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얻은 것은 배신자 척결, 잃은 것은 국민의 마음
비정상이 정상화를 몰아내는 적폐 척결에 대통령 스스로 앞장서야 할 것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와 관련해 김태호 최고위원이 “한 말씀 더 드리겠다”고 하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를 그만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와 관련해 김태호 최고위원이 “한 말씀 더 드리겠다”고 하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를 그만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다시 상정됐지만, 새누리당이 표결에 불참해 사실상 폐기됐다.

개정안은 19대 국회가 끝나는 내년 5월까지 본회의에 다시 상정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40조에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돼 있고, 제46조 2항에는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돼 있다. 국회법 제114조 2항에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돼 있다.

새누리당 당헌 제82조 1항에 “의원은 헌법과 양심에 따라 국회에서 투표할 자유를 가진다”는 ‘양심에 따른 투표의 자유’ 규정이 있다. 따라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재의결 표결 불참은 국민을 대표하는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고,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더구나 전통적으로 소수 야당이 거대 여당의 일방 통행에 저항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표결 불참을 다수 의석을 거느린 집권 여당이 실행했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분명 새누리당이 보인 표결 불참 행태는 ‘새누리당의 이름은 혁신입니다’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한다. 이런 와중에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에 관한 논의를 결정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열었고, 유 대표는 의총에서 모아진 사퇴 권고안의 뜻을 받들어 취임 156일 만에 물러났다.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와 관련해 김태호 최고위원이 “한 말씀 더 드리겠다”고 하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를 그만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와 관련해 김태호 최고위원이 “한 말씀 더 드리겠다”고 하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를 그만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배신자 유승민 대표를 심판해달라고 밝힌 지 13일 만이다. 유 대표는 사퇴의 변으로 “내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제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내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가치는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고 덧붙였다.

이번 유승민 사태를 접하면서 불편한 실체가 드러났다. 집권당의 무능과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구시대의 수직적 당·청 관계가 입증됐고, 의원들은 자신들의 소신을 접고 계파 눈치 살피기에 빠졌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데는 성공했다.

국회법 재개정은 폐기됐고, 배신자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내렸고, 김무성 대표 체제를 뿌리째 흔들면서 무력화시켰다. 당내 비박 두톱 체제에서 주눅 들었던 친박에게 용기를 주고 결집시키는 부수 효과까지 거두었다. 그런데 얻은 것이 있는 만큼 잃은 것도 있다.

가장 큰 손실은 국민이 대통령과 함께하지 않으면서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지난 6일 국회법 재개정이 여당의 표결 불참으로 폐기되는 날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반대하는 의견이 49.4%로, 찬성하는 의견(35.7%)보다 13.7%포인트 높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인 지난 6월 29일에 실시한 조사에서 ‘사퇴 반대’가 45.8%인 것과 비교해보면 반대 여론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졌다.

이런 조사 결과는 대통령이 위헌 논란이 있는 국회법 재개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의원들이 선출한 원내 대표를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몰아내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집권당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친 것은 큰 손실이다.

여하튼 대통령이 얻은 것이 배신자 척결이고 잃은 것이 국민의 마음이라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민과 점점 멀어지는 리더십으로는 남은 기간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는 어렵다. 국민을 설득하고 정치권의 협조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는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라는 책에서 “국민이 정부에 대한 기대와 실제가 일치하지 않은 때 정부를 불신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가장 큰 이유는 원칙대로 할 것 같은 기대 때문이었다. 작금의 정치혼란 상황은 이런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은 이제 옳고 그름을 떠나 비정상이 정상화를 몰아내는 적폐 척결에 스스로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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