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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적으로 여성장애인의 인권 문제가 제기되고 가운데, 한

여성장애인에 대한 구명운동이 일어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폭력남

편 살해혐의로 구속중인 여성장애인 유순자 씨를 위해 여성단체와

장애인단체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거리 서명작업 등 활발한

구명운동에 나섰다.

군포시 산본동에 사는 피의자 유순자 씨(39·1급 지체장애인)는 척

추후만증(속칭 곱사등)에 뇌성마비로 언어장애까지 심한 1급 지체장

애인으로, 남편 최 모씨(44)의 구타에 못이겨 살인을 저질렀다. 지

난 1월 19일 만취 상태인 남편 최씨는 유씨의 머리채를 붙잡고 방바

닥에 짓이기며 기절할 정도로 심한 구타를 가했다. 유씨가 혼절 상

태가 되자 당황한 최씨가 119에 전화를 했고, 그 사이 깨어난 유씨

는 부엌칼로 최씨를 찔러 숨지게 한 것.

남편 최씨는 돈벌이도 하지 않은 채 아내인 유씨가 육교에서 콩을

팔거나 구걸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음에도, 평소 술만 마시면

유씨를 상습적으로 구타해 왔다. 이를 지켜본 주민들의 신고로 몇

차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지만, 유씨는 경찰이 최씨를 구속하는 걸

만류했다는 것.

이처럼 사회적 소외 속에 지지집단이 전혀 없는 유씨와 같은 여성

장애인의 경우는 스스로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게

여성단체 관계자들의 말이다. 중증 장애인으로 의지할 만한 가족도

없는 유씨가 어렵게 결핵요양원에서 만난 유일한 가족인 남편 최씨

를 가정폭력 가해자로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

이번 사건 해결을 위해 군포여성민우회, 안양YWCA, 안양여성의전

화, 안양여성회, 안양 전진상복지관, 장애우인권문제연구소, 한국여성

장애인연합,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군포지회, 산본 14단지 부녀회 등

9개 여성·장애인단체 및 지역단체들은 지난 2월 29일 공동대책위를

구성했다. 공대위 측은 일단 법적으로는 정당방위로 무죄를 주장하

는 동시에 거리에서 유씨의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여 7천5백여

명이 참여한 서명부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피해자가 가해자가 돼버린 안타까운 사건은 이

전에도 있었지만, 장애여성에 의한 살인사건은 처음이다. 이번 사건

은 일반 가정폭력의 피해여성과는 달리 장애인이라는 특수성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번 사건의 관건도 장

애인의 정당방위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달렸다.

일반적인 정당방위의 개념은 가해할 당시 반사적으로 자신을 방어

하기 위한 대항이었을 경우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기절했다 일어나

남편을 찌른 유씨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씨의 경우

통상적 의미의 정당방위 개념을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게 변호인 측

주장이다. 유씨는 장애로 인해 곧바로 방어할 수 있는 신체 조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혼절할 정도의 구타 상태에서 깨어나 자신을

다시 때릴지 모른다는 위협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방어한 것이라고.

“그 정도 맞은 것으로 뭘 그러냐”는 반응도 있을지 모르나, 비장

애인에게도 심한 정도의 구타인데, 1급 장애인인 유씨에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치명적인 구타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씨의

경우는 절대 비장애인의 시각으로 봐서는 안되고, 법률적 기준도 달

리 적용해야 한다는 게 이덕우 담당변호사의 주장이다.

이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여성 문제와 장애인 문제가 중첩돼 있

다”면서, “가정폭력에 대해 우습게 생각하는 사회인식에 대해 다

시 한 번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의 집단 성폭행 피해자 김명숙씨 사건과 함께 이번 유순자씨

사건이 발생하면서 물밑에 있던 여성장애인에 대한 폭력이 수면 위

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장애인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이 없었다는 게 많은 이들의 문제의식이다.

‘군포여성민우회’한혜규 상임대표는 “지금까지 여성인권에도 여

성장애인 문제는 빠져 있었다”며 “당연히 보호 받고 지지 받아야

함에도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의 현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과 같은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여성장애인

을 위한 쉼터가 필요하다고 여성단체와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일반 쉼터에 장애인들을 수용할 경우 비장애인들이 꺼리는

형편이고,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아 불편하기 때

문에 여성장애인들은 폭력을 피해 쉴 곳이 없는 실정”이라는 것.

이에 ‘한국여성장애인연합’강성혜 사무국장은 “여성장애인 전담

센터, 상담전화, 쉼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숨어 있는 여성장애인의 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실태 파

악이 급선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금까지 여성단체에서는

장애인을 특화시킨 통계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성장애

인 문제에 관한 파악이 어렵다는 것. 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

소’에서는 여성장애인이 겪는 폭력에 대한 실태 조사에 착수할 예

정이라고 밝혔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유순자씨 2차 재판 현장

지난 7일 오후 4시,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유순자씨 사건 2차 재

판에는 공대위와 산본동 주민들이 재판정을 가득 메웠다. 재판이 시

작되고, 방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법정에 들어선 유순자씨는 뇌성

마비에 등까지 굽어 몸을 가누기도 힘든 모습이어서 과연 살인 혐의

를 받고 있는 피고가 맞을까 의심이 들게 했다.

이날 재판은 증인으로 나온 동네 주민 두 사람에 대한 담당변호사

(이덕우)의 심문과 재판관의 질문으로 이루어졌다.

14단지 부녀회 회장으로 있는 채인옥 씨는, 유씨의 남편 최씨에 대

한 증언에서, “술만 마시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러댔어

요” 라는 말로 시작했다. 집에 가서는 아내 유씨를 기절할 정도로

때리고는 119에 전화를 걸어 데려가라고 하곤 했다 한다. 술에 찌들

어 지냈던 최씨의 구타는 거의 매일 이어졌고, 유씨의 몸은 하루도

성할 날이 없었다는 게 이웃들의 증언이다. 무능한 자신의 상황을

자학하며 그 스트레스를 장애인 아내에게 풀었던 것.

그러나 재판장 석의 분위기는 유씨에 대한 최씨의 폭력을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분위기여서 방청인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특히

판사가 증인에게 “최씨가 유씨를 폭행할 때 여타의 무기 없이 손으

로만 쳤느냐?”라고 연거푸 물은 것은, 우리 법정이 장애인에 대한

폭력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반면, 마을 주민들은 1급 지체장애자 유씨가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칼을 들게된 경위에 대해 십분 이해를 한다는 듯이 증인의 심

문 과정 내내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 과정에서

시종일관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던 유순자씨는 방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재판정을 나서면서 마을 주민들을 보자 이내 울음을 터뜨렸

다.

유순자씨에 대한 다음 재판은 21일 오후 4시에 열릴 예정이다.

'수원=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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