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학생이 기다리는 여름방학이다. 방학이란 휴식을 통해 힘들고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처럼 온 가족이 부대끼면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방학이 다가오면 이런저런 계획들이 많아진다. 고즈넉한 산 속 계곡으로 떠날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빽빽한 스케줄의 산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해수욕장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방학 계획의 백미는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원하는 만큼 읽겠다는 포부가 아닐까. 언제나 계획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방학에 몇 권의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했던 그 시간은 학창 시절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별다른 놀 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 속에 파묻혀 보냈던 그 시절의 방학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사색과 관조를 경험하게 해주고,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게 하는 꿈같이 달콤한 것이어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여름방학에 책 속에 빠져 지냈던 중·장년들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 살아가고 있는 요즘 아이들은 어떤 방학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여기저기 여행을 하겠다는 계획은 다르지 않지만 그동안 읽지 못한 책을 읽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방학 직전에 학생들을 만나 다가오는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낼 생각인지 면담을 했다. 많은 학생들의 대답은 해외여행 계획과 아울러 영어 성적 향상, 자격증 취득 등 이런저런 스펙을 쌓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책을 읽겠다는 학생은 만나기 어려웠다. 도서관에 쌓여 있는 저 많은 책들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지 권유하면서 마음 한편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떠나지 않았다.

방학에 책 속에 빠져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이 학생들의 탓만일까. 분명 스마트폰을 비롯한 주변 환경과 삶의 방식이 달라진 것들이 중요한 이유겠지만 그보다 모든 것을 입시와 연관 지어 평가하고 판단하는 현재의 교육체제가 결국 성적과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관심이 없게 만들고 따라서 책을 읽으면서 재충전의 기회를 갖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진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탄식한다. “책 안 읽는 시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암울하다. ‘책 안 읽는 시대’라고 말했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책을 못 잡게 하는 시대’ 그래서 ‘무식을 권장하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문학 코너를 기웃거리던 대학생조차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면서 취업 코너로 돌아서고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문학소녀, 문학소년이라는 말은 이제 낯선 단어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책 안 읽고, 책 못 읽는 시대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일까. 영국의 조사기관 DJS리서치에 따르면, 영국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책을 많이 읽는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IFOP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은 휴가시즌이 되면 TV 시청도 줄이고 책을 읽는다. 휴가라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 읽기를 위해 휴가를 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아나 초등 때는 많이 읽다가 연령이 높아질수록 안 읽는다고 한다. 책 읽기는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고 한다. 미래의 결실을 위해 깊숙이 씨를 뿌리고 묵묵히 가꾸는 것 말이다. 책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인생을 설계하기도 할 수 있으니 책 읽지 않는 사회에서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지급결제 시스템 ‘페이팔’에서 시작해 전기차(테슬라), 우주로켓(스페이스X)까지 진출한 엘론 머스크는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로켓까지 배웠나”라는 질문에 “나는 책벌레였다. 나를 잡으러 올 때까지 서점에서 책을 읽었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읽었다.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지면서 백과사전을 읽기 시작했다”고 대답했다. 모처럼 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책 읽기에 도전하는 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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