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지즈코 지음  / 조승미, 최은영 옮김  / 현실문화
우에노 지즈코 지음 / 조승미, 최은영 옮김 / 현실문화

리뷰 /『여자들의 사상』

일본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교수의

날 선 사유와 행동 강령

“I go down. / Rung after rung and still / the oxygen immerses me / the blue light / the clear atoms / of our human air. (나는 내려간다. / 사다리 한 계단 한 계단 그리고 아직도 /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산소 / 파랗게 빛나는 / 투명한 원자 / 우리 인간의 공기)”

미국의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의 대표작 중 하나인 ‘Diving Into the Wreck(난파선으로 잠수하기)’의 한 대목이다. 1960년대부터 열렬한 페미니스트가 된 시인은 이 시에서 ‘여성의 정체성 찾기’를 ‘난파선을 찾아 잠수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난파선은 여성의 자아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자들의 사상』은 여성과 사회문제에 대해 가장 활발한 논의와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대 일본의 지식인 중 한 명인 우에노 지즈코 교수(도쿄대 사회학)의 최근작이다. 저자는 3년 전『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통해 일본 사회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는 여성 혐오적인 모습을 낱낱이 분석하며, 이를 통해 이 시대에 여전히 존재하며 더욱 강화되기까지 하는 일본 사회의 퇴행적 일면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자신은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는 ‘특권적 예외’로 설정하는, 이른바 ‘출세 전략’을 동원해 오히려 여성 혐오를 자행하게 되는 여성들의 모순된 행동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여자를 지켜주겠다’는 말을 하는 남자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의 심정적 태도 또한 여성 혐오의 범주에 해당할 수 있음을 적시한 대목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1948년생, 이제 일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저자의 날 선 사유와 정열적 행보는 여전하다. 아니 날로 더욱 굳건해져 간다는 느낌이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가 ‘현실에 대한 비판과 인식’이라면,『여자들의 사상』은 말하자면, ‘궁극의 사유 지침이자 구체적 행동 강령’이다. 우에노 교수의 행보를 익히 아는 독자라면, 얼핏 새 책을 들춰 보며 왜 이렇게 한가해졌을까 의아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난 20세기에 형성된 페미니즘의 사상적 유산을 돌아보는 구성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이러한 생각은 곧 바뀐다.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저자가 따로 써 놓은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나보다 앞선 이들이 자아낸 말을 받아들여 사상을, 사상의 인격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여성 혐오라는 단어까지 등장하고 있는, 이 명백한 사회적·문화적·정신적 퇴행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여자들의 사상』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이다. ‘사상의 인격’부터 만들자는 것이다.

리치의 시 ‘난파선으로 잠수하기’에서 흥미로운 단어는 ‘human air’다. 딱 한 칸을 띄어 읽으면, ‘콧노래하다’라는 뜻을 가진 ‘hum an air’가 된다. ‘여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을 뚫고나가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시인은 우리에게 던져준 것이다. 20세기 페미니즘의 광대하고 장렬한 바다. ‘사상의 인격’은 이제 우리의 부레다. 콧노래를 부르며 인간 존엄성의 가장 깊은 심연에까지 내려가 끝내 인간의 공기를 마시자. 헤엄치는 동안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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