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여성괴물’ 캐릭터 열전
매혹적인 ‘여성괴물’ 캐릭터 열전
  • 손희정 ‘여성이론’ 편집위원 /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 승인 2017.12.06 14:58
  • 수정 2017-12-0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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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문가 3인의 추천작 - 손희정 여성이론 편집위원

1. 하녀 (김기영, 1960)

 

방직공장의 음악선생인 동식은 헌신적인 아내와 다리가 불편한 딸, 어린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동식은 손바느질로 맞벌이를 해온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젊은 여인을 하녀로 맞이한다. 하녀는 품행이 방정치 못하지만 나쁜 여자처럼 보이진 않는다. 어느 날 하녀는 동식을 유혹해 관계를 맺고 임신한다. 이를 안 동식의 아내는 하녀를 계단에서 넘어뜨려 유산시키고, 아이를 잃은 하녀는 잔인한 복수를 시작한다.

가열찬 근대화 시기. 보수적인 한국 사회는 여성 노동자의 노동에 크게 기대고 있으면서도 그녀들의 생활력과 활발한 활동, 성적 자유로움을 염려하고 또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여성 노동자의 섹슈얼리티를 중산층 핵가족의 건강한 도덕에 위협이 되는 괴물로 상상한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괴작 ‘하녀’를 통해 여성 노동자와 사회 간의 긴장과 갈등의 이면을 상상해보자.

2. 살인마 (이용민, 1965)

 

조강지처 애자는 그녀의 자리를 노린 사촌과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시어머니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한다. 금실이 좋았던 본처 애자를 잃고, 주인공은 새 부인을 맞아들인다. 애자는 흡혈 여귀로 돌아와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시작한다. 

한국 공포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손꼽히는 수작이다. 희미하기 짝이 없던 애자는 흡혈귀로 되돌아오면서 오히려 적극적인 욕망의 담지자로 거듭난다. 영화는 일견 ‘못된 여자’들을 처단하고 조강지처의 도를 되살리는 가부장제적 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결을 거슬러 읽으면 욕망을 가진 여성을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그런 에너지가 여성을 얼마나 강력한 주체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도.

3. 엑소시스트 (The Exorcist, 윌리엄 프리드킨, 1973)

 

귀신 들린 딸 레건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무서운 사건들에 엄마 크리스는 젊은 카라스 신부를 찾아가 엑소시스트 역할을 청한다. 이에 카라스 신부는 악마를 쫓아본 경험이 있는 나이 든 신부 메린을 부르고, 두 신부는 레건의 몸에 씐 악마와 격렬한 싸움을 시작한다. 

세계 공포영화의 고전. ‘악마들린 소녀’ 리건은 음란한 말을 지껄이고 어머니에 대한 동성애적 욕망을 드러내면서 사회가 규정해 놓은 깨끗하고 단정하고 도덕적인 경계들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그 불온한 영혼과 비천한 신체가 대단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 특히 바버라 크리드는 그 소녀에게 깃든 악마 역시 여성이라고 주장하면서 세계 최강 여성 괴물의 등장을 알린다.

4. 캐리 (Carrie, 브라이언 드 팔마, 1976) vs 캐리(Carrie, 킴벌리 피어스, 2013)

 

여고생 캐리에게는 물체를 움직이는 초능력이 있다. 캐리는 병적으로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에게 순결을 강요받고, 친구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하며 외롭게 생활한다. 어느 날 캐리는 파티에 초대받지만 친구들의 음모로 돼지 피를 뒤집어쓰고, 복수에 나선다. 

1976년 시시 스페이섹의 ‘캐리’와 2013년 클레이 모리츠의 ‘캐리’를 서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두 작품 다 사회의 강박적이고 보수적인 관념이 어떻게 괴물을 만들어 내는지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원작이 여전히 ‘캐리’를 이해할 수 없고 포착할 수 없는 초자연적 힘을 가진 ‘여성 괴물’로 그려낸다면, 리메이크작은 사회의 도덕 내 ‘소수자’들의 소외와 배제의 고통에 대해 다룬다는 점이 흥미롭다. 세월의 간극을 두고 등장한 두 ‘캐리’를 비교하며 미국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상상력 변화를 포착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

5. 브루드 (The Brood,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1979)

 

카베스는 딸의 몸에 난 상처들이 아내 노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아내와 딸을 분리한다. 노라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노라의 부모님이 기형적인 얼굴을 한 복제 아이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에 카베스는 노라를 치료하던 래글런 박사를 주시하게 된다. 

남성의 언어로 구성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의 말은 언제나 미끄러진다. 자신을 충분히 드러내거나 표현할 수 없는 여성들은 종종 몸을 통해 자신들의 고통을 드러내 왔고, 그것은 ‘히스테리’ 즉 ‘자궁의 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기괴한 영화 중 한 편인 ‘브루드’에서는 히스테리로 아이를 낳는 여성 괴물 ‘노라’가 등장한다. 영화는 모계의 언어를 히스테리의 언어로 치환하고, 남성 없이 생식하는 여성을 괴물로 만든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모든 공포영화가 그렇지만, 특히 더, 여성주의적인지 반여성주의적인지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영화.

6. 악마의 키스 (The Hunger, 토니 스콧, 1983)

 

뉴욕 맨해튼에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부부 미리엄과 존. 이들은 사실 사람이 아닌 뱀파이어다. 4000년이나 살아왔고 앞으로도 영생을 누리게 될 부인 미리엄과는 달리, 남편 존은 300년을 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존이 죽은 뒤에도 미리엄은 그를 살리기 위해 찾았던 여의사 사라와 위험한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카트린느 드뇌브, 데이비드 보위, 수전 서랜든. 이름만 들어도 후덜덜한 배우들이 수세기를 영속하는 아름다움을 빛내는 뱀파이어로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카트린느 드뇌브가 연기하는 공포영화계의 최고 팜므파탈 ‘미리엄’. 전통적으로 뱀파이어물에서 여성들은 흡혈을 통해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깨우고 ‘소녀에서 여자가’ 됐다. 그렇게 카리스마를 가진 강력한 여성 괴물로 거듭난다. 영화에서 ‘미리엄’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카리스마적 여성 괴물이다. 무엇보다 카트린느 드뇌브와 수전 서랜든이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수전 서랜든이 뱀파이어로 재탄생하는 순간만으로도 황홀함을 느낄 수 있을 것.

7. 소름 (윤종찬, 2001)

 

용현은 온갖 비극의 온상인 미금아파트 504호에 새로 입주한다. 30년 전 504호에서는 바람난 남편이 부인을 죽이고 갓난아기를 남겨둔 채 도주한 일이 있었다. 자신의 새 보금자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용현에게도 504호의 저주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한국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는 여성 괴물 중 단연 가장 파워풀한 괴물은 ‘소름’에 등장하는 ‘어머니’일 것이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영화의 배경인 미금아파트 그 자체로서 등장한다. ‘어머니’는 아파트가 되어 자신의 잃어버린 아들이 그곳으로 되돌아오기를 30년이 넘도록 기다린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의 폐단을 예민하게 인식하면서 그 자본주의가 어떻게 가부장제의 폭력에 기대고 있는지 폭로한다. ‘어머니 미금아파트’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아버지의 법이 다스리는 세계를 교란시키고, 그 법이 공백을 드러내는 거대한 구멍으로 등장한다.

8. 4인용식탁 (이수연, 2003)

 

정원은 지하철에서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뒤로 자꾸만 신혼집 식탁에서 아이들의 유령을 보게 된다. 그는 귀신을 볼 수 있는 여자 ‘연’을 알게 되고, 그녀를 통해 더욱 큰 공포를 겪게 된다.

‘로코퀸’ 전지현이 21세기의 카산드라 ‘연’을 연기한다. 연은 무당의 딸로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영혼의 세계와 과거를 볼 수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믿지도 않는다. 특히 남성연대 안에서 그녀의 말은 언제나 힘을 잃는다. ‘4인용식탁’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어떻게 존재하되 보이지 않고, 말하되 들리지 않는지, 그 ‘비존재’를 보여준다. 전지현의 연기는 영 어색하지만 그 연기 자체가 우리 사회 여성들의 사라짐과 비존재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면, 참을 만하다. 매우 지적이며 매혹적인 공포영화.

9. 렛미인 (Let The Right One In,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

 

집단 따돌림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소년 오스칼은 어느 날 이엘리라는 소녀를 만난다. 둘은 점차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이엘리가 나타난 후로 마을에서는 의문의 살인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오스칼은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가 뱀파이어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미래 없는 사회, 붕괴된 가족, 페도필(소아성애), SM 등 온갖 불온한 상상력이 음울한 눈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 안에서 아름다운 것이란 소년 오스칼과 소녀 이엘리의 사랑뿐이다. ‘렛미인’은 소녀의 형상을 한 뱀파이어 이엘리가 소외된 소년들을 골라 사랑하고 보호해주면서 어떻게 자신의 외관상의 보호자로 삼는지 묘사한다. ‘악마의 키스’ ‘미이럼’의 소녀판이라 할 만하다. 영화를 본다면 이 여성 괴물의 매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터. 다만 미국판 리메이크작은, 그렇게 사랑하는 클레이 모리츠가 등장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노.

10. 박쥐 (박찬욱, 2009)

 

신부인 상현은 백신 개발 실험에 참여했다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하나, 의문의 피를 수혈받아 뱀파이어로 부활한다. 피를 구하는 뱀파이어의 몸과 신부로서의 양심 사이에서 상현은 고통에 빠진다. 상현의 부활 소식에 달려온 친구 강우와 강우의 부인 태주를 만난 상현은 곧 태주와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 

21세기, 뱀파이어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도, 배척해야 할 끔찍한 괴물도 아니다. 그들은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처럼 태양 아래서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뛰어난 존재들이 되었다. 돈도 많고 육체적으로도 뛰어난 ‘실장님 짐승남’으로 거듭난 것이다. 한국으로 넘어오면 뱀파이어는 윤리적인 ‘채식 뱀파이어’가 된다. ‘박쥐’의 송강호가 그렇다. 뱀파이어의 매력은 다 엿 바꿔 먹어버린 시시한 뱀파이어들. 이때 ‘박쥐’의 김옥빈은 오히려 자신의 흡혈 욕망에 충실한, 그야말로 뱀파이어 다운 뱀파이어로 등장한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바느질 가위로 사람들의 목을 따는 김옥빈은 매혹 그 자체다. ‘박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송강호가 김옥빈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장면만은 명불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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