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학교 성범죄는 ‘교육악’… 교직윤리헌장 전면 개정 중

여교사 교권 침해도 심각… 교육부, 학교 실사 나서야

왜 명예퇴직 ‘러시’에 교사가 담임직 기피할까

교육력 핵심은 교사… 선진국 실패 사례 답습 말아야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교사 성범죄를 예방하려면 교육계의 뼈를 깎는 깊은 자성이 필요하다. 학교 내 온정주의와 폐쇄성에 대한 비판을 교사들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교사 성범죄를 예방하려면 교육계의 뼈를 깎는 깊은 자성이 필요하다. 학교 내 온정주의와 폐쇄성에 대한 비판을 교사들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의 한 공립고 성폭력 사건이 남긴 후유증이 여전하다. 여고생 제자 6명과 여교사들이 피해를 겪은 사실이 공개되고 ‘성추행 교사’가 구속된 후에도 여진은 상당하다. 여기에 여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성추행 사건이 빈발하면서 학교 성범죄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다.

전국 50만 명의 교원 중 18만여 명을 회원으로 둔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안양옥(58) 회장을 만나 학교 성범죄의 해결책을 들었다. 안 회장은 1981년 체육교사로 교단에 섰다. 서초중, 동작중, 수도여고 교사를 거쳐 1991년부터 서울교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 서울 서초구교총회장, 서울교총 회장 등을 역임하며 교총 활동에 헌신해온 ‘교총맨’이다. 2010년 34대 회장에 당선됐으며, 2013년 연임돼 임기 5년째를 맞았다.

그는 원래 교육자 집안 출신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스승인 안용백 전 전남교육감, 광주교육감을 지낸 안준, 안순일 선생 등이 집안 어른들이다. 어릴 때 그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 장군이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고교 은사의 권유로 군인의 꿈을 접고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학교는 왜 ‘사회의 섬’ 됐나

그는 9월 18일 서울 서초구 교총회관에서 이뤄진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교 내 온정주의와 폐쇄성에 대한 비판을 교사들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교육부가 교사 성폭력 사건 은폐·축소 시 최고 파면까지 징계를 강화했지만 사후 처방보다 교육계의 뼈를 깎는 깊은 자성과 재발 방지 노력이 절실하다. ‘사회의 섬’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학교문화 개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교총은 현재 교직윤리헌장 전면 개정을 추진 중이다.

-교사들의 성희롱·성추행 근절 수칙을 제안하면서 성범죄를 ‘교육악’으로 규정했는데.

“학생이나 교직원 간 성희롱·성추행 등 모든 성범죄를 예방하고 근절해 나가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교육과 연수를 통해 성희롱·성추행 근절 노력을 생활화하고, 바른 교육을 통해 문제가 근원적으로 차단될 수 있도록 하겠다.”

-교육부가 2010∼2014년 집계한 교사 성희롱이 무려 323건에 이른다. 남자 고교생이 선생님 치마 속을 상습적으로 몰래 촬영하다 적발됐는가 하면 수업 시간에 중학생들이 “첫 경험이 언제냐” “초경은 언제 했느냐”고 성희롱성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역성추행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선생님들이 자존심이 있는데 이런 일들을 어떻게 토로하겠느냐. 여선생님들이 수업도 못 할 지경이니 교육청과 교육부가 나서서 실사를 해야 한다. 교직에 여초 현상이 생긴 후 학생들에 대한 통제권이 약해진 측면도 있다. 특히 교권보다 학생 인권이 강조되면서 학생들의 행동이 자유분방해지다 보니 역성추행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명예퇴직 신청 교사들도 매년 늘고 있다.

“2012년 5447명, 2013년 5946명에서 지난해 1만3376명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담임 기피 현상도 심각하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하기까지 교육력의 핵심은 교권이었다. 학교폭력이 심각해지고 교권이 추락하면서 교사들의 사기를 높일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의 교육 모델이 긍정적인 부분도 많은데 급진적으로 서구 모델로 가면서 학교 슬럼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학사모동행운동을 아시나요

안 회장은 “우리 교육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러워할 만큼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 교사들을 ‘네이션 빌더(nation builder)’라고 부르며 존경을 표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대한민국의 근간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안 회장은 “이제는 교사들이 자기 스스로 평가해서 연구해서 나가자는 흐름인데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실패 사례를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쏟았지만 교육 관료주의 때문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답습하다 당분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안 회장은 “교권 공백은 민(民)을 주체로 하는 사회운동으로 해결해야 한다. 학생을 놓고 어머니와 스승이 동행하는 학사모 동행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생님도 가정 방문을 하고, 학부모들도 학교를 방문해 아이 문제로 같이 상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는 담임수당을 높여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담임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부모가 모르는 부분도 짚어가면서 의견을 나눠야 아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안 회장은 또 새로운 교원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스승의 날’ 행사 때 이미 신뢰와 협치의 주체로 교원이 나서고, 1교사 1사회운동을 통해 사회로부터 믿음을 얻는 교원이 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또 평화교육단(가칭)을 만들어 세계에 진출해 봉사하고 그 경험을 우리 교단에 돌려줘서 대한민국 교실을 세계 속의 교실로 만들자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6%의 교육예산은 대통령 교육 공약이었다. 재임 중 반드시 확보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6%의 교육예산은 대통령 교육 공약이었다. 재임 중 반드시 확보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식보다 인성교육 우선해야

그의 집무실 책상 앞쪽에는 큼지막한 붓글씨로 ‘인성교육’이라고 쓰여진 부채가 놓여 있었다. 그는 인성교육실천범국민연합(이하 인실련) 수장으로 인성교육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다. 인성교육에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2012년 학교폭력으로 대구 중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 후 큰 충격을 받았다. 극단적인 학교폭력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는데 근원적 예방보다 사후 대책에만 초점을 맞춘 주먹구구식 해결 방법이더라. 예방 차원의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160여 개 기관과 사회단체가 뜻을 같이 하면서 인실련이 출범했다. 지난해 12월 여야 만장일치로 인성교육진흥법도 통과됐다. 그는 “지식, 학력 중심에서 인성 중심으로 교육 패러다임이 변화하려면 법 이전에 사회운동이 중요하다”며 “오는 11월 중 교육부가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에 따른 5개년 계획과 국가인성교육진흥위원회 신설을 발표한다. 시행령과 규칙이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교총이 다각도로 의견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 왔다.

“인성교육이 법제화되다 보니 사회적 역할이 제한됐다. 하지만 인성교육은 범국민적 실천운동이 중요하다. 생활 속에서 잘 사는 것, 다함께 어울려 사는 걸 가르쳐야 한다.”

안 회장은 21세기 교육혁명으로 불리는 ‘거꾸로 교실(Flipped Classroom)’ 이야기를 꺼냈다. ‘거꾸로 교실’은 미국에서 시작돼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영국, 독일, 일본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은 집에서 교사가 제작한 ‘디딤 영상’이라는 온라인 강좌를 통해 지식을 익히고 학교에서는 온라인에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질의응답, 프로젝트 중심 수업, 토론식 수업을 진행한다. 지난 9월 이 수업 시스템을 창시한 미국의 존 버그만이 내한해 화제를 모았다.

안 회장은 “‘거꾸로 교실’은 역발상적 접근인데 친구들과 많은 생각을 나눈다는 측면에서 분명 효과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방식과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GDP 대비 6%의 교육예산 확보해야

-교육부가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했는데.

“교육과정 개정 연구를 하면서 현장 교사들의 참여를 40% 이상으로 늘린 점은 의미가 있다. 기존 톱다운(하향식)식 관료적 정책 입안 구조가 어느 정도 현장 교사의 관점에서 추진되는 보텀업(상향식) 형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문·이과 공통과정 신설 등 변화가 큰 교육과정이라 학교에서 미리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행정적·재정적 지원 강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교육예산이 참 부족하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6%의 교육예산은 대통령 교육 공약이었다. 재임 중 반드시 확보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활동을 벌일 것이다.”

-교총이 지난해 8월 교육감 직선제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청구를 냈다.

“교육감 직선제는 시도교육 수장을 고도의 정치행위인 선거로 뽑는다는 점에서 헌법의 중요한 가치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 서울만 해도 직선제 이후 교육감 4명 전원이 법정에 섰다.”

안 회장은 “학교는 기본 운영비가 부족해 교실의 냉·난방 기기도 사용하지 못하는데 진보 교육감들의 실험주의적 정책 실현을 위해 교육예산이 사용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교육감 직선제로 지방 교육행정 권력이 생겨나면서 중앙정부와 충돌을 빚고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안 회장은 또 여성신문이 주도하는 양성평등 글로벌 캠페인 ‘히포시’ 운동에 큰 관심을 보였다. “예전에는 반장은 남자, 부반장은 여자라는 식으로 역할에 따른 성차별이 있었다면 요즘은 학교에서 많은 부분이 개선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예컨대 출석부에 남학생 이름이 먼저 나온다거나 교과서 내용 중 성역할을 제한해 묘사하는 부분이 그렇다. 미래 세대인 학생들에게 양성평등 교육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히포시 주니어, 히포시 하이틴 등 10대가 참여하는 양성평등 운동에도 적극 참여할 것이다. 교육대학이 양성평등 운동의 헤드쿼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해볼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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