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주진오의 러시아 기행

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30대의 민영환, 윤치호

축하 사절단으로 참석

50일의 기나긴 여정

 

크렘린 궁 앞에 있는 국립역사박물관. 민영환은 이곳을 ‘박물원’으로 불렀다. ⓒ주진오
크렘린 궁 앞에 있는 국립역사박물관. 민영환은 이곳을 ‘박물원’으로 불렀다. ⓒ주진오

지난 여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을 관람하며 러시아 예술과 문화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더구나 한국 근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그동안 사료에서만 보았던 우리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 확인해 보는 남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

특히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1896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한 우리 축하사절단의 자취를 찾아보았다. 아울러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서는 전설적인 고려인 로커 빅토르 최의 추모벽에 다녀왔다.

험난했던 모스크바 가는 길

인천에서 모스크바까지는 항공으로 6670㎞ 거리, 9시간 정도를 비행해야 한다. 그런데 1896년 거행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축하사절단으로 파견된 민영환과 윤치호는 ‘모스크바까지 4만2900여 리를 50일 동안 왔노라’고 기록했다. 환산하면 1만6850㎞에 해당한다.

애초부터 이렇게 먼 여정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러시아 군함을 이용해 상하이로 가서 인도양을 건너 유럽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상하이에 도착해 보니 배에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일본으로 가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 밴쿠버에 상륙한다. 기차로 대륙을 횡단해 뉴욕으로, 거기서 대서양을 넘어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까지 배를 타고 갔다. 거기서부터 독일과 폴란드를 기차로 이동했고, 특히 바르샤바에서는 전용 기차를 제공받아 마침내 5월 20일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니콜라이 2세는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로, 후일 러시아혁명으로 총살 당한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시 민영환이 만 34세, 윤치호가 30세였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여행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여정이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사절단은 포바르스카야 거리 42번지에 숙소를 배정받아 태극기를 달았다고 기록했다. 그러니까 1896년 5월 20일은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에서 최초로 태극기가 휘날린 의미 있는 날이다.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30분 넘게 거리를 헤매다 결국 택시로 찾아가 현장을 확인한 순간, 모든 것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30년 전 대학원생 시절, 윤치호 영문 일기에서 읽었던 장소에 바로 내가 서 있다는 사실. 러시아 여행의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건물은 현재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와 가까워서 뉴질랜드, 카메룬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공관이 있는 지역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굳게 닫혀 있어 시도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설의 록가수 빅토르 최 추모벽 앞에 선 주진오 교수. ⓒ주진오
전설의 록가수 빅토르 최 추모벽 앞에 선 주진오 교수. ⓒ주진오

 

사절단 숙소. ⓒ주진오
사절단 숙소. ⓒ주진오

모자 때문에 대관식에는 불참

모스크바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 크렘린 궁이다. 크렘린은 ‘도시 안의 요새’라는 의미의 명사라고 한다. 즉 크렘린은 모스크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백악관 하면 미국의 최고 권력을 의미하듯 크렘린은 옛 소련 정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크렘린 궁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타나는 현대식 대극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우스펜스키 사원이 나온다. 성모승천 사원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바로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이 대대로 거행된 사원으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도 여기서 열렸다. 사원 안에는 황제, 황후, 주교가 예배 시에 앉았던 옥좌가 보존돼 있다.

그런데 축하사절로 그 먼 길을 갔던 민영환 일행은 정작 1896년 5월 26일 크렘린 궁의 우스펜스키 사원에서 거행된 대관식에 들어가지 않았다. 모자를 벗어야만 사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원칙을 따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영환은 모자를 잠시라도 벗는다는 것이 조선의 법과 관습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윤치호는 대관식 참석이 사절단의 임무인데, 모자 때문에 불참해서는 안 된다고 열심히 민영환을 설득했으나 그는 끝내 듣지 않았다. 당시 윤치호는 민영환이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당나귀를 연상시킨다고 쓰고 있다. 결국 그들은 바깥 광장에 마련된 장소에서 3시간 동안 대관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우스펜스키 사원 앞 광장 옆에는 이반 대제의 종탑(Bell Tower)이 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아주 멋진 건물이다. 바로 이 건물 앞 광장에서 우리 대표단은 대관식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 갈 기회가 있다면 이 이야기를 떠올려 봐도 좋을 듯하다.

그들은 러시아 측의 배려로 여러 문화 체험을 하고 돌아왔다. 그중에는 볼쇼이 극장 오페라와 발레 공연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중국어 역관으로 함께 갔던 김득련이라고 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19세기 말 조선에서 활동하던 개신교 선교사들이 영문으로 발행하던 ‘코리안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에 다음과 같은 재미 있는 글을 남겼다.

“청중이 모인 자리에서 웬 신사가 목살에 힘줄이 돋칠 정도로 소리를 지르니 모두들 그를 우러러 보더라. 서양에서 군자 노릇 하기란 원래 저리 힘든가 보다.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소녀가 까치발을 하고 빙빙 돌며 뛰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데, 가녀린 낭자를 학대하다니, 서양 군자들은 참으로 짐승이구나.”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성악가의 노래와 발레리나의 공연을 보고 쓴 감상문일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꼭 가고 싶었던 볼쇼이 극장이 휴가 기간이라 문을 닫은 점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 8월 말의 러시아는 날씨가 맑고 시원해서 여행하기에 좋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공연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피해야 할 기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이 대대로 거행된 크렘린 궁 우스펜스키 사원. ⓒ주진오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이 대대로 거행된 크렘린 궁 우스펜스키 사원. ⓒ주진오

 

축하 사절단은 볼쇼이 극장에서 오페라와 발레 공연도 감상했다. ⓒ주진오
축하 사절단은 볼쇼이 극장에서 오페라와 발레 공연도 감상했다. ⓒ주진오

아르바트의 빅토르 최 추모벽

크렘린 궁 앞에는 두 개의 커다란 건물이 있다. 하나는 국립역사박물관이고 다른 하나는 조국해방기념관이다. 국립역사박물관 앞에는 스탈린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제2차대전의 영웅 주코프의 기마 동상이 서 있다. 이곳을 방문했던 민영환은 ‘박물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옛 명사들의 초상 수천 장을 걸어놓았고 각국 사람의 석고상을 500∼600개나 세웠다. 기이한 형상과 괴상한 모양을 다 기록할 수 없다.’ 실제로 이곳에는 현재의 러시아를 비롯해 옛 소련 지역에서 출토된 발굴 성과와 역사기록을 많이 전시하고 있다.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미술관은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다. 당시 민영환은 이곳을 ‘화회(畵繪)박물관’이라고 적고 있다. 오늘날 그림을 회화라고 하는데 거꾸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각국 명화 수만 장을 모아서 벽에 장식해 걸어 놓았다. 실물과 똑같아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 같아 사람들이 기이하다고 경탄한다’는 평을 남겼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 곳은 구관이고 현대미술 작품이 많이 소장돼 있는 신관은 전혀 다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두 곳 다 관람하면 좋겠지만,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라면 구관을 잘 찾아가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스탈린 시대를 비판하는 소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나톨리 리바코프의 ‘아르바트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서울의 인사동 같은 거리로 볼만한 곳들이 많지만 가장 찾고 싶었던 곳은 바로 전설의 록 가수 빅토르 최의 추모벽이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19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 최초의 록 그룹 키노(Kino)의 리드싱어로, 그리고 영화배우로 소련 전역에서 인기를 누렸다. 특히 그의 저항정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노래는 옛 소련의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1990년 28세의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나 아직도 그에 대한 열기가 남아 아르바트에 추모벽이 마련된 것이다. 지금도 참배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곳을 모스크바, 특히 아르바트 거리를 간다면 꼭 한번 들러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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