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씨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놀이’

놀면서 자기 주도성 스스로 터득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위험한 놀이터

순천 ‘기적의 놀이터’서 놀이 공간 혁신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씨는 10월 완공하는 전남 순천시의 ‘기적의 놀이터’ 조성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씨는 10월 완공하는 전남 순천시의 ‘기적의 놀이터’ 조성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람들은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배운다고 한다. 사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 학교보다 놀이터에서 배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필요한 것을 놀이를 통해 배우는데 그 부분이 한국 사회에서 특히나 부정되고 있다.”

놀이터 디자이너다운 얘기다.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의 저자 편해문(46·사진)씨는 책의 부제를 ‘과잉보호에 내몰리는 대한민국 아이들을 위해’라고 달았다. 그는 “놀이터가 낡고 뭔가 고장이 나 있고 나사가 빠졌더라도 문제는 없다”고 말한다. 그저 “아이들이 놀이터에 갈 수 있으면 된다”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이다.

놀이 연구가이자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위원을 맡고 있는 편씨는 늘 ‘아이들이 놀 공간’에 대해 고민해왔다. 국내는 물론 일본, 독일, 덴마크 등을 돌며 아이들의 놀이와 놀이터를 연구한 그는 올해 전남 순천시의 ‘기적의 놀이터’ 조성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한국 사회에 놀이터 봇물이 터졌다”는 그의 말처럼 공공놀이터는 물론 돈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상업 놀이터까지 그 어느 때보다 놀 거리가 풍족한 요즘이지만 놀이터 디자이너이자 놀이 연구가인 그의 눈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짠’하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아이들을 위해 ‘위험한 놀이터’이자 ‘기적의 놀이터’를 꿈꾸는 그와 마주했다.

좋은 놀이터는 필요없다

안동대 민속학과 학사, 안동대 대학원 민속학과, 부산대 대학원 유아교육학과 박사과정. 학력이 말해주듯 편씨는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시절부터 옛날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어떤 놀이를 했는지 조사하며 자료를 모았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공동육아, 대안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전하는 일을 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놀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놀이터가 다시 보였다.

-낮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

“놀이터에 갈 수가 없다. 접근 자체가 안 된다. 한국에서 ‘놀이’란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놀이터에 가는 것도 부모가 정해준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권리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여기저기 지어놓으면 뭐하나.”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

“용산 쪽에 가보면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이 나와 있다. 주로 외국인 자녀들이다. 그 아이들이 묻더라. ‘왜 한국 애들은 없어요?’ ‘왜 오후에는 안 와요?’ 그 나이의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야 하고, 놀면서 자아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그쪽 부모는 알고, 우리 부모들은 모르고 있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서 배우는 줄 안다.”

-놀이가 그렇게 중요한가.

“미국에서 반사회적 행동이나 우울, 불신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연구한 자료를 발표한 적이 있다. 대부분 유년 시절 놀이 기회를 강제적으로 박탈당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한 인간의 초창기에 마음껏 놀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걱정된다. 나중에 우리가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엄청날 거다.”

-요즘 놀 거리가 풍부하지 않나.

“비석치기, 사방놀이는 놀이 이름일 뿐이다. 놀이라는 것은 어른들의 시각에서 벗어나서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인식하면 놀 수 없다. 어른들이 안 볼 때 하는 행동이 놀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한다. 그런 것에서 벗어난 것이 놀이다. 자유와 해방을 만날 수 있는 것이 놀이다. 놀이의 다른 말은 자유다. 놀이라는 말이 너무 오염됐다.”

-놀이가 오염됐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주변에 보면 놀이 아닌 게 없다. 놀이수학, 놀이학교, 놀이영어….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놀이가 뭔지 모르게 됐다. 또 기획된 놀이, 체험들이 너무 많다. 무엇이 자연스러운 놀이인지 잊어버렸다. 놀이라는 것은 오락이나 여가하고 다르다. 돈이 안 든다. 그런데 이제 노는 데도 돈이 드는 지경이다.”

 

편씨는 공식처럼 지어진 똑같은 놀이터를 혁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편씨는 공식처럼 지어진 똑같은 놀이터를 혁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공식처럼 지어진 똑같은 놀이터

언제부턴가 대형마트에 자리 잡은 실내 놀이터에 가보면 아주 낯선 장면을 보게 된다. 옆에 있는 친구들과 아무런 대화 없이 혼자 질주하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놀이는 관계”라고 말하는 그에게 이 광경은 충격이다. 현란한 사이키 조명을 돌리며 아이들을 흥분시킬 때는 아찔하다. 문제는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놀 곳이 없다는 것이다. 편씨는 공식처럼 지어진 똑같은 놀이터를 혁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공놀이터의 문제가 무엇인가.

“상상력이 고갈됐다. 놀이터에 모래가 하나도 없다. 바닥에 탄성포장 고무를 쓰는데 여름에는 열이 팍팍 올라온다. 거기에 그네 하나, 미끄럼틀 하나, 시소 하나. 어딜 가나 이런 식이다. 놀이터를 준공 검사 통과용으로 짓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놀게 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들이 되길 바라나.”

-외국의 놀이터는 어떤가.

“똑같은 놀이터가 하나도 없다. 놀이터 입찰을 한 사람이 다 할 수 없게 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몇몇 업체가 기성품을 찍어내 수천 개씩 가져다 꽂아놓는다.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이들 공간에 대해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나. 이제 놀이터를 위해 제대로 돈을 좀 써보자.”

-순천에서 ‘기적의 놀이터’를 만들고 있는데.

“놀이 기구가 하나도 없는 놀이터를 만들고 있다. ‘왜 놀이터가 이 모양이냐’ ‘바꿔라’ 이렇게 싸우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놀이터를 보여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오는 10월 말에 공개된다. 시설 위주의 놀이터에서 벗어나서 옛날 우리가 놀았던 언덕이나 굴, 냇가, 언덕, 나무, 바위가 있다. 화학제품은 하나도 없다. 꼭 보러 오시라.”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의 동의를 얻는 게 힘들진 않았나.

“순천시는 아이들의 생각을 놀이터에 담아내려고 지난 8월 ‘기적의 놀이터 참여 디자인 캠프’를 열었다. 시민들과 함께 놀이터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왜 그런 놀이터가 필요한지에 대해 제일 먼저 이해한 이들이 시장님과 공원녹지과 관계자들이었다. 조충훈 순천시장님이 ‘선생님, 아이들이 학원 가는 것을 까먹을 정도로 놀이에 빠질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라고 하시더라.”

-아이들의 의견도 반영했다고 들었다.

“가장 가슴에 남은 일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 없어야 할 것’에 대해 말해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꼽은 게 무엇이었는지 아나. 선생님, 엄마, 아빠였다. 결국, 그동안 놀이터에 못 오게 한 장애물을 이야기한 것이다. 좀 놀려고 하면 ‘학원 가야지’라고 말하는 존재들. 기적의 놀이터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감각을 열어주는 것이 참교육

그는 “놀면서 세상의 이런저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부모”라고 말한다. 자신도 안동 시골집에서 12년째 장작불로 밥 지어 먹는 귀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동네 아이들에게 그의 집 앞마당은 훌륭한 놀이터다. 놀이와 놀이터에 대해 말하지만, 편씨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와 연결된다. 아이들의 창의력은 몸에서 출발하고, 관계 속에서 자란다고 믿는 그는 답답한 한국 교육에 파묻힌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 놀이가 중요하다면 대안학교가 답이 될 수 있을까.

“대안학교는 주로 밖에서 놀고, 텃밭도 가꾼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은 적다고 생각한다. 들로, 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 생태적인 감성이 커진다고 보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다. 자연 속에서 자란 사람은 다 인품이 좋은가. 아이들은 결국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 대안학교에 보내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걸 누가 결정하는지 모르겠다. 왜 부모들이 결정하나. 그것도 부모들이 아이들을 자기 마음대로 키우는 거다. 아이들이 공교육을 경험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교육 환경보다 잘 놀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놀아야지 자기 자신을 만들 수 있다. 자기의 세계를 놀면서, 부딪치면서 만들어야 한다. 어디까지 만들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자기 주도성은 테크닉이 아니라 아이가 주인이 되어서 자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긴다.”

-아이들을 잘 놀려야 하는 이유가 더 있나.

“아이들은 놀 때, 잘 때, 먹을 때 자란다. 열심히 논 아이들이 잘 먹는다. 열심히 논 아이들이 잘 잔다. 안 먹고 안 잔다고 걱정하는 것은 결국 노는 걸 도와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놀이를 안 도와주면서 자는 거, 먹는 것만 걱정하는 부모들과 어디까지 얘기할 수 있겠나. 놀이가 필요하다.”

-다양한 체험 활동도 중요한가.

“반 고흐 그림전을 보고 인성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온갖 체험전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끌고 다닌다. 허무맹랑하다.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자라겠나. 아이들은 이 도시와 자본의 틈에서 엄마 아빠가 어떻게 소비하며 사는지 보면서 자란다. 아이들은 그것만 보고 산다. ‘사고 싶다’ ‘왜 난 저게 없을까’ 소비가 아이들의 놀이가 됐다.”

-부모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부모들이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들으러 다니면서 시간을 다 써버린다. 누구한테 물어봐도 답은 없다. 문화센터 가서 듣지 마라. 그저 아이를 봐라. 부모의 첫 번째 덕목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긋이 오래도록 보고 있어야 한다. 전문가 조언, 책, 방송 다 필요없다. 내가 아이를 보고 있어야 한다.”

 

용 이야기가 살아 있는 독일 베를린의 놀이터 ⓒ편해문
용 이야기가 살아 있는 독일 베를린의 놀이터 ⓒ편해문

♦ 편해문이 생각하는 좋은 놀이터의 조건

“놀이터는 아이들이 완성하는 것이다.” 편해문씨는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편씨는 “놀이기구 하나에 이해할 수 없는 금액이 쓰이고, 각종 놀이터 규제에 디자인 베끼기까지 더해져 불구의 놀이터가 만들어진다”고 한탄했다. 우리의 색깔이 담긴 특별한 놀이터를 위해 그가 제시하는 필수 조건은 오히려 단순하다. 아래는 편씨가 말하는 13가지 조건. 

-위험과 만나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놀이터

-놀이 기구를 놀이터의 필수 요소로 삼지 않는 놀이터

-도전, 탐험, 상상할 수 있는 놀이터

-3C(Childhood, Care, Community)와 함께하는 공유 놀이터

-장애와 나이에 차별이 없는 놀이터

-공터 놀이터에서 하이테크 놀이터에 이르는 스펙트럼이 다양한 놀이터

-또 가고 싶고, 오면 가고 싶지 않은 놀이터

-간섭과 제지와 금지로부터 해방된 놀이터

-다른 성격의 건물이나 시설과 거리를 둔 놀이터

-한국문화의 정체성과 시대적 보편성이 녹아 있는 놀이터

-CCTV가 없는 놀이터

-인공과 화학의 떡칠에서 벗어난 놀이터

-아이들이 마침내 완성하는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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