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에 확산된 ‘덜루스 모델’ 특징은

가해자 체포 의무·관계 기관의 유기적 협업

증거·범죄이력 담긴 경찰 보고서 NGO와 공유

 

존 베이어 DAIP 이사장과 제니퍼 로즈 피해자 지원 담당관이 가정폭력 예방 프로그램인 ‘덜루스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존 베이어 DAIP 이사장과 제니퍼 로즈 피해자 지원 담당관이 가정폭력 예방 프로그램인 ‘덜루스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가정폭력은 안전과 생존을 위협하는 범죄행위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집안일’이나 ‘부부싸움’ 정도로만 여기는 사회 인식은 여전하다. 가정폭력을 목격해도 신고하지 않거나, 폭력 피해자가 직접 신고를 해도 부부싸움으로 여기며 안이하게 대응한 경찰의 모습이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35년 전 미국도 우리와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미네소타 주의 작은 도시 덜루스 지역에서 만들어진 가정폭력 대응 시스템인 ‘덜루스 모델(Duluth model)’이 미국 대다수 주와 도시에 확산되면서 가정폭력은 ‘개인의 일’이 아닌 지역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덜루스 모델은 지난 1981년 미국의 한 여성 운동가가 집 없이 거리를 떠도는 여성들 대부분이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시작한 가정폭력 개입 프로그램이다. 경찰과 시민단체, 법률·의료 사회서비스 기관, 검찰, 법원 등 관계 기관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업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덜루스 지역에서 관계 기관을 연결해주고 조율하는 역할은 비정부기구(NGO)인 ‘가정폭력 개입 프로그램’(DAIP·Domestic Abuse Intervention Programs)이 맡고 있다.

존 베이어 DAIP 이사장은 “30여 년 전에는 신고부터 처벌까지 각각의 단계가 단절돼 있었다”며 “덜루스 모델을 도입한 후 가정폭력 피해자가 신고 전화를 하는 순간부터 수사와 기소, 구형, 가해자 교정 과정까지 전 과정이 하나로 통합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가해자 의무 체포 정책’은 덜루스 모델이 안착할 수 있었던 토대다. 현재 미네소타의 경찰관은 가해자가 신체적 폭력을 가했거나, 피해자에게 신체적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유발하는 언어·정신적 폭력을 가했을 것으로 의심되면 72시간 내에 가정폭력 가해자를 체포할 수 있다. 법원에서 영장을 받지 않아도 경찰관이 가해자를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때 경찰이 작성한 초기 보고서는 관련 시민단체를 비롯한 관계 기관과 공유된다. 보고서에는 가해자의 증거와 증인, 수사 상황, 과거 폭력 이력, 접근 금지 명령 여부 등이 담겨 있다. 베이어 이사장은 “가정폭력 가해자 관련 정보는 8년 동안 추적·관리된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방안으로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크를 강조하면서도 경찰의 보고서를 민간 시민단체와 공유하는 일은 없으며,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후 관리도 경찰이 도맡는다.

미국에서 가해자 의무 체포 정책이 시행되고 통합 시스템을 통한 관계 기관의 유기적 협업이 이뤄지자 재발률이 눈에 띄게 줄었다. 덜루스 모델이 적용된 지역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의 68%는 8년 이상 가정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니퍼 로즈 DAIP 피해자 지원 담당관은 “지역사회가 일관되게 가해자들에게 가정폭력은 범죄행위라는 확실한 인식을 심어주는 것과 함께 피해자들에게도 가해자 곁을 떠날 수 있으며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가정폭력을 초기에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DAIP는 지난해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엔여성(UN Women) 산하 세계미래위원회가 주는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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