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제도 바뀌어도 실질적 평등은 요원
“30년째 작가 생활을 하고 단행본이 가장 많이 팔린 작가인데도, 아직도 저를 ‘여성 작가’로 소개하고, 이혼 횟수를 꼭 앞에 붙여요. 폭력이죠.”
공지영 작가는 14일 성평등도서관 ‘여기’(이하 여기) 개관 기념으로 진행된 ‘젠더토크’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성평등 수준에 대해 “아직도 멀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과 전 법무부 장관인 강금실 변호사, 공 작가는 한자리에 모여 성평등 역사의 주요 기록과 기억을 공유하고 그 의미를 어떻게 이어 나갈지 의견을 나눴다. 특히 국내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을 소송화한 ‘서울대 신 교수 사건’(이른바 우 조교 사건)과 호주제 폐지가 대화를 채웠다.
박 시장은 당시 서울대 신 교수 사건을 공동 변호한 바 있으며, 강 변호사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법적 접근’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저술(2000년 1월)하는 등 호주제 폐지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바 있다. 공 작가도 호주제 피해 당사자로서 글을 통해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다. 이날 젠더토크 진행은 배우 권해효씨가 맡았다. 서울시성평등위원회 위원인 권씨도 대학 강연, TV 토론 패널 등으로 참석해 호주제 폐지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박 시장은 “신문 귀퉁이에 작게 실린 사건을 보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민사소송을 시작했다”며 “1·2심에서 패소했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할 수 있있었던 것은 당시 결혼을 앞둔 우 조교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렸기에 가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호주제 폐지 운동이 불붙었던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 변호사는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이석태 변호사와 양현아 서울대 교수, 진선미 의원, 여성단체 등이 함께 공감하고 협력하며 일했던 기억이 난다”며 “이석태, 박원순, 권해효 등 여성문제에 공감하고 함께 하는 남성 동료들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공 작가는 “호주제 피해자였기에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재혼을 하면서 아이의 성이 남편과 달라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게 됐다. 한 신문 칼럼에 이런 내용을 알리고 ‘감옥 갈 각오를 하고 동사무소 직원에게 돈을 주고서라고 성을 바꿔야겠다’고 쓰자, 호주제 존치를 주장하던 유림이 ‘아이한테까지 피해가 있을 줄 몰랐다’며 그 부분은 양보하겠다고 말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공직자 중 여성이 절반에 육박하지만 고위직은 아직 소수”라는 지적에 대해 박 시장은 실질적 평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시장은 “공직자 여성 비율은 높아졌지만 책임자급에 올라가면 여전히 남성 지배적인 구조”라며 “서울시는 이를 바꾸기 위해 위원회 여성 비율을 40%로 하도록 정하고, 1명이던 여성 국장을 8명으로 늘리는 등 의식적으로 노력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법 제도는 많이 따라왔지만 막상 실제 이뤄진 것은 많지 않아 실질적 평등으로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도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평등지수가 2008년 이후 해마다 떨어져 전 세계 142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117위였다”며 “실질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많은 약자형 가족 형태 등 아직 실질적 평등은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