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사진으로 보는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수십 년 만에 귀국해서 일단 통영 지역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로 작정한 처형 부부의 이사도 도울 겸 일도 볼 겸 며칠간 통영과 거제를 다녀왔습니다.
그 덕에 통영의 명소인 ‘동피랑 벽화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로 통영의 ‘동피랑 마을’은 늘 방문해보고 싶었던 곳인데 거의 일 년 반이 지나서야 이번에 시간을 내서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피랑은 통영의 가장 큰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편, 경사도가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마을로 일제강점기에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외지인과 빈민들이 모여들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통영의 달동네 마을이었습니다.
‘동피랑’은 ‘동쪽 벼랑’이라는 의미로, 지금도 5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마을의 가장 높은 지점은 조선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6년 가을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예술을 통한 도심 재생 그리고 주민을 위한 재개발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이 공모전에는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 등 18개 팀이 참가해 벽화를 그렸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여드는 아름다운 동피랑... 그들의 꿈이었을까요?
“모든 것은 모든 이를 위하여! 소수의 탐욕자를 위한 것이 아닌!”이라는 글이 씌어진 이 벽화는 ‘동파랑 색칠하기’ 사업의 취지를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쌔기 오이소! 동피랑 온당꺼지 온다고 욕 봤지예! 짜다리 벨 볼끼 엄서도 모실 댕기드끼 어정거리다 가이소.”(어서 오세요! 동피랑 언덕까지 오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별 볼거리가 없어도 마을 다니듯이 천천히 둘러보세요.)
방문객을 향한 통영 사투리의 인사말이 정겹습니다.
동피랑마을이 벽화마을로 재탄생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구경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지역에서 점차 동피랑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자 통영시는 동포루 주변 지역 공원화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동포루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마을 꼭대기의 집 3채만을 헐어내는 선에서 마을 철거 방침을 철회했다지요.
동피랑 마을에 마침내 아름다운 사람들의 꿈이 만들어 낸 꽃이 활짝 피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 불량 주택 집결지로 철거 대상이었던 동피랑 마을은 우리나라 최초로 마을 담장과 축대에 그림을 그린 ‘동피랑 벽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와 같이 동피랑 마을 구경 한번 해 보실까요?
길가 전신주에 ‘동피랑 벽화마을 입구’라는 팻말이 얌전하게 붙어 있습니다.
골목을 들어서면 ‘동피랑 삼시세끼’라는 음식점이 나옵니다. 메뉴가 참 다양한 것 같네요.
차로 올라가기도 간단치 않은 급경사길 위에 자리잡은 ‘언니는 동피랑 스타일’.
‘앉아서도 먹고 가면서도 먹는’ 커피를 파는 집이랍니다. 자칭 통영본점입니다.
통나무의 끝 부분에 서서 한 발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 마치 통나무 위에 외발로 올라선 것 같은 사진이 되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포토존으로 유명합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됐네요… 괜찮아 보이는가요?
“진정한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자신의 말보다 우선시하는 거야!”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서 파는 2000원 짜리 가격 착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저 ‘텅빈 의자’에 한 번 앉아보고 싶은 느낌이 듭니다.
2014년 한 해에만 160여 만 명의 관광객이 동피랑 마을을 찾았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 생겨난 마을기업들의 수익도 크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다양한 그림과 소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동피랑 마을, 그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아이들… 현실은 어려워도 날고 싶은 동심은 다 같은 것이겠지요.
하늘색 벽에 그려진 아름다운 색깔의 나비… 그 카페의 이름은 ‘천사의 날개’.
‘참 좋을 때다!’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더군요.
머리를 싸매고 공부에 몰두하는 학생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고),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는 글귀.…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길의 축대 역시 빈 자리는 없습니다.
아름다운 동피랑 마을, 그 가운데 통영 출신의 시인 김춘수 님의 시도 있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보글보글 맛있는 라면’이라는 간판이 향수를 자극합니다.
동피랑의 벽화들은 2년마다 공모전을 통해 새로 그림을 그려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축대나 벽들이 낡아서 자칫 벽화가 흉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과거에 다른 분들의 블로그에서 본 그림들이 보이지 않아서 참 이상하다 생각하며 두 차례를 갔었는데, 이유는 2년마다 새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라는 군요.
“너는 좋은 이웃과 푸른 하늘과 꽃을 더불어 살아라.
그 거리를 지키는 고독한 산정(山頂)을 나는 밤마다 호올로 걷고 있나니….”
이웃 거제도 출신인 청마 유치환 시인의 시 ‘너에게’의 한 구절입니다.
이제는 보기 힘든 공중전화 앞에서 그 옛날의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어보고 싶네요.
한쪽 구석에 좀 흐릿하게 그려진 그림도 있습니다. 뭐! 예술이니까….
이것으로 아쉽지만 사진으로 보는 동피랑 마을 관광을 마칩니다.
동피랑을 떠나면서 고개를 들어 전망대 쪽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몇몇 여학생이 수다를 떨고 있고, 그 아래에서는 한 여학생이 휴대전화로 셀카를 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피랑은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그날 저녁 통영 시내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 옆자리의 젊은이들이 주고받는 동피랑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게 되더군요.
만약 그 젊은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 전 통영시 당국이 2년마다 열리는 벽화전이 예산 낭비라는 점을 내세워 공모전 주기를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기로 하고, 벽화유지 보수비 1000만원을 제외한 공모전 관련 예산 1억원을 전액 삭감하려고 하다가 시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게 되자 슬그머니 없었던 일로 넘어갔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면서 시가 나서서 지난 여름에 이 동피랑 벽화마을 사업을 처음부터 주도해 왔던 ‘푸른통영21’이란 시민단체를 해산시켰다고도 하더라고요.
동피랑의 벽화마을은 관광객 유치를 통해 마을 자체만이 아닌 통영시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왔고, 이웃한 중앙시장이나 서호시장 등과 엮어 잘 발전시키면 통영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도 있는 아이템입니다.
‘윤이상 기념공원’이나 ‘박경리 기념관’ 등 지역과 관련된 문화와 예술적 자산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으며 그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통영시 당국이 무슨 이유로 그런 효자 아이템을 홀대하는지 모르겠네요.
통영시에 계신 분들은 문화사업과 지역경제 발전의 상관관계와 세계적인 트렌드에 대해 지금부터라도 공부 좀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동피랑은 이제 통영시만의 것이 아닌, 우리 나라의 관광 자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