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활동가 겸 성소수자 운동가 캐드린 시안 

“합법적 결혼 관계 동성 파트너 한국행 청하자 ‘거절’

재미교포 4세로 하와이서 홈리스‧인신매매 피해자 지원 활동

증조부는 미 노동 이주자로 상해 정부에 독립 자금 지원

“동성애 반대 운동하는 보수 기독교인들 안타깝다”

 

캐드린 시안. 성소수자 운동가인 그는 현재 하와이에서 홈리스와 인신매매 피해자를 돕는 NGO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캐드린 시안
캐드린 시안. 성소수자 운동가인 그는 현재 하와이에서 홈리스와 인신매매 피해자를 돕는 NGO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캐드린 시안
필자는 70주년 광복절 행사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을 때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초청됐던 재미교포 4세인 캐드린 시안(42)이 인터뷰 요청을 해온 것이다.

“광복절 행사에 초대될 때 저는 합법적인 결혼 관계에 있는 동성 파트너와 동행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초청 사업을 추진하던 민간업체에서 거절을 하더군요. 한국에 와서 보니 모두 가족과 동행했더라고요. 불쾌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미국에서 이제 게이 결혼이 헌법으로 보장되고 차별을 거두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와서 차별을 경험하게 된 거지요.”

캐드린 시안은 국가보훈처와 광복 70주년 사업추진회가 주관한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행사’에 초대된 해외 독립운동가 안원규의 4대 증손녀다. 지난 8월 9일 한국에 입국해서 일주일간 머물렀고, 한국 정부의 극진한 대접에 감사했다. 증조부는 미국의 1세대 노동이주자다. 1903년 하와이로 건너가 파인애플 농장에서 일하며 힘겹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상해 정부에 독립 자금을 모아 보냈다. 자신 소유의 파인애플 농장 1500에이커까지 팔아 독립 자금으로 보냈다. 미국 성공회 목사로 안수를 받았으며, 작은 옷 공장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당시 하와이는 한국에서 이주해온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출입구와 같은 곳이었다. 안원규는 지치고 초라한 모습의 한국 사람들이 무시 받지 않도록 옷을 만들어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나라 없는 백성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싶어서였다. 당시 하와이에 활동하던 이승만이 모금된 독립 자금을 자신의 것을 착복하고 교포 사회를 분란에 빠뜨리는 일이 종종 있어서 이승만과 갈등 관계에 있었다고 시안씨는 초기 해외 독립운동 자료를 통해 증언했다.

 

캐드린 시안은 국가보훈처와 광복 70주년 사업추진회가 주관한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행사’에 초대된 해외 독립운동가 안원규의 4대 증손녀다. 지난 8월 9일 한국에 입국해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캐드린 시안
캐드린 시안은 국가보훈처와 광복 70주년 사업추진회가 주관한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행사’에 초대된 해외 독립운동가 안원규의 4대 증손녀다. 지난 8월 9일 한국에 입국해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캐드린 시안

시안씨는 현재 하와이에서 홈리스와 인신매매 피해자를 돕는 NGO 활동가로 일하고 있으며, 성소수자 운동가이기도 하다. 고국의 품에 돌아와 환대를 받았지만 동시에 성소수자로 차별을 경험했다. “미국에서 기사를 통해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성소수자 인권 차별 조항을 넣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미국은 1993년 게이 결혼에 대한 안건이 등장했고 올해 6월에 헌법을 통해 국가가 게이 결혼의 권리를 보장하게 됐지요. 이러한 결혼에 대한 평등한 권리(marriage equality) 이슈는 1960년대에도 있었어요. 인종 간의 결혼이 금지된 주가 있었거든요. 1967년에 헌법을 통해 인종에 상관없이 그들의 결혼을 헌법으로 보장했어요. 인종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날 때 타고 나는 거잖아요? 저는 성정체성도 타고난다고 봐요.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은 그 사람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시안씨는 한국에 도착해서 독립운동에 관해 많은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의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서 일본 이름을 강요했어요.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았나요? 게이 정체성은 저의 유일한 정체성은 아니지만 중요해요. 이것이 강제로 부인된다면 그것은 억압이지요.”

특히 동성애 반대 운동에 보수 기독교인들이 나서고 있는 한국의 실정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미국은 기독교에 기반을 두고 세워진 국가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독교가 신의 이름을 빌어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역사를 기억하고 있고, 종교의 폭력성을 알고 있다. 그래서 특정 종교가 인권 문제를 좌지우지 못하도록 국가가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서에는 레즈비언에 관한 언급도 없을 뿐더러 게이에 관한 언급은 달랑 7개의 구절이 나오지요. 그러나 부자들이 재산을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경고가 250개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책임지고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구절이 300개가 넘어요. 한국에는 통일 문제, 인권 문제, 언론 문제 등 정의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혐오 캠페인에 그런 에너지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캐드린 시안의 증조부 안원규 선생과 증조모 결혼 사진.
캐드린 시안의 증조부 안원규 선생과 증조모 결혼 사진.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동성애가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안씨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모든 동성애자들의 부모는 이성애자이지요. 동성애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동성애 인권을 보호한다고 이성애자가 동성애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15살에 제가 동성애라는 것을 알고 커밍아웃했어요.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가족이 저를 지지했지요. 저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인권운동가로 자라났어요. 그런데 한국은 부모가 동성애라고 밝힌 자식들을 거리로 내쫒아 버리잖아요. 거리로 쫓겨난 청소년들은 쉽게 폭력과 성 착취에 노출되지요. 심지어 자살까지 시도하고 있지요. 이것이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것인가요?”

시안씨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고 감탄을 했다. 그러나 이때 차별에 대해 민감한 감수성을 갖추지 않으면 제국주의국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작년에 하원의원에 출마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내년에 지방 선거에 도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정치를 통해 많은 변화가 가능하며 그러한 힘을 갖고 싶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처음 출마했을 때 동성애 이슈에 반대했어요. 그러나 그는 바뀌었고 성소수자(LGBT) 인권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요. 놀라운 것은 미국 보수 정당의 정치가들도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광복 70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초대된 시안씨는 반쪽짜리 초대장을 받았다. 동성애자로 차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자신의 인권운동 경험을 나누며 한국이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기원했다. “빠른 변화를 추동시켜왔던 한국이 자랑스러웠어요. 그러나 70주년 광복절을 맞아 해방의 의미를 더 깊고 넓게 확산해서 진정한 의미의 해방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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