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 강조 성교육 “현실과 동떨어져”
여성·청소년단체 20곳, 5월 초부터 연대모임 갖고 대응책 논의 “전면 재검토해야”

 

2일 경기 부천시 소일초등학교 학생들이 보건시간에 임신과 출산에 관한 수업을 받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일 경기 부천시 소일초등학교 학생들이 보건시간에 임신과 출산에 관한 수업을 받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교육부가 만들어 일선 초·중·고에서 시행 중인 학교성교육표준안이 잘못된 성의식을 심어주고 인권침해 우려가 높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성계는 학교성교육표준안 전면 재검토 운동에 나섰지만 교육부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개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월 전국 시도교육청에 학교성교육표준안을 전달했으며 시도교육청마다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교사 연수를 진행했다. 일선 학교 교사들은 “교육청이 성교육 담당 교사는 물론 외부 초빙 강사도 표준안에 준해 가르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표준안은 현재 초·중·고교생들이 단체로 오는 성교육 전문 기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수도권의 청소년성문화센터 관계자는 6월 23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교 보건교사들이 성교육을 할 때 ‘자위행위’ ‘다양한 가족관계’ ‘동성애’ ‘야동’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며 학교성교육표준안 안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등 여성‧청소년‧인권단체 20여 곳은 5월 초부터 연대모임을 갖고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대모임 관계자는 “교육부가 학교성교육표준안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올여름께 본격적인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계는 성교육표준안이 학교 성교육을 20년 전인 1990년대로 퇴보시킬 것으로 우려했다. 지금은 지상파 예능에서 야동(야한 동영상)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초등학생이 기념일을 챙기며 이성교제를 하는 시대인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금욕’ ‘절제’를 강조하는 성교육이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수도권의 A초등학교 박모 보건교사는 “성교육 가이드라인은 필요하지만 기대 이하 내용이라 실망했다”며 “실제 학교에서 해온 성교육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너무 보수적이고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뭘 이런 걸 공들여 만들었나’ 싶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현장에선 표준안을 무시하고 그동안 해온 대로 성교육을 하는 교사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교육부는 “표준안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주무 부서인 학생건강정책과 관계자는 6월 24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 대학교수가 교육청과 학교 담당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학교성교육표준안 설명회 자료에 지나치게 강한 표현이 삽입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일선 학교에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는 판단에 3월 말 교육청을 통해 ‘해명 공문’을 발송했다”고 말했다. 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동성애에 대한 지도는 아예 허용되지 않고, 자위행위도 질문이 없으면 언급할 수 없도록 했다. 중·고교 성교육은 절제가 아닌 금욕을 바탕으로 가르치되 ‘1인 가족’ 용어 사용에 신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는 “동성애에 대해선 관련 교과에서 ‘인권’ 측면에서 지도하고 있다. 동성애가 성가치관 측면에서 일반적인 사항이 아닌 바, 국가 차원의 ‘학교성교육표준안’ 마련 과정에서 적극 포함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해명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여성계는 학교성교육표준안 개발자 중 한 명인 대학교수가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표준안 설명회 자료가 문제가 되자 교육부가 뒤로 한 발 뺀 것으로 보고 있다. 설명회를 듣고 온 교사가 교육청별로 일선 초·중·고 보건교사들을 대상으로 ‘전달 연수’를 했는데 그게 학교성교육표준안 지침이 아니면 무엇이냐는 반문이다.

여성단체 관계자는 “교육부 공문에는 동성애자만 언급돼 있으나 여성계가 문제를 제기한 것은 학교성교육표준안 전반이 현실과 유리돼 있다는 것”이라며 “성에 관한 다양한 질문에 함께 고민해서 답하고 이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려 은폐되거나 이중적인 성의식을 평등한 의식으로 바꾸는 것이 성교육인데 표준안에는 이런 부분이 반영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명화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상임대표는 “그동안 성에 대한 남녀의 이중적 잣대를 버리고, 약자·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성교육이 이뤄져 왔다”며 “‘성인지적 성교육과 인권통합 교육 내용을 성교육에 담아왔는데 표준안을 보면 이런 배경과 맥락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본래의 취지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현장에 전달되는 성교육표준안은 마치 검열도구 같다”며 “수년간 학생들과 마주하면서 청소년 친화적으로 성인지적 관점을 중요시하며 실천해 온 현장의 경험이 송두리째 무시당한 기분이다. 무엇보다 성교육 가이드라인 이상의 국가 수준 표준안이 왜 개발돼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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