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한국존슨앤존슨이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 대한본영에 자사의 어린이용 해열제를 전달한 후 아이들에게 환절기 감기 예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9월 2일 한국존슨앤존슨이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 대한본영에 자사의 어린이용 해열제를 전달한 후 아이들에게 환절기 감기 예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10여 년 전인 2000년 초엽에 필자가 기업의 가족친화 경영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 벤치마킹 기업으로 존슨앤드존슨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받은 기업 문화의 강한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인사 담당 부사장과 면담하기 위해 지나가면서 보게 된 본사 건물 1층 전체에 자리잡은 직원용 카페테리아는 내비치는 햇살과 함께 너무나 쾌적했다.

인사 담당 부사장실에서 이어진 면담에서 왜 존슨앤드존슨은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에 큰 관심을 쏟는지를 물었다. 그의 첫마디는 ‘크리도’(Credo)라는 것이었다. 이는 모든 임직원이 신봉하는 회사의 4가지 신념이었다. 그중 두 번째에 회사를 위해 일하는 남녀 모든 직원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고 돼 있었다. 이익을 극대화해서 주주 가치를 높이는 주주에 대한 책임은 맨 마지막 네 번째에 명시돼 있었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추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고 대다수 기업들은 주주 가치 극대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전념한다. 그런데 기업 실적을 분석한 전문 기관 자료를 보면 매우 흥미롭다. 주주 가치 극대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이에 주력한 IBM과 주주 가치 제고는 여러 목표 중 하나일 뿐이라는 존슨앤드존슨을 비교해 보면 놀랍게도 지난 1970년대 말 이후 최근까지 존슨앤드존슨 주가는 70배도 넘게 급등했지만 IBM 주가는 10배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

물론 산업별 특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업이 단순히 이익 극대화에 올인하지 않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확고한 경영철학과 신념으로 흔들리지 않고 나간다면 경영 성과는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이런 점에서 한창 잘나가던 독일의 폴크스바겐이 최근 곤경에 빠진 것도 그 뿌리는 오너 가문 내 잦은 경영권 다툼과 대주주 눈치만 보는 경영진이 결국 배출가스 부품 비용을 아끼려다 터진 재앙이다.

이에 비해 남다른 경영철학을 지닌 중국의 마윈 회장이 이끄는 알리바바 그룹은 그 미래가 더욱 궁금해진다. 마윈 회장은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어떤 기업이 되고 싶은지 질문을 받고 “전 세계 소기업(small business)의 발전을 위한 엔진이 되어 이들과 인류를 성장시킬 기술 혁명을 해 나가고 싶다”고 하면서 주주들이 원하는 단기 수익에는 관심이 없다고 못박아 말했다. 얼마나 멋진 포부인가!

기업 번영이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별개일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은 일자리 문제, 특히 청년 실업 해결이다. 고용은 기본적으로 파생 수요이므로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지 않으면 기업들에 무작정 고용을 늘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십 년 앞을 내다보는 경영을 하려면 지금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갖고 미래의 왕성한 경제 주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몇몇 대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청년 고용 확대 계획을 발표하면 일부 언론에서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울며 겨자먹기식’이라도 사회와 공존하는 노력을 하는 기업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한다고 현금을 쌓아두고 속앓이하는 기업보다 훨씬 낫다. 장수하는 글로벌 일류 기업들을 보면 단순히 돈 버는 것이 아닌 뚜렷하게 추구하는 비전과 경영철학이 있다. 우리 기업 중에 국민 마음속에 울림을 주는 철학을 갖고 시대의 고비마다 사회와 공존하는 그런 기업이 나오기를 열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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