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시원한 돌풍이고 신드롬이다. 나 같은 클래식 문외한도 가슴을 설레게 하고 세상을 관조한 듯한 미소의 주인공인 한 젊은이의 쾌거에 신이 난다. 신문 스크랩 병이 도져 관련 기사만도 파일이 넘친다. 비슷비슷한 기사라 다 읽을 필요는 없지만 제목과 사진만 봐도 흐뭇해지고, 여러 사회적 갈등의 고조(高潮)로 답답했던 마음을 정화해 준다.

인터넷으로 실황 방송을 보는 평소에 하지 않던 짓도 반복한다. 나비넥타이의 자신감 넘치는 젊음과 당당함이 자랑스럽다. 음반 5만 장이 일주일 만에 매진되고, 음반을 먼저 손에 넣겠다고 줄서기라는 진풍경도 “아 나만의 생각이 아니구나!”임을 확인해 준다. 통상 2000∼3000장 정도 발매되고, 1만 장을 내는 경우도 어려운 클래식 시장에 10년 내의 대기록이라는 기사와 한국인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이라는 낭보보다 그 이후의 스토리 전개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엘리트 체육이 주는 논란만큼이나, 자녀에게 음악 등 예능에 올인하는 경우를 보고 뒷담화를 듣는다. 그만큼 사례가 많기 때문이리라. 그 자체를 비판하거나 탓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경쟁과 소자녀 시대에, 내 자식 잘 키우겠다는데 누가 이견을 말하랴. 작금의 세태는 그런 비판자를 자신이 못 하니 배아파하는 무능함의 표상으로 치부하기도 하니까.

철학의 새로운 해석과 참신한 이론으로 주목을 받는 서강대 최진석 교수님의 강의가 생각난다. 우리가 일을 구분할 때 “바람직한 일은 바라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은 하고 싶은 일이며, 좋은 일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강의록에 적혀 있다. 바라는 일, 하고 싶은 일보다 나은 게 좋아하는 일이고 그 일을 하는 게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흔하게 회자(膾炙)되는 산업화 사회의 워크 하드(Work hard)가 지식 정보화 시대의 워크 스마트(Work smart)로, 그 다음의 경지가 워크 펀(Work fun)이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본다. 그렇다. 죽어라 시키는 일만 하는 인간이 어찌 “좋아서 즐기며 일하는 사람”을 인생의 장기 레이스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부모 세대의 한풀이와 대리만족이라도 하려는 듯 자식을 들볶아 경쟁의 장으로 밀어 넣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애들 말만 듣고 마음대로 놓아 키운다고 아내에게 핀잔 받던 나마저도 어쩌면 그랬는지 모른다. 그 흔한 치맛바람과 금수저도 없고, 이유는 잘 몰라도 나는 잘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심지 깊은 소년과 죽어라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고 격려만 해준, 그리고 국가적 경사에 그 흔한 인터뷰도 사양하는 부모의 얘기는 감동 그 자체다.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도와주고 조연으로 만족하는 보통 이상의 부모다.

훌륭하게 장성한 아들을 누군들 자랑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리고 본인도 조금은 우쭐해도 될 만하고 그럴 나이가 아닌가. 절대적 탁월함과 초월적 연주로 음악계를 제패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내겐 연주가 휴식이고, 죽을 때까지 무대에 오르는 것이 꿈”이라는 이 소박한 말 한마디보다 더 멋진 말은 찾기 힘들다. 이것도 말이 안 되지만 고교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대학교에 보낸 자녀의 수강까지 챙기고 취업, 나아가 직장의 승진문제까지 따진다는 엄친 얘기도 들리는 세태다. 자연산이 아닌 양식장의 물고기처럼 과보호를 받고 자란 친구가 조직이라는 사다리를 어찌 오를지는 자명하다. 인생은 한 번의 레이스가 아니라 즐기며 가야 할 여행인 것이다.

졸저인 『소담한 생각 밥상』에서 여러 장을 할애해 우리 교육정책과 현실의 문제를 다루었다. 내 주장과 딱 맞아 떨어지는 최상의 사례를 만나 반갑다. 스스로 공부하고 좋아하는 일로 일가를 이뤄가는 젊은이가 넘쳐나는 사회는 건강하다. 더 어린 나이에 같은 상을 받아 스타덤에 오른 중국이 낳은 천재 피아니스트 윤디 리의 얘기도 잊지 말자. 조급함과 과도한 기대가 낳은 젊은이의 실수로 넘기자. 늦었지만, 다행히 사과도 했다고 하니.

조성진 같은 청년이 있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은 것이니, 그를 당분간 그냥 놓아주자. 기다리고 인내하는 대범함 속에 기량과 인간됨의 그릇은 커 간다. 1년을 넘게 끄는 서울시향의 잡음이 왜 오늘따라 더 소란스럽게 들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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