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에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기 시작하면,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취업상담을 위해 연구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어떤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좋은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스펙은 어떻게 정리하면 효과적인지 등 다양한 문제와 고민들을 쏟아낸다. 여러 학생들의 이런저런 어려움과 고민들을 들으면서, 각자가 나름의 능력이 있는 우수한 학생들을 보듬고 껴안아 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우리 기성세대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절로 숙연해진다.

많은 학생과 면담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어려움을 알게 되는데, 먼저 자신이 어떤 분야로 진출해야 하는지, 어떤 부문의 업무를 해야 하는지, 어떤 기업에 가고 싶은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다는 점과 또한 조금 더 학교에 다니면서 스펙이나 경험, 능력을 보완한 뒤에 사회로 진출하려고 학생의 신분을 최대한 연장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결국 많은 학생이 오늘 이 시간 결정하는 일을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면서 미루고자 하는 것이다. 어떠한 분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누가 대신 결정해주는 것이 아닐진대 스스로 선택해야 하며, 내년이나 후년으로 미룬다 해서 올해보다 상황이 더 나아지기는 어려워 보이므로 바로 지금 자신의 미래와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선택하기를 두려워하고 겁내는 학생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한다.

사실 매일매일 결정하고 선택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가기 어려운 것이 우리들의 삶 아닌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무엇을 타고 갈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것을 선택해야만 하고 또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지적한 것처럼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의 연속이다’. 결국 우리들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선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경험하는 무수한 선택 중에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먹는 것, 입는 것, 배우자 선택, 직업 선택 등 수많은 선택 중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남녀 대학생 397명을 대상으로 ‘선택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민에 대한 20대의 태도 및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20대가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선택은 ‘점심 메뉴를 고를 때(51.4%)’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의류를 구입할 때(18.9%)’와 ‘중요한 날 아침 옷을 고를 때(16.1%)’의 순이었다. 이러한 선택을 왜 어려워할까? ‘원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34.8%)’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선택하고 후회하는 것이 싫어서(23.4%)’ ‘원하는 것이 뭔지 몰라서(21.4%)’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때문에(10.1%)’ 선택이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결과가 비단 20대에게만 해당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경험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를 선택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한 가지를 결정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데 바로 이 때문에 결정하기를 미루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푸로스트는 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노란 숲속에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 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라면서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많은 학생이 지금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미루고 싶어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는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두 갈래가 있다고 두 길로 걸어갈 수는 없는 것이고, 결국 ‘선택한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해도’ 한 가지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선택은 기회비용을 지불하게 되더라도 오늘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이며, 그래서 선택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용감한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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