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두 번째 사표 

개그에 비정규직 설움 담아

“하고픈 일 놓치지 말아야”

 

개그우먼 홍현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개그우먼 홍현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언니 예뻐요!”

지난 5일 여성 문화인 멘토링 콘서트 ‘신나는 언니들’ 제주도 무대에 개그우먼 홍현희(33·사진)씨가 등장하자 객석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개그 공연 ‘드립걸즈’를 위해 3개월간의 다이어트로 10㎏을 감량한 늘씬한 모습에 관객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부채를 들고 등장한 홍씨는 “사실 이 부채에 맞으면 굉장히 일이 잘 풀린다”며 “선착순 세 명에게 복비 없이 때려주겠다”고 말했다. 몇몇 관객이 “여기요~”라며 때려달라고 소리치자 “이따 때려줄게. 이 지지배들아~”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회를 맡은 배우 양영조씨가 “2012년 S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후, TV뿐 아니라 라디오에서 활약하는 등 바쁠 텐데 제주도까지 찾아줘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자 “사실 요즘 좀 한가하다”며 재치 있는 특유의 입담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웃기는 여자’ 홍현희씨가 ‘신나는 언니들’을 찾은 청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활짝 웃으며 관객 앞에 선 그는 “방송에 나오는 모습만 보면 우여곡절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에게 많은 스토리가 있었다”며 운을 뗐다. 이과 출신인 그는 졸업 후 외국계 제약회사에 입사했다. SBS 개그맨 공채 9기 모집 방송을 본 건 26살 때였다. 용기를 내 도전한 결과는 ‘합격’. 사표를 내고 개그우먼을 선택했지만, 방송 생활은 힘들었다.

“방송국 생활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 힘들었다. 1년 반 만에 예전에 다니던 제약회사에 다시 들어갔다. 그만둔 직원을 받아주는 회사가 얼마나 있겠나. 계약직으로 받아줬다. 뭔가 외롭고 혼자인 느낌이었다. 어느 날 전 직원이 포상휴가로 해외 여행을 가는데 계약직은 안 데리고 가더라. 그때 두 번째 용기가 생겼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선 개그맨이 돼야겠다’ 다짐하고 두 번째 사표를 냈다. 그때가 서른이었다.”

새벽 6시 헬스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개그를 짜기 시작했다. “그런 행복감은 처음 느껴봤다”는 그는 SBS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가 없어지면서 심야 12시 30분에 방송되는 ‘개그투나잇’에 출연하게 된다. ‘더 레드’ 코너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빨간 부채를 든 그가 나오면 분당 시청률은 9~10%에 달했다. 비정규직의 비애와 분노를 표현한 그의 개그에 “통쾌하다”는 댓글이 달렸다.

“‘내가 무슨 개그를 해’라고 포기했으면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설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이 인생의 첫 번째라고 생각하기 바란라.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다. 용기와 행복은 절대로 저축되지 않더라.”

홍현희씨는 “다른 개그우먼이 인기를 끌고, 더 잘나가는 걸 보면 어떤가”라는 질문에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네가 개그콘서트로 나왔으면 20억은 벌었을 텐데’라는 말이다.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가면 꼭 듣는다. 감사했던 마음이 무너지고 상대적인 박탈감이 생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을 부러워했던 나 자신이 못나 보이더라. 나한테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간 오겠지’ 희망을 품고 좋은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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