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의 러시아 기행 / 상트페테르부르크

1896년 러시아 황제대관식 참석한

민영환, 윤치호 여정 따라

러시아 제국의 수도를 가다

이범진 주러시아 공사,

을사늑약 후 공관 폐쇄 명령 거부

대한제국 무너진 후 끝내 자결

 

피의 구세주 사원. 알렉산드르 2세가 테러를 당했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주진오
피의 구세주 사원. 알렉산드르 2세가 테러를 당했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주진오

 

대한제국 공사관 자리를 알리는 표석 ⓒ주진오
대한제국 공사관 자리를 알리는 표석 ⓒ주진오

사실 이번 러시아 여행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작해 모스크바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 글은 역순으로 모스크바에서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1896년 러시아 황제대관식에 참석한 민영환, 윤치호의 여행을 따라가 보려는 것이었다.

조선인 사절단의 머나먼 여정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삽산’이라는 이름의 고속열차를 타고 갔다. 709㎞를 4시간 동안 한 번도 서지 않고 달렸다. 러시아에서 특이하게 느낀 점은 역의 이름이 도착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를 가는 기차역의 이름은 모스크바역이다. 반대로 모스크바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를 타는 역의 이름은 레닌그라드역이다. 레닌그라드는 소련 붕괴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환원되기 이전의 도시 이름으로 왜 아직도 역의 이름은 그대로 쓰는지 궁금했다.

1896년 조선인 사절단도 기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했다. 당시 그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14시간 가까이 타고 간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렀던 곳인 가빈네스키가는 현재까지 학자들이 위치를 찾지 못했다. 네바강과 넵스키 대로와 가까웠다는 것은 나타나는데 지금은 그런 지명이 없는 것이다.

네바강이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장 큰 강이다. 강가에는 유명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있고 황금의 돔으로 유명한 성 이삭 성당 그리고 유명한 표트르 대제 청동 기마상이 있다. 강 건너에는 표트르 대제가 처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할 때 만든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가 있다. 요새 안 성당에는 표트르 대제를 비롯한 로마노프 왕가가 묻혀 있다.

우선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는 그 엄청난 규모에 압도됐다. 다빈치의 명화를 비롯해 매우 다양한 지역과 시대의 그림과 유물들이 끝없이 전시돼 있었다. 이곳은 황실의 겨울궁전이었던 곳이라 중간중간 너무도 아름다운 방과 복도들이 있다. 특히 다빈치, 렘브란트, 루벤스, 반 다이크의 그림이 역시 인상적이었다. 혹시나 해서 가장 한산한 3층의 동아시아 전시실을 어렵게 찾아갔는데 한국 유물은 전시돼 있지 않아 아쉬웠다. 약탈해온 유물이 대부분인 루브르나 대영박물관과 달리 에르미타주는 모두 구입한 유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성 이삭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황금 돔이 있는 종교 건축물이다. 이 건물에는 전망대가 있어 21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가면 시내를 360도로 볼 수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올라가 보는 곳이다. 또한 피의 구세주 사원이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비잔틴과 러시아 양식을 섞어 놓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건물 같은 곳이다. 여기서 알렉산드르 2세가 테러를 당했다고 해서 피의 구세주 사원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실제로 성당 안에는 그가 죽었던 자리를 보존하고 있다.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부근에는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궁전과 정원들이 많다. 민영환과 윤치호도 여기서 황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특히 여름 궁전과 예카테리나 궁전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두 군데를 모두 갔지만, 예약이 차서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정원만 둘러보았다.

 

페트페트로 파블롭스크 성당 ⓒ주진오
페트페트로 파블롭스크 성당 ⓒ주진오

 

표트르대제 청동기마상 ⓒ주진오
표트르대제 청동기마상 ⓒ주진오

 

여름궁전에서 바라본 경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부근에는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궁전과 정원들이 많다. 민영환과 윤치호도 여기서 황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주진오
여름궁전에서 바라본 경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부근에는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궁전과 정원들이 많다. 민영환과 윤치호도 여기서 황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주진오

“양반네 진지상에 웬 장도?”

여름궁전은 30분 정도 수중익선이라는 배를 타고 간다. 이곳은 특히 거대한 분수가 인상적인 곳이다.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볼 수 있는 발트해의 모습도 아름답다. 푸시킨에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에는 보석의 일종인 호박으로 꾸며진 방이 유명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넓은 정원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다. 규모가 엄청나서 호수를 도는 데만 해도 두 시간이 걸렸다. 마침 해가 질 무렵이라 아름다운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을 포함해서 처음 러시아를 돌아봤던 1896년의 사절단 중 한 사람이었던 김득련이 남긴 글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눈에 비친 서양 여성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상한 색깔이지만, 눈 하나는 시원한 서양의 요조숙녀들, 어찌 그리 요란한 옷을 입고 있는가? 내 얼굴이 잘생겨서일까, 아니면 남녀칠세부동석을 몰라서일까? 거침없이 군자의 옆자리에 다가와 재잘대누나.” 아마 요즘도 처음 서양에 가게 된 사람들이 처음 보는 남자에게 인사를 건네는 여성들을 착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을 듯한데, 이때도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처음 대했던 서양 요리를 먹는 풍경은 어떠했을까. “양반네 진지상에 웬 쇠스랑(포크)과 장도(나이프)는 등장하는가? 입술이 찢기지 않으면서 접시의 물건을 입에 넣는다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구나. 희고 눈 같은 것(설탕)이 달고 달기에 이번에도 눈 같은 것(소금)을 듬뿍 떠서 찻종지에 넣으니 그 갈색 물(커피)은 너무 짜서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더라. 노르스름한 절편(치즈)은 맛도 향기도 고약하구나.” 여기서 잠시 해석을 하면, 쇠스랑이란 포크이고 장도는 나이프, 희고 눈 같은 것 가운데 처음은 설탕이고 나중은 소금이다. 그리고 갈색 물이란 커피를 의미하며 절편은 치즈를 말한다. 생생한 묘사가 재미있다.

또한 ‘서양의 아름다운 여자가 가다(西國麗人行)’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 다소 길지만 서양 여성을 처음 본 한국 남성이 남긴 시라는 점에서 소개해 본다.

서양에서는 예부터 여인을 소중하게 여겨

귀한 손님과는 같이 앉는 것을 꺼리지 않네.

입맞춤과 손잡음에 정이 돈독해지고

술 시키고 차 맛을 말하니 이야기 더욱 새롭구나.

허리는 버들처럼 가늘고 살결은 옥과 같고

붉은 화장 하지 않고 눈썹을 그리지 않아도

아름다운 모습 자연스레 갖추었으니

어여쁘고 가녀려서 차마 가누기도 어려워라.

목에는 맑은 구슬 목걸이 얼굴에는 너울을 쓰고

쌍두마차에 받들어 태워주고

남편과 손잡고 도란도란 말하며

온종일 공원에서 꽃들을 두로 본다네.

온갖 교태와 갖은 아양 느린 걸음에

해는 뉘엿뉘엿 색칠한 다리를 넘어가네.

같이 손잡고 동산 속으로 가니

갖은 꽃 깊은 곳에 피리 소리가 들린다.

소매 없고 가슴을 드러내도 예절은 가장 바르니

때로는 명을 받아 황궁에 들어가

나비처럼 사뿐히 다투어 춤을 추네.

긴 치마 땅에 끌며 꽃떨기로 수(繡)를 놓네.

러시아 여행기의 마지막은 대한제국의 주러시아 공사였던 이범진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아관파천의 주역이었던 이범진은 1896년 주미공사로 갔다가 1901년 러시아 공사로 부임했다. 1907년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상설과 이준이 찾아오자 외국어에 능통한 아들 이위종을 함께 보내 실질적인 외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대한제국이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공관의 폐쇄를 명령받았으나 거부하고 공사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러시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독립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이범진 주러시아공사, 추모비만 쓸쓸히 

그러다가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한 이듬해인 1911년 스스로 자결해 생을 마쳤다. 대한제국에서 고위 관직을 지내고는 일제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아 챙긴 다른 관료들과는 매우 다른 길을 간 셈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그의 묘지는 사라졌지만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대신 네바강가에 있는 여름정원의 옆에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면 페스첼라가 5번지에 대한제국의 공사관이 있던 건물이 남아 있고 벽에는 그것을 기념하는 석판이 붙어 있다.

아름다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제국의 멸망과 관련된 흔적이 있다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우리가 무심코 다니는 유적과 관광지에 족적을 남긴 한국인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여행일 것이다.<끝>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