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교황의 유엔 연설장에 참석한 각국 정부 수반의 숫자는 역대 최다인 150여개국에 달했다. 교황과 반기문 사무총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유엔본부
25일 교황의 유엔 연설장에 참석한 각국 정부 수반의 숫자는 역대 최다인 150여개국에 달했다. 교황과 반기문 사무총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유엔본부

교황의 첫 미국 방문, 눈에 띄는 행보 이모저모 

여성 신학자들 “여성 성직자 서품은 여전한 과제”

연일 화제를 모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미국 방문 일정이 지난 9월 27일(현지시간) 끝났다. 22일 미국에 도착한 교황은 사상 처음으로 진행한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과 유엔 본부 연설에서 이민과 난민문제, 기후변화,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방문 마지막 날인 27일 필라델피아 야외 미사에선 가정의 소중함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교황의 6일간의 미국 방문 중 특히 여성과 이민자, 성소수자 등 소외계층에게 환호를 받은 교황의 행보를 정리했다.

 

교황이 언급한 도로시 데이는 누구?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 미 의회 연설에서 ‘위대한 미국인’으로 링컨 전 대통령, 킹 목사 등과 함께 도로시 데이의 이름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교황은 “사회적인 문제가 중요한 이 시기에 ‘신의 종’(Servant of God)인 도로시 데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데이의 사회운동, 정의와 억압받은 이들에 대한 열정은 복음과 그의 믿음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말했다. 1897년생인 데이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가톨릭 노동운동을 이끌었고 현재도 발행 중인 가톨릭노동자 신문을 창간한 인물이다.

도로시 데이는 두 번 결혼했으며 낙태도 경험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가톨릭으로서는 용인하기 힘든 인물에 가까웠기에 교황의 이번 언급은 더욱 놀라움을 안겨줬다. 2000년께 가톨릭교회 내에 그를 성인(聖人)으로 공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여성 뉴스 사이트 ‘제제벨’은 이번에 도로시 데이가 성인의 전 단계인 ‘신의 종’ 칭호를 받음으로써 “교황의 언급이 데이의 성인 추대에 시동을 걸게 됐다”고 평가했다.

성직자 처벌 약속... 피해자 단체는 반신반의

교황은 일정의 마지막 날인 27일 성마르틴 성당에서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성직자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피해자들을 만나고 온 사실을 밝히고 “아동 성추행과 같은 범죄는 더 이상 비밀에 부쳐져서는 안 된다”면서 관련된 성직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교황은 어린 시절 성직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여성 3명, 남성 2명 등 총 5명의 피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축복했다. 교황은 지난해에도 6명의 성추행 피해자를 만난 바 있다.

하지만 피해자 단체는 만족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23일 첫 방문지인 워싱턴DC에서 주교들과 만났을 때 “성추행 사건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헤쳐 가는 용기와 희생”을 치하하며 “사건이 재발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피해자 단체의 격분을 사기도 했다.

‘성직자에 의한 성추행 피해자 네트워크’(Survivors Network of those Abused by Priests , SNAP)의 데이비드 클로헤시 이사는 가톨릭처치와의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몇 번이나 피해자들과 만나고 수많은 약속과 발언을 남겼지만 법의 심판을 받은 성직자는 거의 없다”면서 “이번 만남도 영리한 대외 홍보 활동일 뿐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교황에 대한 여성 신학자들의 반응은

미국 여성 신학자들의 반응도 눈길을 끌었다. 세렌 존스 유니언신학교 학장과 에이미 버틀러 리버사이드 교회 목사는 타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교황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교회는 여성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들은 기후변화와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드러냈고 전임자들처럼 여성 종교지도자에 대해 반대를 제기하지 않은 점, 그리고 성직자들의 성추행 스캔들에 대한 조치를 긍정적인 면으로 꼽았다. 하지만 “남성만이 성직자가 될 수 있는 가부장적인 신학 체계가 남아 있는 한 성적 불평등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망각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난이나 기후변화, 경제적 불평등에는 강력한 입장을 취하고 이혼이나 동성애 문제에도 열린 접근을 시도하는 반면 여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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