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공무원은 사업 선정에 애먹고
지방의원 18% 성인지예산제 ‘제도 몰라’

 

성인지 결산 대상사업 담당자 등 공무원들이 1월 23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2014회계연도 성인지 결산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성인지 결산 대상사업 담당자 등 공무원들이 1월 23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2014회계연도 성인지 결산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지방재정을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해 예산 편성에 반영하는 ‘지방 성인지예산제’가 시행 3년 차를 맞았다. 제도가 도입되고 지금까지 세 번의 성인지예산서와 두 번의 성인지결산서가 작성됐다. 그러나 여전히 성인지예산 작성 담당 공무원과 심의·의결을 담당하는 지방의회 의원들은 제도를 잘 알지 못하거나, 이해 수준이 낮아 제도의 안착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방 성인지예산제는 2009년 시행된 국가 성인지예산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차례 시범 작성 이후 곧바로 시행됐다. 준비 기간이 충분치 않았지만 예산 규모와 대상 사업 수가 꾸준히 늘면서 정착하고 있다. 시행 첫해인 2013년 지방 성인지예산서 예산 규모는 총 1만1803개 사업에 12조60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2014년에는 1만3229개 사업에 14조7000억원, 2015년에는 1만2805개 사업에 14조5000억원으로 다소 감소했다.

지자체에서 작성한 성인지예산 대상 사업은 대부분 사회복지에 집중돼 있다. 사회복지 사업 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46.1%에서 2014년 43%, 2015년 40.9%로 감소했다. 하지만 예산액 비중은 79%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지방 성인지결산서 종합분석 및 운영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13회계연도 성인지결산서 성과목표 달성률은 67.5% 수준이다. 2011 국가 성인지결산서 성과목표 달성률(68.3%)과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제도가 매년 시행되면서 지자체 특성에 맞는 대상 사업 선정과 제도 운용의 필요성이 매번 제기되고 있다. 또한 제도를 운용하는 공무원과 지자체의 낮은 인식도 걸림돌이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지자체에서 성인지예산서를 작성한 공무원 33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성인지예산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고려해 재원을 배분하므로 예산의 효율적이고 투명한 운용에 기여한다’는 문항에 ‘동의’ 정도가 2.9점(5점 만점)으로 보통 수준 이하로 나타났다. 특히 ‘성인지예산은 여성을 위한 별도의 예산이다’라는 문항에 대한 동의 정도는 3.5점으로 나타났다. 성인지예산서 작성 경험이 없는 공무원(2000명)의 동의 정도(3.3점)보다 더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성인지예산제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거나, 잘 모르는 공무원이 많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담당 공무원이 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성평등 목표에 부합하는 대상 사업을 제대로 선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예산서와 결산서 자체도 미흡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예산을 심의·의결해야 하는 지방의원들의 제도 인식 수준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김희경 성인지예산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가 지난해 7~8월 한 달간 지방의원 3,687명을 대상으로 성인지예산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응답한 지방의원 376명 가운데 ‘성인지예산제를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93명(51.3%)에 그쳤다. ‘들어본 적 있다’는 의원 115명(30.6%), ‘모른다’고 답한 사람도 68명(18.1%)이나 됐다.

전문가들은 지방 성인지예산제가 실효성을 높여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경희 대전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지방 성인지예산제도 시행 3년, 현황과 개선 과제 포럼’에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제도나 용어에 대한 이해 자체를 어려워하는 의원이 많다”며 “제도에 대한 의원 개인의 관심과 의지가 의정활동으로 이어지므로 의원들에 대한 성인지 정책 관련 교육이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공무원 예산안 설명보고에서 성인지예산서를 반드시 포함시키는 등 절차상 강제 규정이 필요하다”면서 “여성정책 관련 부서만을 성인지예산 사업 소관 부서로 정하지 말고, 사업 내용에 따라 총괄 부서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수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성인지예산제와 성별영향분석평가의 완벽한 연계를 위해 성평등 목표와 성평등 기대효과, 성별수혜 분석 등 작성은 여성정책부서에서, 예산은 예산부서에서 하도록 명확히 나눠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조신숙 여성가족부 성별영향평가과장은 “가령, 사업의 전반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사업설명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데, 내용을 두 부서가 나눠 작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라며 “예산부서에서 성인지예산을 총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