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녹아 있는 군사문화 없애야
일상에 녹아 있는 군사문화 없애야
  • 박길자 기자
  • 승인 2017.11.29 13:33
  • 수정 2017-11-29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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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 인로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페미니스트 호기심이란 렌즈로 군사 문화 들여다봐야

나이키는 어떻게 70년대 부산 지역에 신발 공장 차렸나

“군대와 자본이 여성 교묘히 이용”

 

서구에서 밀리터리룩은 1970년대초 한때 반전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카모’라는 이름의 개성 있는 패션이 됐다.
서구에서 밀리터리룩은 1970년대초 한때 반전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카모’라는 이름의 개성 있는 패션이 됐다.

페미니스트 호기심으로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구화와 군사화를 바꿔보려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강력한 페미니스트 호기심으로 여성이 글로벌 운동화 한 켤레를 꿰매는 대가로 저임금과 빈약한 복지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가부장적 허울 뒤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신시아 인로 미국 클라크대 여성학과 연구교수의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바다출판사)는 군사화된 문화와 제도를 통해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노동을 착취당하는지 꼼꼼하게 짚어준다. 저자는 남성 중심의 국제정치학계에서 군사주의와 젠더 연구를 통해 명성을 얻은 여성학자다. 인로는 “페미니스트 호기심은 지구화와 군사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손전등”이라며 “일상을 구성하는 군사주의부터 국익 추구로 복잡하게 얽힌 국제 관계까지 페미니스트 호기심을 발휘해 탈군사화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로의 말대로 군사주의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서구에서 밀리터리룩은 1970년대 초 한때 반전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카모’라는 이름의 개성 있는 패션이 됐다. 옷, 운동화, 관광상품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조직 분위기에서도 군사주의를 찾을 수 있다.

군대와 자본은 여성을 오랫동안 교묘하게 이용해왔다. 1960~1970년대 부산지역 신발공장에서는 나이키 운동화를 생산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당시 나이키 해외 공장을 국내에 유치한 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여성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딸들은 엄한 아버지가 있는 집안에서 살림을 배우다가 시집가서 내조 잘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였다. 그런데 이제 공장에서 생활비를 벌어 가장을 돕고, 장남을 뒷바라지하며, 미래의 남편을 위해 돈을 모아놓아 가부장제를 떠받치는 ‘순종적인 딸’ 역할이 강조됐다.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를 쓴 신시아 인로 미국 클라크대 연구교수.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를 쓴 신시아 인로 미국 클라크대 연구교수.

 

이는 여군의 증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성 군인은 현대화된 군의 상징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군들이 크게 늘고 있다. 군 인력도 보충할 수 있고, 여성이 상대적으로 고학력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여군이 활짝 웃고 있는 포스터를 내걸면 군대가 친근하다는 것을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면에 숨은 군 전략을 페미니스트 호기심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자.

군 정책관들은 여군을 의무대나 행정반 같은 비전투 업무에 배치했다. 군대가 가장 사내다운 공간이자 소년이 남자가 되는 공간이라는 매력을 버리지 않으면서 여성 군인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여군을 혹시 전장에서 배치하더라도 비전투 업무를 맡기고, 전투 공간에서 부상당한다 하더라도 밝고 긍정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식으로 언론에 보도한다.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여성을 군에 보냈다는 가부장적 분위기를 덜 거스르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저자는 2006년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 미군 여성들이 이라크 남성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찍은 사진이 공개돼 세계를 경악시킨 사건을 빗대 이를 설명한다. 당시 비전투 업무를 맡은 군 심문관들이 찍은 몇 장의 사진이 대중에 공개됐다. 사진 속 미군 여성은 웃으며 가죽 끈으로 이라크 남성 포로를 묶고 있고, 다른 사진 속 미군 여성은 발가벗은 이라크 남성의 성기를 가리키며 농담하는 듯했다. 발가벗긴 이라크 남성들이 겹겹이 쌓인 위에 기대서 카메라를 보고 웃는 미군 여성과 미군 남성을 찍은 사진도 있었다.

사담 후세인 정부를 군사적으로 침략하고 정복해 이라크 국민에게 자유를 줄 것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미군들이 포로에게 가한 야만적인 대우는 충격적이었다. 특히 그곳에 미군 여성이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저자는 사진을 찍은 미국 군인들이 포로를 여성화하는 까닭은 포로들의 지위를 더 낮추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수치심과 무기력함으로 군인들에게 더 협력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런 고문을 실행한 까닭은 위험한 적이라고 분류한 외국 남성에게 굴욕감을 줘서 정보를 얻고자 한 미국 전시 권력자들의 의도 때문이라는 얘기다.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는 “군대는 여전히 남성성을 증명하고 강화하는 조직”이라며 “지난 70년 동안 전쟁과 휴전 상태로 지내온 우리가 군대와 군사주의를 어떻게 봐야 할지 알려주는 필독서”라고 말했다.

책은 여성학자 김엘리, 오미영씨가 번역했다. 김엘리씨(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는 “젠더 없이 군사화는 작동하지 않는다”며 “지구화된 군사주의, 군사화된 지구화가 어떻게 젠더에 의존해 작동하는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다소 직설적으로 풀어낸 데 책의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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