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경 효림그룹 회장

매출 64억원에서 8050억원으로 125배 성장 이뤄

화장실 청소부터 하며 직원들 웃게 해

지금 좋아도 좋은 게 아니고, 나빠도 영원히 나쁜 게 아니야

 

여성 기업인 위기경영 이야기

 

한무경 효림그룹 회장
한무경 효림그룹 회장

남성 위주의 경영 풍토에서 여성 기업인은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낯선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 기업인들은 불편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을 구축하는 한편 탁월한 경영 성과를 보여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경영은 그 자체로 이미 ‘위기경영’을 의미하게 됐고 앞으로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다가옴에 따라 최고경영자에게는 위기경영 능력이 필수 능력으로 요구받게 될 것이다. 여성 기업인의 경영 성과와 자질 속에서 미래에 필요한 위기경영 능력을 찾아보기 위해 여성기업인의 이야기를 ‘위기’를 중심으로 들어보았다.

여성 기업인 위기경영 이야기① 한무경 효림그룹

한무경 회장이 이끄는 효림그룹은 올해로 18년 차를 맞는 중견기업이다. 1998년 효림산업㈜ 설립을 시작으로 2002년 효림정공㈜, 2005년 ㈜효림H.F와 ㈜디젠, 2006년 ㈜효림에코플라즈마를 설립했고, 2010년 중국 현지법인인 천진효림을 설립해 현재의 효림그룹을 이루었다. 창업 당시 매출이 연간 64억원 정도였던 효림산업을 기반으로 신규 설립 및 인수를 통해 2015년 현재 효림그룹의 총 매출은 8050억원으로 약 125배의 성장을 이루었다.

효림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종합부품 기업이다. 모체가 된 효림산업은 제동 및 구동 분야 자동차 부품 전문 기업이고, 효림정공은 모듈 전문 회사, 효림H.F는 자동차 단조 부품 제조업, 디젠은 내비게이션·레이다 등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전문 제조업체, 효림에코플라즈마는 선행 R&D(연구·개발) 전문 법인이다.

2020년 글로벌 자동차 부품 전문 그룹으로 매출 2조원을 목표로 하는 중소중견 기업인 한무경 회장. 소탈해 보이지만 다부진 인상을 가진 한무경 회장은 진취적인 도전정신과 성실한 준비로 지금의 효림을 일궈냈다.

8남매의 막내딸로 자란 한 회장은 어려서부터 책임감과 리더십이 강한 편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여자라서 … 한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뭐든지 열심히 했다는 한 회장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추진력 있는 사업가의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 같았다. 적극적이고 부지런한 것으로 유명한 이른바 ‘58년 개띠’ , 그 시대에 여성이 적극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공부와 성적’이었다. 한 회장도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수 될 가능성이 제일 큰 1회 졸업생이 되기 위해 신설 학과였던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했다.

-문헌정보학 박사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사업가가 되셨다. 창업 계기는.

“원래 교수가 되려는 목표를 갖고 신설 학과인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했다. 박사학위 마치고 강사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 아버지께서 지인으로부터 자동차 부품회사를 인수해서 경영해 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상황은 당시 쌍용자동차가 인수·합병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이었다. 오랜 강사생활에 회의가 생겨날 무렵이어서 호기심도 있었지만 전혀 생소한 일이어서 많이 망설였다. 그래도 인수조건이 거절할 수 없을 만큼 좋았고 부친의 권유도 강해서 부딪혀 보기로 했다.”

-전혀 모르는 분야인 제조업체의 사장이 된다는 게 무모하진 않았나.

“자동차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우선 현장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들리는 대로 받아 적었고 자동차 관련 용어집을 사서 공부했다. 공장에 있는 모든 기계를 그림으로 그리고 부품의 명칭 하나하나를 적었다. 한편으로 받아 적고, 기계 그림을 보며 확인하고, 또 한편으로는 용어집에서 그 기능과 원리를 이해하고 익혀 나갔다. 미친듯이 한 6개월 공부하고 나니 대충 파악이 됐다.”

-기계 분야를 모르는 젊은 여자 사장이 리더십을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첫인사를 한다고 나름 곱게 차려입고 갔는데, 현장 분위기와 맞지 않다는 걸 금세 알았다. 바로 현장에 맞는 코드로 바꿨다. 인수당하는 입장에 있는 조직이라서 그랬을까? 직원들의 표정이 무표정하고 어두웠다. 그 얼굴을 보면서 목표가 생겼다. ‘저 얼굴을 웃게 만들자~!’라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화장실 청소를 직접 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니까 기름기가 항상 많다. 특히 화장실이 너무나 험한 걸 보고 여기부터 빛을 내겠다, 마음 먹었다. 박박 문지르고 광을 내서 신발을 벗고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놓으니 직원들이 좋아했다. 작은 일이지만 직원의 행복을 위해 일한다는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됐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의 웃음은 곧 신뢰를 말한다. 경영진에 친인척을 기용하지 않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인가.

“마음을 하나로 합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비서 중 저와 성이 같은 한씨가 있었는데 직원들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성이 같다고 해서 사장 친척일 거라고 짐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친인척 개입이 불신의 원인이라는 걸 알았다. 직원들 앞에서 친인척 개입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효림그룹은 회계부서에도 제 친인척은 없다. 마음이란 게 중요하고, 신뢰가 없으면 마음이 합해지지 않는다. 10년 이상 장애인 시설 한 곳을 찾아가서 몸으로 봉사하고 있다. 봉사하면서 더 많이 배우고 마음을 하나로 합한다.”

-이른 바 ‘고속 성장’을 했다. 비결은.

“기술이나 시장의 흐름을 잘 살펴야 한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는 작고 사소한 변화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거대 변화, 즉 매크로 트렌드(Macro Trend)는 일정향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경제·정치 분야의 참여 확대, 기존 제품 가격의 하락, 자동화의 진전, 기술 보편성의 확대 같은 흐름이다 이런 흐름을 보다가 될 것 같은 ‘감’이 딱 오는 게 있는데, 이럴 때는 그 감을 믿고 과감하고 신속하게 진출을 하는 거다. 지금까지 나의 그 감은 항상 맞았고 성과가 좋았다. 운도 따랐다. 여기서 주저하거나 시기를 놓쳤다면 안 됐을 거다.”

-제일 큰 위기는 언제였나.

“인수하고 나서 성과가 좋았고, 그만큼 투자도 늘렸는데 의존도가 80%를 넘는 주 거래처가 가동되지 않는 사태가 생겼다. 거래가 중단되니 우리 매출도 곤두박질 쳤다. 자금난이 닥쳐왔다. 직원들이 상여금을 반납하고, 생산 유휴시간에는 지원금이 나오는 교육을 받으러 갔다.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만큼 재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 사고가 닥치기 전 잘나갈 때 자금을 비축해 두었다.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축된 자금이 있었고, 그걸로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경영난을 겪고 있던 회사를 인수했는데 그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 매출이 일어났다. 그렇게 위기를 넘겨가며 큰 교훈을 얻었다. ‘지금 좋아도 좋은 게 아니고, 나빠도 영원히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좋다면 오래전부터 투자한 결과로 좋은 것이니 감사해야 하고 나빠도 절망하지 말고 성실하게 버티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면 위기는 벗어나게 된다는 거다.”

- 경북 여성기업인협회 회장과 여성경제인협회 대구·경북지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여성 기업인들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여성 기업인들은 본업에 충실한 편이며 본인의 업에 대해 과대 포장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똑같은 성과여도 남성 기업인이라면 훨씬 더 부풀려서 큰 일처럼 말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여성들은 확실히 과장하지 않고, 사업도 덜 공격적으로 하면서 안정을 추구한다. 이런 여성 기업인들의 특징을 잘 활용한다면, 기존 시장에서의 품질·가격이라는 요소를, Like에서 Love로 경쟁우위 요소를 변화시켜야 나가는 데 여성 기업인들의 섬세한 감각이 장점으로 주목받으리라고 본다.”

-사업가로서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경제가 살고 지방이 균형 발전을 하려면 제조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제조업 분야는 기술이 생명이다. 새로운 기술 개발이나 보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독일에는 기술 개발만 하는 연구 전문 기업들이 많다. 이런 연구 전문 기업과 오랜 역사를 가진 제조기업들이 자주 인수합병(M&A) 하는 걸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많다. 국가 미래를 위해 정부에서 이런 쪽에 더욱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앞으로 효림그룹의 비전은.

“글로벌 자동차 부품 전문 그룹으로 2020년 매출 2조원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신기술 확보를 위해서도 주력하고 있다. 자동차는 수많은 부품의 조합이다. 부품 하나하나가 우수하고 잘 결합해야 좋은 자동차가 만들어진다. 보이지 않는 부품이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해 세상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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