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일 서울 신천역 인근 부동산 밀집상가를 시민이 지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11월 2일 서울 신천역 인근 부동산 밀집상가를 시민이 지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갑자기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전세 계약을 할 때만 해도 아주 오래 오래 살아도 좋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그동안 전혀 생각지 않고 살았던 일이다. 구두계약은 안 했지만 오래도록 살아도 좋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당황했더니, 미안하게 됐다며 갑자기 돈이 필요해 그렇다며 변명을 했다. 두 아이가 집을 떠나려면 몇 년 더 있어야 하기에 아직 이 집에서 더 살았으면 했는데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때만 해도 별 일 아닌 줄 알았다. 막상 집이 팔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전세를 구하러 이곳저곳 문의해 보고는 정신이 아득했다. 전세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라 있었던 것이다. 분주하게 사느라 또 이사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매스컴에서 떠드는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는데 그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전세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몇 주 동안 밤을 하얗게 밝히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서울 하늘 아래 살아갈 집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로 이사를 가는 것이 가장 이동거리가 짧을까 등등 모래성을 쌓았다 부셨다가를 반복했다. 고민과 번뇌의 수고 덕분인지 어렵게 전세를 구해 드디어 최근 이사를 했다.

더 큰 문제는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 시작됐다. 이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부차적인 해야 할 일이 많은지 평화롭게 지냈던 그동안의 일상을 이어나가기가 어려웠다. 이삿짐센터 계약을 하고 나니 드디어 짐 정리를 해야만 했다. 옷장 여기저기 쌓여 있는 옷, 책상 위의 널브러진 책,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냉장고 속 음식,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집안 곳곳에 있는 물건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그 많은 물건을 그동안 가지고 살았다는 게 스스로 답답하기까지 했다. 어제까지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은 정물들인데 이사를 결정하고 나니 물건이 살아 움직이는 듯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정리해야 현명한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결국 함께 살아왔던 많은 물건과 결별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식기세척기, 쌀통, 가스오븐레인지 등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다음으로 옷, 신발, 그릇 등은 덜 사용하는 것들 중심으로 과감하게 정리해서 재활용센터에 보냈다. 냉장고 속 음식도 최소한으로 남기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리 많은 물건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진대, 집안 이곳저곳 구석구석에 있는 많은 물건들에 대해 반성했다. 우리는 삶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물건들을 쌓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어떻게 그리 많은 물건들과 함께 살아왔을까.

이사를 하며 항상 철칙으로 실천하는 일이 있는데 큰 문제가 없는 한 최대한 있는 그대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그보다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쓸데없이 치장하고 공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청소하고 정리만 하고서 이사를 마쳤다.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사를 하게 됐지만 이사를 하면서 비로소 쌓아놓은 많은 물건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고 그래서 더욱 간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어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졌다.

『지구인의 도시 사용법』 저자인 환경운동가 박경화씨는 도시인의 어마어마한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숲이 파괴되고 사라지면서 매년 봄이면 황사와 미세먼지를 걱정하며 마스크를 챙기는 게 일상이 돼 버렸다면서 도시에서 가능한 한 생태적인 삶의 방법으로 소박한 소비와 함께 나눠 쓰는 착한 소비를 권했다. 이사를 하면서 잘 버리는 지혜를 배웠으니 지구인의 도시 사용법을 터득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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