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혐오’ 논란 콘텐츠·광고 잇따라

젠더 감수성 부족과 ‘돈 되는 여혐 콘텐츠’ 인식이 근본 원인

최근 일부 업체들이 여성혐오 메시지가 담긴 마케팅을 벌이거나 콘텐츠를 선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불과 이틀 만에 두 업체가 이와 관련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낮은 젠더 감수성과 ‘여혐 콘텐츠가 팔린다’는 업계의 인식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화·드라마 리뷰 앱 ‘왓챠’에서 제공한 영화 퀴즈. 보기에 ‘아몰랑’이 포함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영화·드라마 리뷰 앱 ‘왓챠’에서 제공한 영화 퀴즈. 보기에 ‘아몰랑’이 포함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영화·드라마 리뷰 앱 ‘왓챠’는 6일 공식 SNS 계정에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올렸다. 왓챠 앱에서 제공하는 영화 퀴즈 서비스 중 한 문제의 보기로 ‘아몰랑’을 포함한 데 대한 사과였다. ‘아몰랑’은 비논리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의 태도를 비꼬는 맥락에서 탄생한 신조어다. 

박태훈 프로그램스 대표는 “여성폄하의 의도가 담긴 단어(아 몰랑)를 일반 유행어로 인식하고 문제 답변 보기에 포함시키는 잘못을 했다. 왓챠 팀 구성원 모두가 심각성을 인지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해당 단어를 즉각적으로 수정했다”며 “불편함을 느끼셨을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여성 혐오 단어에 대한 내부 교육을 실행할 예정”이라고 썼다. 

 

논란이 된 KFC 스모키 와일드 치킨버거의 버스 정류장 옥외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논란이 된 KFC 스모키 와일드 치킨버거의 버스 정류장 옥외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치킨 전문 브랜드 KFC도 최근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KFC가 지난 1일 출시한 신메뉴 ‘스모키 와일드 치킨버거’ 제품의 버스 정류장 옥외 광고가 문제가 됐다. 

해당 광고에는 “자기야~ 나 기분전환 겸 빽(가방) 하나만 사줘”라는 문구 아래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과 “음… 그럼 내 기분은?”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명품 가방을 사달라는 여자친구에게 화가 난 남자친구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제품의 콘셉트는 ‘숯놈들의 버거’다.

비슷한 콘셉트의 광고 영상도 KFC 페이스북에 게재됐다. 영상에서 한 여성이 “오빠 적립은 내 카드로 해줘”라고 하자 남성은 “그럼 계산도 네가 해”라고 말한다. “오빠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라는 여성에게 남성은 “너를 만난 거?”라고 답한다. 

이러한 사실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며 ‘여성 혐오 마케팅’이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KFC는 해당 광고를 모두 철거하고 사과했다. KFC는 지난 5일 공식 홈페이지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광고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며 “문제 발생 직후부터 전 직원이 최선을 다해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18일 ‘처음처럼’ 공식 페이스북에 공개된 광고. ⓒ처음처럼 페이스북 캡처
지난 9월 18일 ‘처음처럼’ 공식 페이스북에 공개된 광고. ⓒ처음처럼 페이스북 캡처

 

남성 잡지 맥심 코리아의 9월호 표지. 성범죄를 암시하는 듯한 화보 옆에 ‘진짜 나쁜 남자는 이런 거다. 좋아 죽겠지’라는 카피가 달렸다.
남성 잡지 '맥심 코리아'의 9월호 표지. 성범죄를 암시하는 듯한 화보 옆에 ‘진짜 나쁜 남자는 이런 거다. 좋아 죽겠지’라는 카피가 달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롯데주류의 소주 ‘처음처럼’도 유사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달 18일 ‘처음처럼’ 공식 페이스북에 공개된 광고에는 ‘술과 여자친구의 공통점, 오랜 시간 함께 할수록 지갑이 빈다’라는 문구가 포함돼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롯데주류 측은 지난달 21일 게시물을 삭제했다. 별도의 사과나 공지는 없었다. 

또 남성 잡지 '맥심 코리아'는 지난 9월호 표지에 성범죄를 암시하는 듯한 사진과 함께 ‘진짜 나쁜 남자는 이런 거다. 좋아 죽겠지’라는 카피를 버젓이 달았다.

즉시 국내외에서 비난이 쇄도했고, 잡지 전량 회수 및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 서명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결국 지난달 4일 맥심 코리아 편집부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잡지 전량을 회수조치 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낮은 젠더 감수성과 ‘여혐 콘텐츠가 팔린다’는 업계의 인식이 있다. 

모 대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는 “아무래도 ‘어떻게 해야 더 잘 팔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민감한 이슈를 충분히 걸러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특히 주류 광고의 경우 주 고객층인 남성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최대한 자극적이고도 기존 젠더 관점을 벗어나지 않는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여성혐오 마케팅’을 법적으로 제재할 수단은 없다. 현행법상 ‘여성일반’ 등 불특정 다수를 향한 혐오 표현은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 명예훼손·모욕죄 등이 적용되려면 피해자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성별,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제재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업계의 반성을 넘어 교육은 물론 사회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문제다. 어렵지만 이런 문제가 자꾸 공론화될수록 여성혐오가 완화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