기는 전체 영역을 가로지르는 젠더 불평등이 결합되면서, 노령 여성은 생애 전 과정에 걸쳐 다양한 차원에서 자원 배분의 기회로부터 차단당하고 불이익이 누적된 결과로 가장 높은 빈곤 위험 집단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여성 노인의 빈곤 개선책을 모색할 때 노령기에만 주목해서는 근본 해법을 얻기 어렵다. 오히려 빈곤을 만든 여성의 생애 과정 전반, 특히 경제 활동의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활동의 불이익을 유지 혹은 개선시키는 사회보장 제도, 특히 노후 소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연금 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경제 활동기의 성과는 경제 활동기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령기 소득 수준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국민연금 같이 보험료 납부 실적에 따라 연금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 경제 활동 참여 여부와 참여의 질이 노후 소득 보장 수준과 직결된다. 따라서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경제 활동 참여의 질을 높이는 것이 노후 소득의 안정적 확보와 젠더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는 모성기에 뚝 떨어지는 여성 고용율을 어떻게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 개인 차원에서는 모성기에 노동 경력을 단절하지 않고 어떻게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노동 시장 참여를 지속할지가 여성의 노후 빈곤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의 모성기 고용율의 감소 폭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현격히 크고, 이것이 압도적으로 높은 노령 여성 빈곤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동 경력 단절 후 노동 시장으로 재진입하는 경우 이전의 노동 지위를 유지하는 경우보다는 낮은 일자리로 편입될 수밖에 없는 노동 시장 상황이 노령기 여성 빈곤을 계속 재생산하는 핵심 고리가 되고 있다. 일‧가정을 양립하며 모성기 고용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보육 서비스 지원과 모성‧부성 육아휴직 제도를 보편화하는 것이 필수다.

돌봄 노동을 사회적으로 재평가해야

일자리 질의 측면에서 여성의 일자리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 돌봄 서비스의 사회화와 함께 돌봄 서비스와 관련해 많은 여성 일자리가 늘었지만, 일자리 질의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일자리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지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서구의 많은 돌봄 서비스 일자리들도 낮은 질의 일자리가 되면서 일자리의 매력이 급속히 쇠퇴했다. 일자리는 있으되 노동 공급을 원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을 가져와 돌봄 서비스 인력 수급에 매우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주로 여성이 맡는 돌봄 노동의 화폐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 없이는 여성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여성 노인의 결과적 빈곤화 과정에 돌봄 노동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빈곤으로 가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돌봄 노동을 사회적으로 재평가하고, 일자리 질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의 사회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여성 노인 빈곤의 해법으로 제도적 측면에서 경제 활동의 성과와 노후 소득 간에 중재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 활동 성과에서의 젠더 격차를 여성 노인 빈곤으로 직결시키지 않고 완화 내지 해소할 수 있는 기제가 연금 정책을 통해 일정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금 정책을 젠더친화적으로 설계한다면, 노동 시장 젠더 격차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예컨대 노동 시장의 성과와 관계없이 시민권과 거주에 기반해 연금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초연금’이 대표적인 젠더친화적 연금 형태다. 특히 한국 사회와 같이 젠더 격차가 극심한 노동시장 환경 아래서는 보편적 기초연금 제도가 더욱 젠더친화적 연금제도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여성의 연금권 확보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유족 연금은 혼인 상태 변동에 따라 연금 수급 여부가 결정되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이혼, 재혼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족 연금은 안정적 노후 소득 보장 수단이 점차 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또 혼인 기간 동안 만든 연금 자원을 이혼 시 배우자 간 동등하게 배분하는 것을 제도화한 분할연금이나 여성의 출산 양육에 대한 사회적 보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 연금 보험료를 납부해주는 연금크레디트 제도는 여성의 연금수급권 확보에 도움은 되지만, 이를 여성의 독립적인 연금권 확보 수단으로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출산크레디트 제도는 둘째 자녀 이상을 둔 국민연금 가입자나 가입자였던 사람에게 둘째 자녀에 대해 12개월을, 셋째 자녀부터는 18개월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가산해 연금액을 올려주는 제도다. 넷째 자녀를 낳으면 총 48개월을 추가로 인정해주지만 다섯째 자녀는 모두 합해도 50개월로 가산해준다. 국민연금은 최소 가입 기간이 10년인데 출산으로 경제활동을 못 하는 여성들에게 혜택을 줘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출산을 장려하자는 취지로 시행됐다.

이에 비해 시민권과 거주에 바탕을 둔 보편적 연금권은 보편적인 소득자-양육자 통합 모델에 입각해 여성과 남성이 노동 시장에서의 일과 가정에서의 돌봄 활동을 함께 해 나가는 과정에서 연금권을 확보해 나가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 될 것이다.

1인 1국민연금을… 출산크레디트, 첫째부터 적용해야

이 과정에서 보편적 기초연금은 남녀의 돌봄 활동에 대한 사회권적 보상으로 기능하면서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물적 기반으로 작동할 것이며, 노동 시장 활동에 기반을 둔 보험료 갹출연금은 노후의 적정필요소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서 노령 빈곤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시민권과 거주에 근거한 연금권은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 간 차별을 없게 만든다. 사회권에 대한 젠더 격차를 효과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인 셈이다.

시민권과 거주에 바탕을 둔 연금권이 젠더 관계를 개조할 수 있다는 세인즈베리(1996)의 조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유독 높은 한국의 노령 여성 빈곤율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한국의 여성노인 빈곤을 개선하고 여성 연금권 보장을 위한 연금 개혁 방향은 보편적 소득자-양육자 모델을 발전 방향으로 두되 실제 현실에서 뒷받침되지 않는 간극은 연금크레디트 제도 등 젠더친화적인 연금 제도로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해 기초연금 도입으로 한국의 노동 시장 상황과 사회경제적 특성상 보험료 갹출에 기반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달성하기 어려운 1인 1연금을 담보하는 제도적 틀을 갖추게 됐다. 즉 기초연금을 통해 1인 1연금이 달성돼 국민연금에서 배제된 노령층이 기초연금을 통해 세대 간 이전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 그러나 기초연금은 그 급여 수준이 제한적이라 젠더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도와 여성 노후 빈곤을 개선할 수 있는 정도도 한정된다.

여전히 노후 소득 보장에서 국민연금 제도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성도 1인 1국민연금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출산 연금크레디트의 개선은 여성의 국민연금권 확보에 중요한 정책 수단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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