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의 여성과 통일

 

지난 5월 열린 DMZ 세계여성평화걷기대회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5월 열린 DMZ 세계여성평화걷기대회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세상 사람들은 모두 평화를 갈망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선 비평화적 전쟁과 폭력들이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에서 말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지만 그들 모두는 각자 자기 마음에 더 드는 평화를 원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잔혹하게 파괴하는 전쟁과 폭력들이 ‘그들의 마음에만 드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평화는 평화에 의해서 지켜지고 실현돼야 한다는 평화운동의 정언명령이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있다.

평화에 대한 외침과 갈망이 크다는 것은 그 외침과 갈망의 무게만큼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의미한다.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60년이 지난 우리의 남북 관계가 이와 같을 것이다. 평화에 대한 위협이 크기에 평화를 더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분단이 낳은 전쟁은 분단을 극복함으로써 완전하게 종식될 수 있을 것이며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평화를 갈망하는 것은 단지 분단 극복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평화 때문만이 아니다. 분단 극복의 과정, 즉 통일의 과정이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로서의 평화보다 과정으로서의 평화가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이다.

여성이 통일운동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통일 준비 과정에 보다 많은 평화주의적 관점과 실천이 집중돼야 한다. 여성들이 통일 준비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통일 과정이나 통일국가 형성에 있어서 성 평등적 관점의 반영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남북한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가부장성과 성차별을 해체하고 정치, 경제,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여성의 이해와 권익을 확대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는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더 평화 지향적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선도적으로 평화운동을 해온 여성들의 실천과 경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평화감수성에 대해 본성상 그렇다는 이들도 있고 사회화의 결과라는 이들도 있다. 물론 여성이 남성보다 더 평화감수성이 높다는 주장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평화지향성이 어디에서 왔든 실제 생활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더 평화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여성들의 삶의 양식이나 노동방식은 평화운동의 근간이 되는 돌봄과 배려에 기초한 것들이 많다. 이러한 모성적 사고와 돌봄의 윤리는 배려와 관용을 촉진하고 전쟁과 폭력이 아닌 대화와 토론을 통한 화해와 협력을 다지는 자양분이 된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통일 운동에의 참여가 절실한 것이다.

여성의 주도하에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의 결합이 필요하다. 진영논리로 정치화되고 이념화된 통일운동에 평화의 리더십인 돌봄의 윤리를 결합하여 전쟁과 폭력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갈등을 제거하고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 일은 어느 일방만의 노력으론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한 여성들이 함께 평화를 이야기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TV를 통해 남성 못지않게 군사화된 북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과연 우리 여성들이 꿈꾸는 평화를 북한 여성들도 꾸고 있는 것인지, 선군정치로 훈련된 북한 여성들이 말하는 평화가 우리 여성들이 외치는 평화와 같은 것인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남북 여성들의 평화운동은 평화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 여성의 본성이든 사회화의 결과이든 북한의 선군정치로 실종된 모성적 사고와 돌봄의 윤리를 회복시켜야 한다. 이를 토대로 평화는 평화에 의해 실현돼야 한다는 평화운동의 제일원칙에 대한 공유와 공감을 만들어내야 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