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문 ‘트렁크갤러리’ 박영숙 관장

작가 이력보다 사진미학 집중

갤러리 대관사업 과감히 포기 

 

사진전문 갤러리 ‘트렁크갤러리’에서 전시된 도로시 엠 윤 작가의 ‘옥주&옥주’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박영숙 관장. 박 관장은 ‘미친년 프로젝트’로 유명한 여성주의 사진작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진전문 갤러리 ‘트렁크갤러리’에서 전시된 도로시 엠 윤 작가의 ‘옥주&옥주’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박영숙 관장. 박 관장은 ‘미친년 프로젝트’로 유명한 여성주의 사진작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십 개의 미술관과 갤러리가 모여 있는 서울 경복궁 옆 북촌로에는 사진작가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는 사진 전문 갤러리가 한 곳 있다. ‘미친년 프로젝트’로 유명한 여성주의 사진작가 박영숙(74)씨가 운영하는 ‘트렁크갤러리’다. 2006년 4월 남산 소월길의 자동차 정비소 창고 건물에서 시작한 트렁크갤러리는 2007년 2월 북촌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사진계의 대모로 불리는 박 관장은 지난 10월 7일 ‘2015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시상식에서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을 수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인지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내가 필요한 일들이 바로 이 일이구나 생각했다. 많이 힘들었지만, 트렁크갤러리가 앞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운을 얻었다.” 짧은 소감이었지만, 깊은 여운이 남았다.

 

박 관장은 “사진작품의 개념과 의미 등 미학적인 접근을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박 관장은 “사진작품의 개념과 의미 등 미학적인 접근을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박 관장은 ‘나를 필요로 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회화 중심의 한국미술 풍토에서 사진미디어에 대한 몰이해와 냉대로 사진작가들의 존립 위기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진작가들은 소수의 힘으로 버텨내기 힘든 구조에 처해 있었고, 그 현실을 바라본 박 관장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용감히 이 길에 뛰어든 이유다.

트렁크갤러리는 사진작가의 신작을 홍보하고, 작가의 작업을 동시대 미학에 근거해 ‘작가 작품의 언어화’ 작업을 진행한다. 작품 판매로 작가의 활동을 돕는 것은 물론이다. 사실 갤러리를 운영하는 일은 헌신에 가깝다. ‘경제논리’와 거리가 먼 그에겐 더욱 그렇다. 작가들이 먼저 나서서 “선생님이 프로모션한 소속 작가들이 다른 곳에서 작품을 판매하면 ‘마더갤러리’로서 수익의 10%를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사진예술의 붐을 꿈꾸는 그에게 돈보다는 작가와 그들의 작업이 소중하다. “작가가 재생산하려면 작품이 많이 팔려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독점하고 나만 팔아먹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용이다. 만용.” 트렁크가 프로모션한 작가는 50여 명에 이른다. 데비 한, 김미루, 배찬효 등 유명 사진작가들이 트렁크갤러리 소속이다. 배 작가는 박영숙 관장이 직접 발굴해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경우다. 1년에 12명의 사진작가를 프로모션하고 있다.

 

사재를 털어 갤러리를 마련한 박영숙 관장은 대관 사업을 과감히 포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재를 털어 갤러리를 마련한 박영숙 관장은 대관 사업을 과감히 포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트렁크갤러리의 모든 전시 안내 책자에는 독특한 점이 있다. 작가의 이력을 쓰지 않는 것이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고, 언제, 어디서, 어떤 전시를 했는지도 적지 않는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개념과 의미 등 미학적인 접근만을 다룬다. “어떤 갤러리도 이렇게 운영하는 곳은 없다. 내가 못 쓰면 그걸 쓸 만한 사람을 불러서라도 작가와 작품에 대한 언어를 생산한다.” 이것은 박 관장이 고집하는 트렁크갤러리만의 방식이다.

대관을 하지 않는 것도 박 관장이 고집하는 방식이다. 사재를 털어 갤러리 공간을 마련한 그는 “대한민국에 100개의 갤러리가 있다면 85개는 대관을 하고, 10개는 부자 갤러리고, 5개는 트렁크갤러리 같은 곳”이라며 웃었다. “매일 대관해달라는 전화가 온다. 위치가 좋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시하고 300만원을 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 돈은 안 벌면서 만날 ‘힘들어’ ‘도와줘’ 하는 내가 웃길 때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돈을 버는 것은 재미없을 것 같다. 사는 의미가 없다. 그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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