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완/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내가 니 꺼니?”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텔레비전 CF 가운데

한 대목이다. 변심한 애인 앞에서 징징대는 남성을 향해 거침없이 쏘

아붙이는 광고 속의 이 여성은 부러울 정도로 주체적이고 아름답게 당

당하다. 광고는 그 시대 사회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라 했던가.

사랑에 대한 요즘 젊은 세대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과연 여성의 정조를 목숨과도 같이 여기고, 수절을 과부의 미덕으로

삼던 지난 시대의 성윤리가 변화하고 있긴 한 모양이다. 성은 자신의

팔, 다리 같은 지체와 마찬가지로 귀중한 ‘자신의 것’이다. 성이란

자신이 책임지고 가꾸면서 누리는 또 하나의 인격이다. 그런데도 ‘성

은 자신의 것’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이치가 아직도 현실에선 흔치 않

게 왜곡되고 구겨지고 있다. 부모자식 간에, 또는 부부간에 배타적으

로, 때론 폭력적으로 독점되면서 인격적

예속이나, 성적인 예속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을 사회관습적인 편견이 정당화하는 가운데 정작 우리 주변의

성적 가치관이나 도덕율이 도착(倒錯)되고 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가출했다 돌아온 자신의 딸아이를 엄마가 목 졸라 죽인 끔직한 사건이

얼마 전 신문에 보도되었다. 아이 나이가 17살이라 했던가. 그런데 우

리를 정작 아연실색케 한 건 그 엄마의 살인 동기가 ‘아이 가슴에서

발견된 애무 흔적’ 때문이었다고 한 점이었다. 설혹 그것이 미성년

가출 청소년의 불장난이었다 해도 생명을 앗을 정도의 중범죄가 되는

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늠이 안 된다.

성폭력의 당사자이거나 성상품화의 노리개로 처신한 것도 아닌 다음

에야. 그 아이의 비행을 감싸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

자면 17세의 아이의 성은 이미 엄마의 품을 떠난 것이다. 그 또래 이

상의 아이를 둔 엄마들로서는 충고하고 설득해서 올바른 처신을 위한

판단의 재료를 제공하는 일 외에 사실상 달리 할 일이 없다. 그 이상

어떻게 하겠는가. 무턱대고 다그치고 강제한다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성인들의 책임을 자성하고 이를 둘러싼 사회환경을 바

르게 세우는 게 먼저가 아닐까. 사람의 사회관계는 물론, 성적 관계

(sexual relationship) 역시 그 사람의 인격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단순히 이성관계의 경험이나 번잡함이라는 수량적 현상만을 갖

고 순결과 성문란을 가르려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어느 만큼 자신의 인격적, 또는 성적 자기결정권 아래 성실하고 책임

있게 행해졌는가가 올바른 잣대이다. 때 아니게 봉건시대의 스토이즘

이 부활할 것도 아닌 다음에야 결코 강제적인 도덕율이나 맹목적인 욕

망 억압만으로 훌륭한 인품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맹모삼천이라지

만 그것도 아이가 어릴 때나 해당되는 일이다. “순결치 못한 몸으로

남편과 만나 살아온 게 늘 죄스러웠다”는 그 엄마의 회한 어린 푸념

은 그 자체로서 죽음의 제단에 올려진 우리 시대 폭력적 순결관의 자

화상 바로 그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순결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하나 억장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

졌다. 인천 부평에서 발생한 가정폭력사건이 그것이다.

남편이라는 자로부터 거의 살인에 가까운 폭력을 당한 가엾은 여인의

사연은, 우리 사회에서 부부 사이의 성, 인격적인 결합의 현주소를 부

끄럽게도 여지없이 까발리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는

여기로부터 과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구타의

문제나 폭력의 정도를 들어 적어도 나에겐 해당사항 없는 일이라고 치

부한다면, 이 사건이 함의하고 있는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다. 내 아이의 인격(또는 성)이나, 내 아내의 인격(또는 성)이 마

치 나의 것인양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향해 되물어 보라.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추상적인 이론이나 먼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적 자기결정권만큼이나 성적 자기결정권이 바로 내 주위에서, 다

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에 의해 짓밟히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을

전인격적인 배타적 독점권으로 혹은 전속적 관할권 쯤으로 여기고 있

지나 않은지, 그렇게 왜곡된 예속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적어도 한 번쯤은 심각하게 되물

어볼 일이다. 적어도 가치관에 관한 한, 자기자신 역시 흉악한 살인미

수범이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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