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국 변호사의 저녁이 있는 삶 이야기

 

탁경국 변호사는 일하는 아내와 가사를 분담해 평일 아침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만큼 남성들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탁경국 변호사는 일하는 아내와 가사를 분담해 평일 아침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만큼 남성들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대가 변하고 있다. 외벌이로 살기 힘든 사회여서 맞벌이가 보편화됐다. 그렇다면 맞벌이에 맞게 남자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 전도사’로 불리는 탁경국(46·법무법인 공존) 변호사의 말이다. 199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같은 해 ㈜대우자동차에 입사해 경영기획실에서 2년간 근무했다. 이후 2001년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특검 특별수사관으로 참여하는 등 누구보다 바쁜 일상을 살아왔다.

34세에 결혼한 탁 변호사에게는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인 아들 두 명이 있다. 아내는 지난해 11월 ‘제1회 방은고전번역상’을 수상한 강민정(43)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이다. 탁 변호사는 내곡동 특검으로 정신없이 보내던 2012년 10월에도 따끈한 달걀찜을 만들어 자녀들의 아침밥을 챙겼다. 평일 아침 식사와 주말 중 하루의 가사를 책임지는 것이 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첫째를 키울 때만 해도 육아에 관심이 없었다. 밤 12시에 귀가해 새벽까지 TV를 보다가 잠들고 아침 7시에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여자로 태어난 게 무슨 죄인가’ 싶을 정도로 아내가 힘들어 보여서 돕기 시작했다. 첫째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부모들과 어울리다 보니 문제의식이 생기고, 책임감도 늘었다. 처음엔 힘들어도 나중엔 좋더라.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탁 변호사는 저녁이 있는 삶 체험기를 담아 『계란찜 아빠, 꼬막 남편』(이상북스)을 펴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탁 변호사는 저녁이 있는 삶 체험기를 담아 『계란찜 아빠, 꼬막 남편』(이상북스)을 펴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아빠가 나름의 의지와 노력으로 가정에 적극 참여하는 만큼 가족이 행복해하는 것을 목격한 후 그의 인생관에 변화가 생겼다. 일 중독자에서 가정 중독자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저녁이 있는 삶으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가정의 화목”이라고 대답했다. 일을 줄이고 아이들과 있는 시간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대화도 늘어난다.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생각지 못한 것들을 알게 된다. 나와 다른 생각과의 틈새를 좁히면서 가족 전체가 성장한다.” 그 성장이 주는 선물이 화목인 셈이다.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휴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집안일의 시작이다. 탁 변호사도 “육아 참여는 고역이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포기한 것도 많다. 골프와 TV 시청, 경제적 수입이 그것이다. 가정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일이 줄고 경제적 수입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경쟁 사회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탁 변호사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믿음으로 버텼다.

“제 또래 주위 남자들은 부장판사, 부장검사 이렇다. 대형 로펌에 있는 친구들은 파트너라고 불리며 잘나간다. 이 친구들 생활을 보면 맨날 새벽까지 일한다. 애는 언제 보겠느냐. 보고 싶어도 못 본다. 친한 친구들 가족 모임에 나가보면 다 부부 간에 문제가 있더라. 돈은 제가 가장 못 벌지만, 우리 부부를 제일 부러워한다. 이건 좀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탁 변호사는 지난해 8월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제1회 일·가정 양립 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1등은 당연히 여성일 테니 누군가 남자 입장에서 쓴 글을 제출해 장려상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얼마 전에는 저녁이 있는 삶 체험기를 담은 『계란찜 아빠, 꼬막 남편』도 펴냈다. 그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란 일·가정 양립이 이루어지기 위해 남성과 여성이 가정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을 지금보다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또 실천 없이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내가 시키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어려울 게 뭐 있겠는가. 자세의 문제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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