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다른 남녀가 같이

사는 집은 쉽지 않아

한쪽이 포기하거나

어정쩡하게 살거나

남녀 취향이 한바탕

충돌 벌이는 집이 건강하다

 

최근 인기몰이를 했던 로코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혜진과 성준이 결혼을 하면 어떤 집에서 살까? 혜진과 신혁이 맺어진다면 또 어떤 집에서 살까?” 드라마 속에서 패션잡지 부편집장 성준이 사는 집은 인테리어를 빼 갖춘 오피스텔이다. ‘똘기’ 충만한 기자 신혁은 한 수 더 떠서 아예 호텔 스위트룸에서 산다. 혜진이는 모태 친구 하리와 함께 작은 단독주택에서 산다. 제법 깔끔하게 리모델링을 했지만 동네 한 구석에 있는 작은 집이다. 연한 파스텔 색조와 오밀조밀 동화적인 냄새가 가득한 집이다.

신데렐라 동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여자와 마치 소설『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 같은 남자가 결혼하면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됐던 것이다. 그래서 밥 주고 빨래해줘서 좋다는 호텔에서 살고는 있지만 포장마차 떡볶이와 슈퍼 앞 일회용 라면을 즐기는 남자와 맺어지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것은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다. 물론 돈도 변수로 작용하지만 성향이 더 큰 변수다. 그런데 취향의 문제가 되면 의외로 맞추기 어렵다. 드라마에서는 그 취향조차 신분세탁하듯 바꾸지만, 취향이란 마치 체취와 같은 것이어서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취향을 길게 따라 하다가는 체증이 걸리고 자칫 화병도 생긴다.

취향이 다른 남녀가 같이 사는 집이란 그래서 쉽지 않다. 드라마 속 혜진과 하리처럼 같은 성에다가 어릴 적부터 서로의 체취를 맡으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외려 같이 살기 편하다. 이것도 혜진이 하리의 화려한 취향에 주눅들지 않고, 하리가 혜진의 ‘만원’ 패션에도 예뻐 죽겠다고 할 수 있을 때다. 뭔가 삐끗할 때 제일 먼저 걸리적대는 것이 취향의 문제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남녀가 같은 집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든 과제다. 근본적으로 생리와 체격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거니와 취향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집에 대해서라면 아예 접어주는 게 상책’임을 깨닫고 그렇게 사는 남자 역시 속으로는 불만이 쌓일지 모른다. ‘남자가 좋아해주는 집을 만드는 완벽한 아내’가 되고 싶다는 여자의 스트레스 지수는 올라갈지도 모른다. 아예 ‘타인의 취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둔감한 남녀가 있을지도 모른다.

공평하게 맞춘다고 중성적인 집이 될 수도 없거니와 패션처럼 유니섹스 스타일이 되기도 쉽지 않다. 이럴 땐 여성, 저럴 땐 남성 식으로 양성적으로 만들기도 쉽지 않다. 많은 남녀가 어느 한 쪽이 포기하거나, 대충 어정쩡하게 살거나, 대충 어설픈 ‘믹스’ 종으로 살거나, 그냥 어느 한 쪽이 잠만 자며 살기도 한다.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남녀가 아예 같이 살지 못할 것은 아니다. 사실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접어주고 서로 신기해하며 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어정쩡한 평화나 휴전 상태보다는 남녀의 취향이 한바탕 충돌을 벌이는 집이 차라리 건강하다. 그 충돌 속에서 새로운 케미가 솟아날 가능성도 높아지니 말이다. 우리 집에선 어디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을까? 한번 관찰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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