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정수 확대보다

자질과 전문성, 자율성

높일 수 있는 공천 개혁이 우선

 

정치권에서 의원 정수 확대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내년 총선 지역구 의석수를 244~249개 범위에서 정하기로 잠정 결정하면서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8월 말 현재 총 인구수는 약 5146만 명이다 이를 현재 지역구 총수 246으로 나누면 지역구당 평균 인구수는 20만9206명이 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4년 10월 30일에 최대·최소 선거구 인구 비례를 2 대 1 이하(±33.3% 이내)로 줄이도록 했다. 이 판결은 지금까지 유지됐던 3 대 1(10만~30만) 인구 편차(±50% 이내)가 헌법이 보장한 투표의 평등 원칙을 침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년 총선에서 2 대 1의 인구 편차 방식이 적용되고 지역구 수를 246명으로 하면 최소 선거구는 13만9478명, 최대 선거구는 27만8934명이 될 전망이다. 이럴 경우 상한 초과 선거구는 36개, 하한 미달 선거는 26개가 되어 조정 대상 선거구가 총 62개나 된다.

이를 토대로 지역구 총수를 기존의 246석으로 유지한 채 선거구를 재획정하면 영남 4곳, 호남 4곳, 강원 2곳이 줄어들게 되고 서울 2석, 인천 1석, 경기 7석이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선거구가 줄어드는 곳의 대부분이 농어촌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인구수가 적어 통폐합 가능성이 커진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여야 25명으로 구성된 ‘농어촌 지방주권 지키기 의원모임’은 9월 21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획정안 철회와 농어촌 특별선거구 설치 등을 주장했다. 현재 여당은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을 지키기 위해 지역구 수 증가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면서 비례대표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당은 비례대표는 절대로 줄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하고,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2 대 1로 정하면서 표의 비례성을 높이고 동시에 지역 대표성을 강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거구 획정위는 내년 총선 6개월 전인 10월 13일까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획정안을 제출해야 한다. 획정안이 제출되면 정개특위는 여야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획정위에 1회에 한해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정개특위의 변경 요구에 따라 획정위가 2차 획정안을 보내면 정개특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되고, 이때 국회는 가부를 결정한다.

의원 정수 확대론자들은 국가 발전에 따라 예산 규모, 법안 건수 등이 가파르게 늘어서 국회가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아졌는데, 의원 수는 거의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부하 상태가 돼버린 국회가 일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틀린 주장이 아니다. 의원 정수는 국민에 대한 대표성과 함께 의정 활동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고려해서 결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행정국가화한 현대 국가의 국정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인사에 있어 의회가 행정부와 비례성을 유지해야 한다. 과소한 의원 정수를 유지하면 국정 감시와 행정부 견제의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이 발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 상황에서 의원 정수가 적어서 국회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국회가 엉망이고 국민으로부터 불신받는 근본 이유는 의원 정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한마디로 운영을 개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회의 입법 과정은 ‘행정부 대 입법부’라는 관계에서 수행되기보다는 여당은 무조건 정부를 옹호하고 야당은 무조건 정부를 반대하면서 오로지 정파적인 이해를 대변해 여야 간의 갈등과 대립이 고착화되고 있다. 걸핏하면 파행되고 막말과 고성이 난무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원들의 저질 행태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국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원 정수 확대보다는 의원들의 자질과 전문성, 그리고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공천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19~21일)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회 역할에 대해 88%가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잘하고 있다’는 5%에 불과했다. 의원들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의원 정수 확대를 논의하기 전에 이런 성난 국민의 목소리를 우선 헤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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