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4로 돌아온 ‘드립걸즈’의 오미영 연출

 

시즌1부터 드립걸즈를 만들어 온 오미영 연출가는 ‘드립만으로 채워보자’가 이번 공연 콘셉트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즌1부터 드립걸즈를 만들어 온 오미영 연출가는 ‘드립만으로 채워보자’가 이번 공연 콘셉트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기 뮤지컬 드림걸즈인 줄 알고 오신 분 있어요? 아, 여기 어머님? 아이고 이런 분들 꼭 있어요. ‘드림걸즈인데 비욘세 언제 나오나’ 이러고 있어. 여기 드립걸즈예요. 이제 적응하셔야 돼요. 어머니!”

17일 시즌4로 돌아온 ‘드립걸즈’ 공연장 객석 여기저기서 개그우먼 안영미와 박나래의 돌직구 드립(애드리브)에 웃음보가 빵빵 터졌다. 개그우먼들의 꿈의 무대라 불리는 드립걸즈는 2012년 KBS 방송 개그콘서트의 ‘강선생’ 팀의 안영미, 강유미, 정경미, 김경아가 첫선을 보인 후 시즌2와 3까지 90%에 육박하는 객석 점유율을 자랑하며 인기를 끌었다.

시즌4는 안영미, 박나래, 김미려, 최정화, 맹승지, 홍윤화, 홍현희, 이은형, 허안나, 김영희, 안소미, 박소라 등 대한민국 대표 개그우먼이 총출동했다. ‘그녀들의 숨 막히는 드립 전쟁’을 선포한 만큼 즉석에서 터지는 애드리브는 웃음을 넘어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시즌1부터 드립걸즈와 함께한 오미영 연출가는 “‘드립으로만 채워보자’가 이번 공연 콘셉트”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오 연출은 “내가 어쩌다 이걸 계속하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드립걸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무대 동선을 잡거나 서브 텍스트가 어떻고 하는 작품 분석 과정이 전혀 없다. 분석하고 연습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재미가 없어진다. 연습의 80%는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아이디어 회의로 이루어진다. 앉아서 수다 떨고, 깔깔 웃다가 집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는 다른 날에 비해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참관한 스태프들이 ‘오늘은 연습을 안 하시는 거 같으니 일찍 가야겠다’고 하더라. 진짜 연습을 많이 한 날이었다.”

 

시즌4로 돌아온 드립걸즈의 개그우먼들. 왼쪽부터 이은형, 최정화, 오미영 연출가, 박나래, 안영미.
시즌4로 돌아온 '드립걸즈'의 개그우먼들. 왼쪽부터 이은형, 최정화, 오미영 연출가, 박나래, 안영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오 연출가는 “내가 어쩌다…”라고 할 만도 하다. 그는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 ‘식구를 찾아서’ 등 유쾌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가족 시리즈를 무대에 올려왔다. 모두 여자 주인공이라는 점을 뺀다면 드립걸즈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이다.

“여배우들의 역할은 엄마나 섹시 미인, 백치, 못생긴 여자 등 몇 가지로 한정돼 있다. 좀 더 다양하고, 멋있는 여자들이 등장하는 공연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보면 드립걸즈만 한 작품이 없다. 드립걸즈는 정말 여자들이 중심인 공연이고 재밌다. 개그우먼들은 그냥 보이는 액면 그대로다. 맑고 솔직하다. 맛있는 척하는 MSG 음식이 있다면 드립걸즈는 청양고추처럼 재료 자체가 세지 ‘그런 척’ 하는 화학물질은 안 들어갔다.”

드립걸즈는 골드, 블루, 레드팀이 돌아가며 무대에 오른다. 드라마와 영화를 패러디하는 등 옴니버스 형식의 공연은 매일 색다르게 변신한다. 팀에 따라 조명과 음향이 바뀌니 “스태프들도 함께 드립을 해야 한다”는 오 연출가의 표현 대로다. 팀마다 캐릭터가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너마다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들이는 ‘참여형’ 공연이기에 관객의 행동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관객들이 좋아하니 참 좋다. 요즘 배 아프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무대에 선 관객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사람들 저렇게 끼가 많고, 밖에 나가서 뭔가 하고 싶은데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지’ 싶을 정도다.”

 

내년 1월 오미영 연출가의 새 작품이 올라간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내년 1월 오미영 연출가의 새 작품이 올라간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에겐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회사에 취직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순간 “인생이 재미없었다”는 그는 ‘내가 뭘 할 때 제일 뜨거웠더라’ 생각하게 됐다. 일본어로 연극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공연하면 즐거울까 싶어서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출과에 들어갔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1년 정도 배우의 길을 걸었다. 선생님들이 ‘너는 연출은 아니다. 배우나 해라’ 그러셨다. 그땐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은 알겠다. 연출은 카리스마 있고, 생각도 빨리 정리하고, 자기 그림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나는 스태프와 배우가 마음 편하고 즐겁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하는 밥하는 연출이다. 남들처럼 잘하거나 똑똑하지도 그림이 명확하지도 않은 거 같아서 회의감이 들 때 김우옥 선생님께서 ‘너는 인화를 잘하는 연출이다’ 하시더라. 사람들을 하나로 화합하게 하는 게 장점이라고 찍어주셨다.”

내년 1월이면 오 연출가의 새 작품이 올라간다. 이번에도 여자가 주인공인 여자들의 이야기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18살 여고생과 임신을 못 하게 되는 건 아닐지 두려운 마음이 드는 45세 독신녀의 영혼이 바뀌는 얘기라고. “정말 인기가 없고 장사가 너무 안 된다”면서도 용감하게 또 여자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가 뭘까.

“여배우들도 먹고살아야 되니까. 괜찮은 여자 배우들이 진짜 많다. 여성 창작자가 괜찮은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여자들은 늘 엄마나 섹시한 여자, 청순가련형 같은 몇 가지 카테고리 안에 갇힌다. 사실 너도 다르고 나도 다르고 이 여자도 저 여자도 다 캐릭터가 다른데 우리가 보는 캐릭터는 몇 개로 금방 나뉜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 것. 그게 여성 창작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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