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애가 만난 황무지의 들꽃, 고려인 여성 ③

고본질·임차농 하며 대부분 가난

새로운 삶 개척하는 통로는 교육

“대학 안 나오면 굶어 죽을 수 있다”

 

필자가 비쉬켁 시장에서 고려인 여성을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애
필자가 비쉬켁 시장에서 고려인 여성을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애

황량한 중앙아시아 벌판으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은 집단농장을 형성해서 많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고본질’이라는 독창적인 제도를 만들어 농지를 임차하고 농기계 등을 제공받아 경작하고, 수확한 농산물을 반반씩 나눠 갖는 임차농으로 일부는 많은 돈을 벌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가난하게 살았다.

이베로니카(51)씨는 아버지가 고본질 농사를 지었으나 도박을 해서 빚을 많이 졌고 어머니는 간호사였으나 월급이 적어 1남3녀(자신은 셋째 딸)를 부양하기에는 모자라 못살았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주안나(76)씨도 할아버지가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스파이로 몰려 감옥으로 잡혀간 이후 행방불명이 됐고, 큰아버지도 감옥에 5년 동안 갇혀 있다가 결핵으로 사망해 사촌 5명과 자신의 형제 6명이 함께 한 집에서 살았고 아버지가 자동차 운전을 하거나 벼농사를 지어 생활했는데 늘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다마라(74)씨는 외할아버지가 마약을 해서 14살 난 어머니를 늙은 노인에게 팔았는데, 어머니는 첫아이를 사산한 후 아버지를 만나 연해주 하바롭스크로 도망가서 결혼했고, 1937년 추방되어 카자흐스탄에 정착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자신이 2살 때 간질을 앓던 어머니를 이혼으로 내쳤고, 어머니는 언니와 자신을 구걸해서 먹였다고 회고했다. 강루드밀라(70)씨는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사망했고 2살 때 아버지마저 자신을 두고 떠나버려 우즈베크의 고려인 마을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찾으러 다시 돌아온 7살 때까지 남의 집 일을 해주며 구걸하면서 살았다고 회고했다. 자신의 머리가 울퉁불퉁한 것은 어릴 때 사람들에게 맞아서이며, 방아 찧는 일을 도와주다 방아에 등이 찍혀 난 상처가 큰 흉터로 남았다고 한다. 인터뷰 대상자 중 40대 이상은 부모가 대학교육이나 전문직 교육을 받고 교사, 간호사, 엔지니어, 회사 관리직에 취업한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도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났을 뿐 임금이 낮아 성장기에 대부분 가난하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어려움 속에 생활했지만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를 교육에서 찾았다. 곽예봐(84)씨는 강제 이주 과정에서 아버지는 감옥에 가고 어머니는 사망해 5살 때 고아가 됐다. 고아원에서 5학년까지 학교에 다니다 15살에 나와야 했는데, 야간학교에 다니는 조건으로 신생아부터 3살까지의 고아를 돌보는 보모로 취업했다. 저임금의 힘든 일이었다. 42명의 아기를 혼자 돌보면서 “지금도 치가 떨리게 힘든 일”을 2년 동안 하며 모은 돈으로 간호학원에 등록하고 공부를 계속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돈이 없어 빵 하나를 사서 7조각으로 나누어 하루에 한 조각씩 먹고 견뎠다. 때로는 요리사가 밤에 몰래 감자를 삶아 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2살부터 7살까지 고아로 길거리를 전전한 강루드밀라씨도 모스크바 근처 대학에 진학해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구걸로 자란 김다마라씨도 중학교 1학년까지 다니다가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니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신발 공장에 취업했는데, 일을 잘해서 학원에 보내주어 피혁 기술을 배웠다. 임빅토리아(49)씨는 “대학 안 나오면 굶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공장에서 일하다 외국어를 배우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해 영어를 공부했다. 원나리샤(56)씨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고 러시아의 톰스크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이아브차라(71)씨는 타슈켄트에서 기술대학을, 남또마래이(74)씨는 사할린대학을 졸업했으며, 의사인 조안나씨는 모스크바 근교 사마라시의 의과대학에서 공부했다.

30대의 의사인 김일리아나씨는 사별한 어머니가 혼자 자신을 힘들게 키우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입학이 어려운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며 6년 동안 최우등의 성적을 받고 졸업한 후 국가 장학금으로 모스크바에 2년간 유학했다. 앞으로 박사학위 공부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혼의 20대인 치과의사 이엘레나씨도 어려운 시험을 거쳐 치과대학에 입학했으며, 사업가 권율리아(36)씨도 국제관계학과 금융학을 전공하며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는데, 자식들도 최우등생으로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자랑했다. 다른 고려인 여성들도 자녀들과 손자손녀가 최우등으로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고, 딸과 사위가 변호사, 검사, 치과의사라고 자랑했다.

인터뷰한 여성들 중 40대 이상은 대부분이 소련 붕괴 전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서” 중앙아시아로부터 러시아의 대학으로 유학했다. 가난했지만 교육열이 뜨거운 부모의 성원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고 무상 교육을 실시한 소련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아 대부분 대학 공부를 했다. 교육은 우수한 고려인 여성에게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통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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