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을 하더라도 품격 있게, 예산심의는 충실하게

촛불은 야당과 정부 반대 세력의 실책 때문에 꺼진 것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국정교과서 반대 문구가 적힌 인쇄물을 노트북컴퓨터에 붙여 항의표시를 하고 있다.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국정교과서 반대' 문구가 적힌 인쇄물을 노트북컴퓨터에 붙여 항의표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대치 정국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정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아직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더 이상 왜곡과 혼란은 없어야 한다”면서 “일부에서 왜곡이나 미화가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그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저부터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을 믿고 맡겨달라는 호소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런 호소는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통령의 시정연설 당일에 시민단체와 손잡고 첫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었다. 야당의 장외 집회 개최는 세월호법 제정 촉구를 위해 지난해 8월 거리로 나선 지 1년2개월 만이다. 문재인 대표 등 지도부는 10월 28일부터 교과서 체험 ‘투어 버스’를 타고 지역 순회에 나선다.

이 시점에서 야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투쟁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투쟁을 하더라도 품격 있게 해야 한다. 야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하는 동안 자신들의 좌석 앞에 놓인 컴퓨터에 ‘국정 교과서 반대’ ‘민생 우선’이라는 인쇄물을 붙이고 시위했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동안 박영선 의원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은 퇴장했고, 대통령이 연설을 끝내고 퇴장할 때 야당 의원 대부분은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다.

이런 품격 없는 태도와 행동은 야당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좋든 싫든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뽑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 나와서 시정연설을 한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고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다.

지난 참여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새정치연합의 유인태 의원은 국정화를 반대하더라도 대통령이 예산을 설명하는 자리인데 시위는 “어른스러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조경태 의원 역시 인쇄물을 부착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고 대통령 연설 뒤 다른 야당 의원들과 달리 일어나 박수도 쳤다. 조 의원은 “나는 행정부 수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 것이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행동이 주목받는 게 오히려 비상식적”이라고 했다.

둘째, 투쟁을 하더라도 국회에서의 예산심의는 충실히 해야 한다. 국회 예결위가 386조원 규모의 예산안 심사를 시작한 첫날부터 역사 교과서 제작 비용으로 정부가 편성한 예비비 44억원을 놓고 파행했다. 물론 ‘교과서 44억’을 예비비로 편성한 것은 문제가 있다. 예비비란 메르스 사태와 같이 전혀 예기치 않은 비상 사태에 대비해 책정하는 것인데 교과서 제작 비용은 이런 취지에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과서 투쟁에 예산심의의 모든 것을 소진하면 마치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된다.

정쟁만 일삼다가 시간에 쫓겨 부실하게 예산을 심사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말에 함축돼 있듯 국민의 혈세를 잘 챙기는 것이 국회의 존재 이유다. 셋째, 야당이 어떤 투쟁 방식을 동원하든 교과서 내용을 갖고 다퉈야 한다.

특히 교과서 공방의 본질을 외면한 채 막말 시비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이종걸 원내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어떤 부분이 부끄러운 역사인가”라고 물었더니 대통령이 “전체 책을 보면 그런 기운이 돈다”고 대답했다면서 “대통령은 무속인이 아니다”라는 막말을 했다.

주승용 최고 위원은 “대통령의 연설을 듣다보면 정신적인 분열 현상까지 경험하게 된다”고까지 했다. 미국산 소고기 파동, 국정원 댓글 사건, 세월호 사고 등 각종 쟁점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 과정을 살펴보면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 정부 실책→ 야당 장외 투쟁(촛불집회)→ 막말 시비 및 과격한 이념 단체 개입→ 야당 선거 패배→쟁점 소멸이다.

촛불은 정부·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과 정부 반대 세력의 과격성과 실책 때문에 꺼진 것이다. 야당이 교과서 국정화 반대 투쟁에서 여론의 지지를 지속적으로 얻으려면 이런 경험적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지혜롭게 투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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