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명성황후 시해 120주년 추모 학술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뉴시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명성황후 시해 120주년 추모 학술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뉴시스

잘 아는 바와 같이 명성황후(1851∼1895)는 조선의 마지막 왕비이자 사후 황후로 추존된 한국 최초의 여성이다. 그는 16세인 1866년 왕비로 발탁돼 45세 때인 1895년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까지 격동의 30년을 왕비이자 궁중의 안주인으로 지냈다.

그의 일생은 지금까지 많은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아 왔다. 이렇게 관심이 고조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지난 세기 청, 일, 러의 이해와 갈등이 교차하던 동아시아 정국과 한국의 시련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19세기 말 격동기에 보인 그의 삶과 죽음이 너무나 극적이었으며, 조정 안팎에서 보인 그녀의 역할이 대내외적으로 매우 독특하고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명성황후의 이름은 물론 사진의 진위 여부도 확인되지 못했을 만큼 정확한 정보는 아직 제한적이다. 그가 구중궁궐의 여성이었던 관계로 장안에는 흥밋거리의 뜬소문이 난무했고, 이에 관한 야사류의 기록도 물론 많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식의 야사류로, 그에 대한 객관적 연구가 오히려 방해를 받아왔다. 아울러 일부 사료가 발굴됐다 해도 그의 역할은 다방면에 걸쳐 있는 만큼 몇몇 연구자의 제한된 자료 발굴과 연구로 서둘러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도 무리다.

돌이켜 보면 한국 근대의 중요한 사건에 명성황후가 관련된 것만 해도 어림잡아 10여 가지 이상이다. 대원군과의 관계는 물론, 개항, 임오군란, 갑신정변, 조로밀약, 동학농민봉기, 갑오개혁, 인아거일, 광산이권, 박영효 실각, 을미사변 등이 그것이다. 이들 사건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다. 분명한 것은 사건의 발생이나 전개 과정에서 명성황후의 역할과 존재가 없었다면 결과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명성황후와 고종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는 개항 전후부터 최후의 순간까지 고종의 내외정책 구상과 실행을 적극 지지해 준 제1의 참모격이자 충실한 반려자였다.

그런 그의 역할 때문에 일본의 대조선 정략에는 누차 제동이 걸렸다. 가령 일본이 개화파 인사들을 충동질해서 일으킨 갑신정변이 실패한 데는 그의 기민한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고,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화하려다 실패한 이면에도 궁정을 무대로 펼친 그의 기민한 대응, 요컨대 ‘인아거일(引俄拒日)’책이 중요한 작용을 했다. 이와 같은 역할로 그는 일본 측이 맨 먼저 제거해야 할 조선 제1의 기피 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제거하기 위해 일본 측은 대원군과 해산설이 나돌던 조선군 훈련대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대원군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까지는 명성황후와 갈등 관계로 알려지지만, 그 후로는 별다른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고 공덕리에 은거한 75세의 노인이었을 뿐이다. 훈련대 역시 나라에 반역을 꾀할 정도의 무질서한 집단이 아니었다. 그러나 병력과 무기, 정보력과 자금을 장악한 쪽은 일본공사관이었다. 미우라 공사는 각본대로 일본군을 동원해 경복궁을 침입, 명성황후를 무참하게 시해하고 범죄의 책임은 대원군과 훈련대에게 뒤집어 씌웠다.

이후 지금까지 일본 정부 측은 그것이 자국의 국가적 범죄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일본군이나 경찰 등을 처벌한 적도 없다. 더 심각한 것은 범죄를 은폐하고 그녀의 죽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날조한 역사다. 일본 측은 이후 19세기 말의 한국사를 내분의 역사,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의 역사로 선전했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당국이 그녀와 한국에 대해 행한 수많은 범죄와 역사 왜곡은 언제든 ‘수면’으로 떠오를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다.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일본 측의 인정과 사과는 늘 긴장된 한·일 관계의 바람직한 개선과 우호를 위해,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바른 역사 복원을 위해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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