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전보는 통근 거리나 승진 유·불리 등을 근거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뉴시스·여성신문
교사 전보는 통근 거리나 승진 유·불리 등을 근거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뉴시스·여성신문

한국 교육의 변화를 막는 쇠말뚝 제1호로 교사 전보 제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혹시 너무 하찮은 문제를 잡은 게 아닌가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작은 나사못 하나를 풀어 육중한 기계를 해체할 수 있듯 전보 제도의 혁파가 한국 교육에 미칠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교사 전보 제도의 연원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그 훨씬 이전에도 관리들의 승진이나 좌천에 따른 임지 변경 관행이 있기는 했었지만, 지금과 유사한 형태의 교사 전보 제도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중학교 무시험 입학과 고교평준화 제도 도입으로 학교교육이 급격하게 팽창한 70년대 후반 이후 교원 양성과 임용, 승진 제도와 함께 좀 더 정비된 형태의 정기 전보 제도가 안착됐다.

전보 제도의 기본 취지는 교사들에게 공평한 근무 여건을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즉, 누구든지 여건이 좋은 학교와 나쁜 학교에 번갈아가면서 근무하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학교 간 시설이나 교통 여건이 크게 달랐던 1970∼80년대에는 교사들에게 절실한 문제이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학교 간 차이가 대부분 사라짐에 따라 이러한 명분은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육청마다 세세한 부분까지 규칙으로 만들어질 만큼 더욱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 양상이다.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곳에 가려는 교사들의 경쟁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교사들에게 전보 제도는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말의 ‘잿밥’에 해당된다. 학교 선택이 교육적 고려보다는 통근 거리나 승진 유·불리 등을 근거로 이뤄진다. 그게 왜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심각한 폐해 두 가지만 지적하겠다.

첫째, 학교에 대한 교사들의 정주 의식이 사라지고 한낱 장돌뱅이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장돌뱅이는 5일장을 찾아 아침 일찍 좌판을 펼치지만, 낌새가 시원찮으면 언제든지 짐을 싸서 다음 장으로 간다. 요즘 한두 해 근무하다 내신을 내어 다른 학교로 옮기는 교사들을 보면 영락없는 장돌뱅이 형국이다.

둘째, 이처럼 주인 없는 학교이기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5·31 교육개혁 이후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무수한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요란하게 성공 사례로 보도됐던 개혁 성과가 주도했던 교장과 교사들이 떠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전보 제도가 있는 한 모든 학교 개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이 어리석다 못해 거의 범죄에 가깝다고 할 정책이 왜 수십 년 이상 지속되는지 모르겠다. 어떤 학교에서 적으면 수년간 기천만 원, 많으면 수억 원씩 주고 추진한 개혁 성과가 수년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그 투입한 예산의 대가를 어디서 누구에게 요구한단 말인가.

이 답답한 현실의 핵심 요인은 바로 교사들의 전보 제도다. 근무 여건 개선이라는 당근이 학교교육의 근간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우리에게 전보 제도를 전해준 일본에서는 교사가 한 학교에 보통 10년 정도 머물 수 있을 정도로 완화된 형태로 달라져 있다.

그런데 이 말뚝을 뽑는 일은 간단치 않다. 그것은 교사 인사 제도는 물론 학교교육 체제 전반에 걸친 구조 변화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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