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 젠더로 접근하라 ② 싱글 여성 노인, ‘따로 또 같이’ 산다

65세 이상 여성 노인 거주

NPO 법인 운영… 전국에 40곳

무연 사회 벗어날 생활 공동체

여성 독신 증가 따른 자구책

‘혼자 사는 노후’가 두려운 여성 노인들에겐 그룹리빙이나 컬렉티브 하우스는 노후 주거의 대안이다. 입주자들은 사생활을 방해받지 않으면서도 공유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통해 외로움을 덜 수 있다. 컬렉티브 하우스와 달리 그룹리빙은 65세 이상 여성 노인들이 주로 모여 산다. 이런 협동 주거는 고독을 존중하면서도 고립은 시키지 않는 지혜가 묻어난다.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쇼난다이에 있는 일본 최초의 그룹리빙 ‘코코(COCO)쇼난다이’와 도쿄도 다마시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세이세키 컬렉티브 하우스를 취재했다.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쇼난다이에 있는 그룹리빙 ‘코코쇼난다이’ 입주자인 패턴디자이너 가와사키 지에코씨는 “라이프 서포터가 상주해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후지사와=박길자 기자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쇼난다이에 있는 그룹리빙 ‘코코쇼난다이’ 입주자인 패턴디자이너 가와사키 지에코씨는 “라이프 서포터가 상주해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후지사와=박길자 기자

“나 홀로 지내다 보면 고립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이곳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있으면 ‘내 옆에 사람이 있구나’ 하는 편안한 느낌을 받아요. 혼자 살며 안전이 늘 불안했는데 이곳에선 치안 걱정이 없어요. 조금은 불편하지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공동생활을 택했죠.”

라이프 서포터 있어 편리

패턴디자이너 가와사키 지에코(69)씨의 집은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쇼난다이에 있는 그룹리빙 ‘코코(COCO)쇼난다이’다. 싱글침대와 책상, TV가 갖춰진 원룸은 집주인의 성격을 보여주듯 깔끔했다. 그룹리빙 코코다카크라에 있다가 한 달 전 이곳에 왔다는 가와사키씨는 도쿄에서 60년간 살다가 이 도시로 이사를 왔다.

싱글인 그는 반려동물로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도쿄에선 한 동네에 오래 살았어요. 이웃 사촌이 있지만 내가 아프거나 부탁할 일이 생기면 말하기가 난처했어요. 이곳에는 라이프 서포터가 상주해 있으니까 어려운 일을 부탁하는 데 부담 없어 좋아요.” 그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며 환히 웃었다.

코코쇼난다이는 일본에서 최초로 생긴 그룹리빙이다. 공동체(Community)와 지역사회(Community)의 앞글자를 따서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 현재 67∼87세 싱글 여성 10명이 입주해 있다. ‘혼자 사는 노후’가 두려운 여성 노인들에겐 그룹리빙은 노후 주거의 대안이다. 협동 주거에서 입주자들은 사생활을 방해받지 않으면서도 공유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통해 외로움을 덜 수 있다.

오후 5시 정각이 되자 국민체조 노래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여성 노인들이 복도에 나오더니 몸풀기부터 팔·다리·옆구리 운동까지 열심히 운동을 했다.

코코쇼난다이가 문을 연 것은 1999년 4월이다. 개소 3년 전 대학교수와 건축가, 개호시설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고령자베리어프리주택연구회를 만들었다. 사이조 세쓰코(87) NPO법인 코코쇼난다이 이사장은 “유료 노인홈(실버타운)이나 양로원이 있지만 자립 생활을 못 하고 관리를 받아야 한다”며 “노후를 주체적·자립적으로 보내고 싶은 노인들이 살 만한 협동 주거에 대해 연구를 거듭했다. 이후 그룹리빙을 짓기로 하고 부지를 찾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쇼난다이 지역의 한 지주가 이런 뜻에 공감해 배밭 991㎡(300평)에 그룹리빙을 지어 임대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때마침 특정비영리활동법(NPO법)이 제정돼 국가로부터 200만엔, 가나가와현 100만엔, 후지사와시로부터 100만엔을 각각 지원받았다.

코코쇼난다이 1층에는 비영리단체(NPO) 법인 사무국이 들어서 있다. 코코쇼난다이가 문을 연 뒤 코코아리마, 코코다카크라도 잇따라 문을 열었다. 이후 코코쇼난다이를 벤치마킹해 일본 곳곳에 그룹리빙이 생겼다.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관리자가 상주하므로 노인들이 자립 생활을 하는 형태는 아니다. 반면 NPO 법인이 운영하는 그룹리빙은 사무국에 라이프 서포터를 두고, 자립 생활도 보장한다. 개호가 필요하면 개호 보험을 이용해 외부에서 방문 요양을 나온다. 사이조 세쓰코 이사장은 “이 같은 형태의 그룹리빙이 전국에 40곳 있다”고 전했다.

입주 분담금은 370만엔, 월세는 13만8000엔이다. 공동 식당에서 점심식사와 저녁식사는 제공해 준다. 물론 원룸에 주방이 설치돼 있어 입주자가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다. 공동 욕실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 있고 여성 노인이 혼자 목욕하다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둘, 셋씩 같이 사용하는 큰 욕조를 갖췄다. 공동 화장실도 휠체어 두 대가 들어갈 만큼 널찍하다. 가정용 엘리베이터도 설치돼 있고, 2층 게스트룸에서 놀러온 친구가 숙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입주자들은 3개월에 한 차례 생일 파티를 열어 친목을 다진다. 공동 식당에 피아노도 구비해 가끔 작은 콘서트를 연다.

 

사이조 세츠코 NPO법인 코코쇼난다이 이사장. 싱글인 그는 코코쇼난다이의 최고령 입주자다. ⓒ후지사와=박길자 기자
사이조 세츠코 NPO법인 코코쇼난다이 이사장. 싱글인 그는 코코쇼난다이의 최고령 입주자다. ⓒ후지사와=박길자 기자

 

그룹리빙 ‘코코쇼난다이’ 전경. ⓒ후지사와=박길자 기자
그룹리빙 ‘코코쇼난다이’ 전경. ⓒ후지사와=박길자 기자

65세 이상 노인 세대만 거주

그룹리빙과 컬렉티브 하우스, 코하우징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우선 컬렉티브 하우스와 코하우징은 다양한 세대가 공동생활을 하고 부부, 가족이 같이 살기도 한다. 반면 그룹리빙은 65세 이상 노인 가구만 모여 산다. 부부도 입소하지만 대부분 싱글 여성 노인들이다. 딸이나 아들이 있어도 외국에 거주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혼자 맞는 노후는 이미 자연스런 현상이 됐다. 코코아리마에는 남성 노인이 1명만 있을 뿐 모두 여성 노인들이다. 코코다카크라는 아예 여성 노인용 그룹리빙으로 설계됐다.

사이조 세쓰코 이사장은 시의원을 지낸 장애인복지 전문가로 예순네 살에 퇴직했다. 그는 “선진국들의 다양한 노인 주택을 보면서 일본에도 노인들을 위한 협동 주거를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4자매 중 막내딸인 그는 싱글이다.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그는 “가부장적인 일본 사회에서 남녀 임금격차는 여전하고, 남편 사망 후 빈곤에 시달리는 여성 노인들도 적지 않다. 그룹리빙은 수입원이 적은 여성들을 위한 주거 공간”이라며 “여성이 시설에서 마지막을 맞는 것보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코코쇼난다이의 최고령자였던 싱글의 97세 여성은 이곳에서 또래 노인들과 편안히 지내다 세상과 이별했다. 나카노 미쓰르 코코쇼난다이 사무국장은 “이곳에 거주한 쇼쇼다카크라에는 지금도 92세 여성 노인이 살고 있다”고 전했다.

사별이 많은 고령 가구에선 싱글이 일반적이다. 평균수명이 긴 여성은 남성보다 홀로 살 확률이 높다. 그룹리빙에 주목하는 이유다. 자립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고령 사회인 일본도 고령자 정책은 미비하다. 개호보험료도 비싸고 생활비가 상향되는 추세라 고령자들이 점점 살기 힘들다. 오키나와에 있는 그룹리빙에는 기초생활 수급자들도 있다. 그룹리빙은 생활비 절감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물론 공동생활이 맞지 않아 퇴소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비교적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한 여성 노인은 아들 부부와 같이 살다 입소했다. 아들 부부가 자신만 집에 두고 외식하거나 여행을 떠나 섭섭함이 컸다고 한다. 자립적인 생활 공간을 원하던 중 코코쇼난다이에 와서 많이 만족해했다.”(사이조 세쓰코 이사장)

 

일본 도쿄도 다마시에 있는 세이세키 컬렉티브 하우스 입주자들이 ‘공동 요리’를 하고 있다. ⓒ다마=박길자 기자
일본 도쿄도 다마시에 있는 세이세키 컬렉티브 하우스 입주자들이 ‘공동 요리’를 하고 있다. ⓒ다마=박길자 기자

 

세이세키 컬렉티브 하우스 전경. 작은 아파트를 재건축해 공동 주거 공간으로 꾸몄다. ⓒ다마=박길자 기자
세이세키 컬렉티브 하우스 전경. 작은 아파트를 재건축해 공동 주거 공간으로 꾸몄다. ⓒ다마=박길자 기자

입주 7년째 컬렉티브 하우스 가보니

취재진이 도쿄도 다마시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세이세키 컬렉티브 하우스를 찾았을 때는 때마침 입주 희망자들이 견학을 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아들과 함께 온 노인 부부도 있었다. 세이세키 측은 두 달에 한 번씩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개별 공간은 25∼50㎡ 규모로 원룸과 투룸이 있다. 현재 29명이 입주해 있다. 2009년 문을 열었으니 입주 7년째다. 현관에 들어서자 입주자들이 칠월칠석 때 만든 소원지를 매단 나무 장식물이 놓여 있고, 공동 게시판과 재활용함도 눈에 띄었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나 옷을 놔두면 필요한 입주자가 기록을 남긴 후 가져다 쓰면 된다.

입주자의 안내로 둘러본 컬렉티브 하우스는 ‘따로 또 같이’ 사는 대안 주거다. 작은 아파트를 재건축해 공동 주거 공간으로 꾸몄다. 특히 집집마다 베란다가 따로 있지 않고 옆집과 연결되는 구조가 이채로웠다. 다른 아파트처럼 집집마다 떨어져서 사는 게 아니라 ‘열린 공간’이 바로 컬렉티브 하우스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옆집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도 나누고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는 식물 물주기도 부탁할 수 있다.

옥상 텃밭에선 토마토, 양파, 가지 등을 재배해서 공동 요리를 할 때 식재료로 쓴다. 공동 거실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고, 1회 이용 시 50엔을 내면 공동 세탁실에서 빨래를 할 수 있다. 목공예실, 바비큐실도 있다. 관리는 입주자 몫이다. 모든 입주자가 공동 요리, 세탁실 관리, 마당 관리, 청소 등 집안일에 참여하고 있다.

때마침 이틀에 한 번씩 ‘공동요리’를 하는 날이라 입주자들이 음식 만들기에 바빴다. 식재료 원산지는 입주자들이 볼 수 있도록 기록해야 한다. 세이세키 컬렉티브 하우스는 NPO 법인인 컬렉티브하우징사가 운영한다. 입주자인 야다 히로아키(44)씨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 식재료 원산지를 꼭 쓴다. 식재료 구입도 입주자들이 직접 논의한다”고 전했다. 이날의 요리 메뉴는 월남쌈과 냉라면. 주방 옆 거실에선 50대 후반쯤 된 여성이 노트북을 켜둔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공동 주방 이외에 공용의 TV, 다이닝룸, 소파가 있었고 한편에 놓인 공동 서가도 눈에 띄었다.

개소 기념일 때 작은 연주회도 갖고,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파티도 연다.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않는 입주자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번개 모임으로 바비큐 파티도 열고, 한 달에 한 번 주차장에 카페를 만들어 지역 주민에게 개방한다.

조합원이 된 다음 내야 하는 출자금은 개인당 25만엔, 월세는 6만6000∼14만6000엔이다. 부부가 입주할 경우 출자금은 50만엔이다.

여성 노인들은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살게 되면서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허약해진 상태에서 이곳에 입주했다가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진 여러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기도 한다. 야다 히로아키씨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고령자들에게 자신감이나 활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이세키 컬렉티브 하우스 입주 희망자들이 견학 도중 거실에 설치된 공동 게시판을 보고 있다. ⓒ다마=박길자 기자
세이세키 컬렉티브 하우스 입주 희망자들이 견학 도중 거실에 설치된 공동 게시판을 보고 있다. ⓒ다마=박길자 기자

 

입간판 옆에 선 가리노 미에 컬렉티브하우징사 이사. ⓒ다마=박길자 기자
입간판 옆에 선 가리노 미에 컬렉티브하우징사 이사. ⓒ다마=박길자 기자

고독사 무연사의 대안

컬렉티브 하우스에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산다. 건강한 고령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과의 새로운 생활에 흥미를 느낀다. 노인들만 모여 사는 실버타운과는 다른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가리노 미에(49) 컬렉티브하우징사 이사는 “여성 노인들이 이웃과의 연대로 주체성을 갖고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컬렉티브 하우스”라며 “때론 입주자 할머니가 다른 집 아이들을 손자처럼 돌봐주기도 한다. 노인들도 공동생활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힘이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더라”고 말했다.

입주 4년째인 한 79세 여성은 지방에서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살다 이곳에 들어왔다. 도쿄 출신인 그는 “실버타운에 가는 것은 싫고 가족과 동거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이 컸다”며 “딸이 소개해줘서 이곳에 왔다. 이곳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무연사회 직전 단계인 독신사회에 접어든 지 이미 여러 해다. 지역에 따라 단신 가구가 지배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같은 노인 그룹이어도 여성 고령자가 더 문제다. 메이지대 실태 조사를 보면 독거 가구의 80%가 여성이다. 사별, 이혼, 독신을 이유로 홀로 사는 경우다. 그런데 정부의 생활 보호를 받는 비중은 16%에 불과하다.

무연사회를 벗어날 생활 공동체 중 대표적인 곳이 컬렉티브 하우스다. 저가형 컬렉티브 하우스부터 수영장, 요가 시설까지 갖춘 고가형까지 다양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는 “컬렉티브 하우스가 일본에서 무연사회의 구세주로 떠올랐다”며 “해마다 급증하는 독거 노인과 젊은 단신 거주자의 커뮤니케이션 불통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고독을 존중하면서도 고립은 시키지 않는 지혜가 묻어난 거주 형태”라며 “이는 일본 사회의 공동체 복원을 위한 중대한 실험”이라고 덧붙였다.

여성들은 때로는 식재료까지 공유하며 생활비를 아낀다. 컬렉티브 하우스의 인기는 현대인들이 삭막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교류하고 서로 돕는 전통적인 거주 형태를 원하는 수요도 그만큼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구성원이 다양한 세대 교류형 주택에서 여성 노인들은 또 다른 여성 네트워크를 만든다. 여성 독신 증가에 따른 필연적인 자구책 중 하나라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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