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내전 성폭력 피해 생존자 사피 춘구라 바하티

필리핀 성매매 생존자 알마 G 불라완

13일 정대협 초청 심포지엄서 ‘증언’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폭력을 효과적인 ‘전쟁 무기(Arme de guerre)’로 여기는 나라, 이게 콩고민주공화국의 현실입니다.” 사피 춘구라 바하티(50)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는 지난 13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연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해 ‘전시하 여성폭력’에 대해 증언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한 국제심포지엄 전시하 여성폭력에 도전하는 국제 여성행동이 열렸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한 국제심포지엄 '전시하 여성폭력에 도전하는 국제 여성행동'이 열렸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제공

 

발언 중인 사피 춘구라 바하티 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제공
발언 중인 사피 춘구라 바하티 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제공

콩고 내전이 다시 시작된 2012년 10월, M23 반군들이 콩고 동부 루추루의 뷔토 마을 농장에 난입했다. 사피의 가족이 일구던 카사바 농장이었다. 반군들은 사피의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사피를 돌아가며 강간했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몇 시간을 그대로 있었습니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어요. 겨우 마을로 돌아와 남편의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가족들은 내게 ‘이 공동체에서 지낼 수 없으니 떠나라’며 쫓아내더군요. 콩고에서 강간당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존재로 취급받거든요.” 

콩고 적십자사의 도움으로 병원에 간 후에야 사피는 임신 사실을 알았다. 낙태하려 했지만, 사피를 돕던 NGO 활동가가 ‘그것은 죄’라며 말렸다. 반군의 성폭행으로 낳은 아이는 이제 세 살이 됐다. “아버지를 본 적 없는 아이가 불쌍하면서도 마음이 괴롭다”고 그는 말했다. 

 

발언 중인 알마 G. 불라완 부크로드 대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제공
발언 중인 알마 G. 불라완 부크로드 대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제공

“저는 성매매 생존자입니다.” 필리핀에서 온 알마 G 불라완(54)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1980년대 초 약 5년간 필리핀 수빅만 미군기지 근처 술집에서 일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다. 

본래 알마의 꿈은 회계사였다. 학비를 대주겠다던 친오빠를 만나러 1984년 미군 주둔지인 올롱가포 시로 갔지만, 지원은커녕 “네가 미군과 결혼해 가족을 부양하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알마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장이었고, 생계가 막막했다. 결국 미 해군 기지 근처 한 술집 종업원으로 취직했다. 알마 대신 ‘펄’(Pearl)이라는 별명을 썼다. 술집 관리인은 ‘성매매를 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알마를 협박했다. 일주일 내내 하루 9시간 이상 무급으로 손님을 받아야 했다. 일하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됐다. 5년간 알마에게는 30명의 미군 ‘남자친구’가 생겼다.

“성매매를 하지 않으려 했지만 돈이 필요했어요. 그때는 의료 프로그램도 없었고, 아무도 피임약을 사용할 줄 몰랐지요. 콘돔 사용을 거부하는 손님도 많았고요.” 1987년 알마는 셋째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러나 사피와 고마는 주저앉지 않았다. 이들은 성폭행·성매매 생존자들과 연대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고 사회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피는 현재 콩고 북키부 주 고마 시에서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 ‘우시리카(Ushirika)’의 도움을 받아 살고 있다. 콩고 적십자사를 통해 난리 통에 잃어버린 자식 7명 중 6명과도 재회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뜻을 담아 설립된 ‘나비기금’ 지원도 받고 있다.

“제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들, 특히 다른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만나며 힘을 얻었어요. 사회에서 낙인찍힌 이들이 함께 경험을 나누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사피는 “한국에서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치유할 기회를 얻게 돼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알마는 1988년부터 기지촌 여성들의 모임 ‘부크로드(BUKLOD)’ 대표를 맡고 있다. ‘부크로드’란 필리핀어로 ‘유대’ 또는 ‘연대’를 뜻한다. 성매매·인신매매 피해자들과 탈성매매 여성들을 지지·교육하는 한편 반성매매법 제정 노력에 힘써 왔다.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여성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미군 군함의 필리핀 방문·활동도 감시하고 있다.

알마는 2009년 국제 여성 봉사단체인 소롭티미스트 필리핀 협회로부터 ‘무명의 여성 영웅’ 상을 받았다. 그는 “고통을 딛고 일어서서 목소리를 내는 모든 여성들,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미래를 위해 뛰는 모든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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