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문가 3인의 추천작 - 듀나

1. 바바둑(The Babadook, 제니퍼 켄트, 2014)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행동장애가 있는 어린 아들과 힘겹게 살아가는 아멜리아. 그녀는 어느 날 남편의 창고에서 발견한 그림책 ‘바바둑’을 아들에게 읽어준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동화책이 아닌 악령 바바둑의 저주가 담긴 금서임이 드러나고, 그녀는 바바둑과 죽음을 넘나드는 처절한 사투를 시작한다. 

호주 여성 감독 작품으로 201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됐고 곧 개봉하는 영화. 바바둑이라는 그림책 괴물이 이들을 괴롭히는데, 경제적 빈곤과 노동에 시달리는 싱글맘의 현실과 초자연적 영화 속 괴물이 공포의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2. 샤이닝(The Shining, 스탠리 큐브릭, 1980)

 

미국 콜로라도 산맥 한가운데 위치한 오버룩 호텔. 겨울 동안 호텔의 임시 관리자로 일하게 된 잭과 아내 웬디, 어린 아들 대니가 도착한다. 지배인은 예전 관리인 중 고립감과 밀실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가족을 학살한 사례가 있다고 경고하나, 잭은 개의치 않는다. 작가인 잭은 조용한 환경에서 글쓰기에 몰두하려 하지만, 글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잭은 점점 광기에 빠져든다. 

가부장 제도의 폭력성을 그린 가장 모범적인 호러영화. 작가 자신의 알코올중독 경험이 그대로 반영되어 더 오싹하다. 단지 스탠리 큐브릭의 각색은 조금 추상적이고 차갑기 때문에 이 주제와 관련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스티븐 킹의 원작을 같이 읽어주는 게 좋겠다. 영화도 좋지만 페미니즘과 연결해 읽으려면 원작자의 의도를 읽는 게 좋겠다. 

3. 에일리언(Alien, 리들리 스콧, 1979)

 

항해 중인 대형 우주선에 탑승한 승무원들은 매우 공격적이고 독특한 외계생물과 맞닥뜨린다. 폐쇄 공간 안에서 외계생물에게 습격당하고, 탈출하기 위해 싸우는 승무원들의 공포와 갈등을 그린 영화. 시고니 위버는 이 작품을 포함한 세 연작 모두 주연을 맡아 ‘강한 여성’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첫 번째 영화다. 역사상 최초의 영화라는 게 아니라 그냥 최초의 테스트 대상이란 뜻이지만. 지금까지 당연히 남자가 맡았던 주인공을 여자가 맡고, 그 인물의 묘사에 ‘여성성의 핸디캡’이 거의 제거되어 있다. 원래 각본에 남성이었던 캐릭터를 여자로 바꾼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가능성의 문이 열린 셈. 물론 이 엘렌 리플리라는 인물이 제대로 꽃피려면 2편까지 가야 한다. 

*벡델 테스트(Bechdel test) : 영화의 성평등을 측정하는 테스트. 기준은 ①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해야 하고 ②그 두 명이 서로 대화를 해야 하고  ③그리고 그 대화는 남자에 대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4. 여고괴담 1 ~ 4(1998 ~ 2005)

여고괴담(박기형, 1998)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민규동, 김태용, 1999)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 여우계단(윤재연, 2003)

여고괴담 4 : 목소리(최익환, 2005)

 

여고괴담 (박기형, 1998)의 한 장면
여고괴담 (박기형, 1998)의 한 장면

또래 여고생들 간 애정과 질투, 집단 따돌림, 다이어트 등 사춘기 여고생들의 생활 속 다양한 소재들을 다룬 공포 영화 시리즈. 대부분 미스터리에서 시작해 가슴 아픈 여운을 남기는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이미연, 최강희, 공효진, 김옥빈, 송지효 등 유수의 여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5편은 너무 나빠서 차마 포함시키지 못했다. 인기는 1편이 가장 있었고 평은 2편이 가장 좋았는데, 3, 4편도 각각 고유의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 4편이 의외로 파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른 영화 속 주인공들이 성적 중심주의, 동성애 편견, 집단 따돌림과 같은 한국 학교 문화의 피해자라면 4편의 주인공은 철저히 욕망과 행동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전혀 긍정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5. 진저 스냅(Ginger Snaps, 존 포셋, 2000)    

 

진저와 브리지트는 16살과 15살이 된 사춘기 자매다. 이들은 여자가 되는 것은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점점 더 바보가 되는 것일 뿐이며 더 이상 성장하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언니 진저는 늑대인간에게 습격을 받아 자신도 괴물로 변해간다. 피에 굶주린 진저는 낮에는 남자를, 밤에는 개들을 잡아먹는다. 동생 브리지트조차 언니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캐나다 소도시에서 늑대인간으로 변해가는 소녀와 그 동생 이야기로 여자 주인공이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걸 월경주기 상징과 연결시킨 영화다. 많아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드문 부류다. 굉장히 뻔뻔스러운 은유를 무기를 휘두르듯 거칠게 쓴 영화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영어권 중산층 십대 소녀들이 겪을 법한 고민과 갈등을 굉장히 꼼꼼하고 강렬하게 그렸다. 속편 하나와 19세기를 무대로 한 프리퀄도 하나 있는데, 모두 성격이 다르지만 한 번씩 챙겨 볼만하다. 

6. 스크림 1 ~ 4G(웨스 크레이븐, 1996~2011)

스크림(Scream, 웨스 크레이븐, 1996)

스크림2(Scream 2, 웨스 크레이븐, 1997)

스크림3 (Scream 3, 웨스 크레이븐, 2000)

스크림4G(Scream 4G, 웨스 크레이븐, 2011)

 

스크림 (Scream, 웨스 크레이븐, 1996)의 한 장면
스크림 (Scream, 웨스 크레이븐, 1996)의 한 장면

작은 소도시 우즈버러에 사는 케이시에게 이상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남자는 케이시의 남자 친구인 스티브의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자고 한다. 케이시가 문제를 맞히면 살고, 틀리면 남자친구가 죽는다. 문제는 ‘13일의 금요일’에 나오는 살인마의 이름을 맞히는 것. 케이시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스티브는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이튿날, 혼자 집에 있는 시드니에게도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 스크림 가면을 쓴 연쇄 살인마로 잘 알려진 공포영화 시리즈. 

슬래셔(잔혹한 살인) 영화는 반여성적 장르지만 이 메타 슬래셔 시리즈에서는 상당한 발전이 있다.(그 전에도 ‘할로윈’이나 ‘나이트메어’ 시리즈에서 의외로 주체적인 인물들이 나오긴 했다.)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이 빈번하게 등장하긴 하지만 캐릭터 묘사는 이전과 성격이 다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도 두 명의 여성이다. 4편까지 가면 남자들은 거의 들러리. 

7. 스크루플라이(Masters of Horror - Season 2 : The Screwfly Solution, 조 단테,  2007)

 

남자들로 하여금 여자들을 죽이도록 하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남성들이 여성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한다. 살아남기 위해 불안한 여행길에 오른 모녀는 미쳐버린 남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리즈의 에피소드인데 그래도 넣어야겠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앨리스 셸든)의 단편이 원작으로, 외계인의 영향을 받은 전 세계의 남자들이 역시 전 세계 여자들을 학살한다는 이야기다. 마치 해충을 박멸하는 것처럼. 인간 중심주의를 비웃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여성폭력의 묘사는 그냥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원작 단편이나 영화나, 장르물로 쓰여졌지만 더 이상 그냥 장르물이 아니다. 

8. 티스 (Teeth, 미첼 리히텐슈타인, 2007)

 

여고생 던은 혼전 순결을 선언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의 애정 공세와 성적인 유혹, 위협은 계속된다. 어느 날 닥쳐온 위기의 순간에 던을 구해준 것은 그녀의 성기에 달린 이빨이다. ‘버지니아 덴타타: 이빨 달린 여자의 성기. 남자들의 무의식적인 거세 공포를 드러내는 오랜 상징’이라는 고대 전설을 차용한 영화. 23회 선댄스영화제(2007)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

방사능 오염으로 혼전 순결을 당연시하던 기독교 근본주의자 고등학생의 성기에 이빨이 생긴다는 영화다. 그로테스크한 코미디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빨 달린 여자 성기가 나오는 영화를 빼면 아쉽지 않겠나. 종교적 근본주의에 대한 야유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성적 결정권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 성에 대한 결벽증을 극복하고 자신의 성기를 통제하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소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9.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 조나단 드미, 1991)

 

FBI 수습요원 클라리스 스탈링은 어느 날 FBI 국장인 잭 크로포드로부터 연쇄살인사건의 수사에 참여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더 면밀한 프로파일링을 위해 클라리스는 수감 중인 살인마 ‘식인종’ 한니발 렉터 박사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 사건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가는데... 역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유일한 공포영화. 클라리스 역을 맡은 조디 포스터는 이 작품으로 오스카를 손에 쥐었다. 

클라리스 스탈링이 당시엔 얼마나 진취적인 여성 영웅이었는지. 

10. 새 (The Birds, 알프레드 히치콕, 1963)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젊고 아름다운 여성 멜라니 다니엘즈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만난 변호사 미치 브레너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를 만나러 그의 고향집으로 향하던 멜라니는 갑자기 날아온 갈매기의 공격을 받고 이마에 상처를 입는다. 그녀가 도착한 이후 마을에서는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새떼들가 일제히 인간을 공격한다. 

의도적인 페미니즘 영화는 당연히 아니지만 맘에 드는 남자를 찾아 시골 마을에 왔다가 그 남자의 옛날 여자친구, 여동생, 엄마와 얽히게 되는 샌프란시스코 여자를 다룬 이 이야기엔 단순히 무자비한 새의 공격 이상의 텍스트가 숨어 있다. 히치콕 영화 중에서도 여성 비중이 굉장히 높은 영화다. 히치콕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지만 그 관계 자체도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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