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jpg

*동성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혼인과 관련한 법조항에 동성간의

결혼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9-2.jpg

*혼인 외 관계라는 낙인과 함께 호적에 아이를 사생아로 올려

야 하는 미혼모 현실 등 결혼제도 밖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게 여성가구주의 현실이다.

법·제도부터 ‘색안경’ 벗어야 한다

김모씨(38)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면서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입양기관을 찾은 그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입양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작가인 김모씨는 경제

적 능력도 있고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이를 키울 만큼 건강함에

도 불구하고, 단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입양부모의 자격

조건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독신여성 ‘엄마’될 수 없어

‘미혼모’ 사회적 낙인 여전

보건복지부의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입양부

모의 자격 조건으로는 반드시 결혼한 부부일 것, 아이와의 연령 차이

가 50세 미만일 것, 전염성 질병이 없을 것, 경제적 능력과 교육 정도

등이 고려된다. 여기서 ‘결혼’이라는 것이 조건이 되는 건 ‘결혼한

부부로 이뤄진 가족만이 건강한 가족’이라는 사회 통념과 관습상 어

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니겠냐는 게 입양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본지를 통해‘미혼모의 인권’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린 진현숙 씨는

미혼모에 대해 혼인외 관계라는 낙인과 함께 호적에 아이를 사생아로

올려야 하는 등 법적인 차별과 사회적 편견 때문에 겪은 어려움을 토

로하면서, “미혼모라는 용어 대신 ‘독신모’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정착되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 그는 입양된 딸 오름

이를 어렵게 되찾았지만 주거·탁아·생계 문제 등 어린 딸과 함께 독

신모로 살아가는 데 걸리는 문제들이 여전히 많다며, 미혼모에게만 전

적인 책임이 돌아가고 미혼부에게는 자녀의 부양의무 등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전혀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처럼 결혼

제도 밖에서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게

여성 가구주들의 말이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성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동거가 늘어나

고 있는 추세이고, 일시적인 동거 형태가 아닌 ‘의식적인’동거부부

도 생겨나고 있다. 그 가운데 선구자 격은 소설가 한림화(50) 씨. 제주

도에서 글쓰기와 전통문화를 연구중인 그는 자신의 호적에 올라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아이의 아빠인‘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그가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고집하는 이유는, 혼인은 개개인의 선택

사항이라는 것과 혼인제도가 남성 위주로 돼 있는 한 이를 거부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결혼해도 같이 안 살 수 있고, 결혼하지 않아도 같

이 살 수 있는데도” 성인이면 반드시 결혼하도록 강요하는 사회풍토

에 대해 그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가족법은 남성 핏줄만 강조하며 여성을 도구

화하는 남녀 불평등한 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가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아이의 출

생신고를 하는데도 동사무소, 면사무소를 쫓아다니며 5년을 소비해야

만 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엄마의 호적에 올리느니 같은

사생아 취급을 받아도 아버지가 인정하는 것이 낫다며 혼외자로 아버

지 호적에 올릴 것을 권유하는 동사무소 직원 등을 보며 그는 뿌리깊

은 남성중심의 사회에 기가 막혔다. 또 아이의 입학때부터 교장에게

불려가서 훈계까지 들어야 했고, 온갖 어이없는 소문에 휩싸이는 등

다시 한번 그 과정을 거치라고 하면 절대 안 하겠다고 그는 토로한다.

결혼제도 ‘거부’탓에

아이 출생신고에 5년 허비

95년 11월 레즈비언 인권모임 ‘끼리끼리’의 1주년 행사에 맞춰 한

레즈비언 커플이 처음으로 공개적인 결혼식을 올린 이래로 많은 동성

애 커플들이 축복속에 결혼식을 치렀지만 이들의 결혼은 법적인 인정

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진선미 변호사는 “혼인에 관한 모든 법률이 그 대상을 여성과 남성

으로 전제하고 있을 뿐더러, 혼인은 호적법상 양식에 따라 신고에 의

해 효력이 발생하는데 혼인신고 양식에서도 혼인 당사자란에 남편과

처로 구분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고 호적등본을 첨부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여성과 남성 커플만이 혼인 신고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동성애 커플은 합법적인 결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일

반 가족에게 주어지는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다. 동성애 커플은 부부라

도 소득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의료보험비도 이중으로 지출해

야 한다. 보험 가입시에도 동성 파트너는 수령자가 될 수 없고, 국민연

금, 산재보험 등에서 유족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 평생을 같이 살았다

고 해도 파트너가 죽었을 경우 재산상속도 받을 수 없다. 또 회사에서

결혼한 직원에게 주는 특별 휴가나 가족수당도 받을 수 없다. 파트너

가 갑작스런 사고나 병으로 병원에 실려가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면회조차 할 수 없다. 실제 이같은 경험을 한 동성애 커플은 임종을

서로 지켜볼 수 없다는 공포감과 고통을 겪었다고 전한다.

동성간의 결혼 철저히 배제

‘가족’아니라 임종조차 못지켜

동성애자를 위한 잡지 '버디'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한채윤 씨(30)

는 “동성간의 결혼을 합법화하자는 것은 결혼 자체를 원해서가 아니

라, 결혼제도에서 제외됨으로써 얻지 못하는 당연한 권리들을 찾겠다

는 것”이라고 밝힌다. 동성애자들이 요구하고 보호받아야 할 인권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동성간 결혼의 합법화는 이성애 제도

의 공고한 관습 속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한씨는 말한다.

여성한국사회연구소 부소장 박미자 교수(덕성여대 가족사회학)는

“지금까지 혼인과 혈연에 의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정상적

이고 바람직한 가족으로 봤지만, 이제 가족이란 어떤 것이라는 정의가

의미를 잃었다”고 말한다. 박 부소장은 가족 형태의 다양화는 시대적

추세라며, 개인에게 가족의 형태를 선택할 권리가 주어져야 하고 이러

한 권리를 침해하는 법과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현재 가족과 관련한 법과 제도에

서 가장 개선이 시급한 건 호주제라고 주장한다. 호주를 중심으로 편

제되는 현행 가족제도는 이혼·재혼 가정, 한부모 가정, 미혼부모 가

정, 입양 가정, 국제결혼 가정 등 다양한 가족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

고 있다며, “호주제 폐지, 호적, 성씨 문제 등이 해결되면 다양한 가

족 문제들은 어느 정도 수용되고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

다. 이에 곽 소장은 7월부터 가정법률상담소, 여성연합, 여협을 주축으

로 한 여성계가 헌법소원과 국회청원, 거리 서명운동, 전국민 캠페인

전개 등 호주제 폐지운동을 본격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