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문 전경.
서울대 정문 전경.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는 여교수가 출산과 업무를 잘 병행하도록, 학위 과정에 있는 여학생이 출산으로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제 그 정책이 자리가 잡혀 많은 여교수와 여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다른 대학에도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환기하고자 한다.

필자가 재직 중인 대학은 여성에게 참으로 차가운 곳이었다. 불과 5, 6년 전만 해도 여교수는 전체 교수의 10%가 조금 넘을 정도였다가 올해 겨우 14.6% 정도로 늘어났다. 질적인 면에는 진보가 없다. 학내 의사 결정 과정에 여교수의 영향력은 거의 없다. 총장, 부총장은 물론 기획처, 교무처 등 주요 부처의 처장에 여교수가 전무하며, 18개 단과대학의 학장에도 여학생이 대부분인 두어 개 대학을 제외하면 여성 학장은 없다.

학업 성적으로 입학이 결정되는 학생의 경우 여학생 비율은 초고속으로 늘어났지만(학부는 올해 40.4%) 학부 내내 성적 우위를 점했던 여학생들은 졸업 후 급격히 줄어든다. 자연계 실험실에서 여학생들이 자취를 감추는 것은 안타까울 지경이다. 미국에 이민했다가 우리 대학원으로 진학했던 한 학생은 돌아가면서 『그 많던 여학생은 다 어디로 갔나』라는 책을 쓰고 갔다.

아직도 공고한 여성 비하의 가부장제 문화가 문제의 바닥에 있다. “왜 남자 자리를 뺏고 있느냐” “어차피 해봐야 취업도 안 되는데…”와 같은 말에서 성희롱, 성폭력의 극단적 표출을 매일 일상에서 접한다.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도 여성의 앞을 가로막는다. 특히 출산과 육아는 경력의 라이프사이클과 겹쳐서 이를 헤쳐 가려면 초인적 노력이 필요하다.

여성 활동이 사실상 필수가 된 현대사회에서 이를 여성 자신과 가족에게만 맡겨둘 수 없게 된 지 오래지만 참으로 답답한 지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 비하 분위기가 여학생들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성희롱,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인생에 걸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여성 진출을 위축시켜 큰 사회적 손실을 만들고 있다. 양육을 위한 여러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어머니의 손길이 없으면 아이들의 학업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없다. 우리나라의 이런 절대적 결함은 해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대학에서 여교수회는 이러한 여러 문제를 국가와 대학 본부에 환기시키고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촉구하다 아예 직접 방안을 강구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여성 자신의 그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출산 문제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선진국의 많은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년보장 심사 유예제도(Stopping Tenure Clock·STC)를 발견했다.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출산한 후 정년보장 심사를 2년간 연기할 수 있는 제도다.

여교수회는 곧바로 정밀 연구해 제도 신설안을 만들어서 대학 본부에 제안했다. 마침내 학칙에 이를 반영하는 성취를 이루었고, 내친 김에 대학원생의 경우 출산 시 논문 심사를 2년 미룰 수 있는 졸업기간 연장제도(Stopping Graduation Clock)를 도입했다. 실질적인 개혁은 출산 학기에 강의를 감면하는 제도를 신설한 것이다. 이제 출산이 휴직으로 연결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많은 젊은 교수들이 출산을 포기하거나 연기하는 실정에 있었던 것을, 이 제도 시행 후 알게 됐다.

처음 이 제도가 알려지자 여러 대학에서 문의를 잇따라 해왔다.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지만 사장돼 있던 대학에서 상담을 요청했다. 연구비 집행에도 이 제도의 적용이 제안됐다. 그러나 그뿐 별다른 진척 없이 대학사회 논의의 장에서 유야무야 사라지고 말았다. 필자는 우리나라 대학 전체가 이 제도를 도입할 것을 지금 다시 제안하고 싶다. 나아가 이것이 직원에까지, 그리고 다른 기관, 기업에까지 확산되면 좋겠다. 우리가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 하나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거대한 변혁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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