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대선 출마와 맞물려 재조명…20년 전 베이징 정치 커리어의 원점

20년간 미국 여성 변화는…정치·경제 고위직 진출 늘었으나 노동 참여는 감소

 

20년전 베이징 여성회의에서 연설하는 힐러리 클린턴(위)와 9월 4일 방송에 출연한 모습. MSNBC 방송화면 캡쳐. ⓒmsnbc.com
20년전 베이징 여성회의에서 연설하는 힐러리 클린턴(위)와 9월 4일 방송에 출연한 모습. MSNBC 방송화면 캡쳐. ⓒmsnbc.com
“인간의 권리는 여성의 권리(Human rights are women's rights)이고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이다.”

1995년 9월 5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4회 세계여성회의에서 미국 대표로 참여한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역사적인 연설이 울려 퍼졌다. 당시 47세였던 그는 “여성의 권리를 인권과 별도로 논의하는 것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며 지참금 액수 때문에 일어나는 살인, 전쟁 중 성폭력,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불임 시술, 딸이라는 이유로 일어나는 여아 살해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인권 유린의 실태에 대해 규탄했다.

세계 여성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이 연설이 발표된 지 20주년을 맞았다. 힐러리 클린턴의 2016년 대선 캠페인과 맞물려 20년 전의 선언이 다시금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 9월 4일, 클린턴은 20년 전 취재를 위해 베이징 현장에 있었던 MSNBC의 앵커 안드레아 미첼과 일대일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교육과 보건 분야에서는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정치·경제적 권리나 여성 안전 측면에서는 여전히 뒤처져 있다”면서 “물이 반쯤 차 있는 컵과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대선 출마는 20년 전 베이징에서 여성 발전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던 순간에서 기인했다며 “출마 선언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가 발전을 위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영부인이 세계무대에서 외교적으로 미묘한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것에 대해 백악관 내에서도 충돌이 있었다면서 “베이징에 가기 전에 클린턴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에서도 많은 우려와 반대가 있었지만 반드시 가겠다고 했다”고 뒷이야기도 전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지난 20년간 교육과 보건 분야에서는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정치·경제적 권리나 여성 안전 측면에서는 여전히 뒤처져 있다”며 “물이 반쯤 차 있는 컵과 같다”고 말했다. ⓒ뉴시스
힐러리 클린턴은 “지난 20년간 교육과 보건 분야에서는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정치·경제적 권리나 여성 안전 측면에서는 여전히 뒤처져 있다”며 “물이 반쯤 차 있는 컵과 같다”고 말했다. ⓒ뉴시스
힐러리 클린턴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 했던 그 연설은 남편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정체성의 상징이 됐고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선거운동의 핵심 포인트로서 되살아났다. 개인 이메일 사용 문제로 궁지에 몰린 가운데 열린 5일 뉴햄프셔 주 포츠머스 유세 현장에서도 그는 20년 전의 연설을 다시 떠올리며 선거운동 기간 줄곧 강조했던 여성 이슈와 연결시켰다.

그는 “여성에게 좋은 것이 미국에도 좋다(What's good for women is good for Americans)”라며 남녀동일임금, 보육, 육아휴직은 여성 이슈가 아니라 경제 이슈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날 뉴햄프셔 상원의원인 진 샤힌 의원의 지지를 확보하고 여성 유권자를 겨냥한 ‘힐러리를 지지하는 여성들의 모임’(Women for Hilary) 발족식을 가졌다.

힐러리 클린턴이 여성 이슈를 강조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조차 여성들의 상황은 아직 완전치 않다. 『가디언』 미국판은 지난 20년간 미국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비교 분석했다.

정치적으로는 소폭의 성과를 거뒀다. 20년 전 미 104대 의회가 개원했을 때 435명의 하원의원 중 여성은 50명, 100명의 상원의원 중 여성은 9명에 불과했다. 여성 의원의 수는 지난해 중간 선거에서 사상 최초로 100명을 넘어섰고 올해 초 개원한 114개 의회에서 여성은 하원 84명, 상원 20명으로 총 104명을 기록했다.

경제 분야를 살펴보면 20년 전 경제전문지『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에서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26명의 여성 CEO가 500대 기업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여성의 노동 참여 비율은 오히려 감소하여 1995년 58.9%였지만 2013년엔 57.2%에 불과했다. 전체 여성 경제활동 인구는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인구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1992년 남성의 71%였던 여성 평균임금은 2013년 76%로 단 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65%에서 64%로 오히려 감소한 흑인 여성, 54%에서 56%로 소폭 증가한 라틴계 여성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가정폭력 또한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통계에 따르면 1995년 1년 동안 1252명의 성인 여성이 배우자에 의해 살해당했고 130만 명의 여성이 육체적인 폭력을, 50만 명이 스토킹에 시달렸다. 20년이 지난 후 그 수치는 절반 이하로 크게 감소했으나 여전히 여성 17명 중 1명은 배우자에게 각종 폭력행위에 시달리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여성들의 현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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