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만 강요된 일·가정양립 정책
시간제일자리, 저임금·비정규직 심화
산부인과 감소 등 출산·양육환경 부실

 

6월 26일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저출산을 질문하다’ 포럼 ⓒ한국여성민우회
6월 26일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저출산을 질문하다’ 포럼 ⓒ한국여성민우회

“출산율이 높아지면 고령화 비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저출산 대책’이라기보다는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것이 더 정확한 목표다. ‘어떻게 만혼을 줄일 것인가’보다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다른 것은 자연히 풀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전임 이명박 정부 막판인 2013년 1월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의 첫 회의였다. 제4기 위원회는 오는 9월까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대통령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의 1·2차 저출산·고령사회정책에 대한 평가와 결과는 초라한 실정이다. 1·2차 계획의 연장선인 3차 기본 계획도 실제적인 효과성을 발휘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사회 전반의 경제적 불평등과 남녀불평등 등 사회의 구조적 접근에 대한 부재로 효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의 ‘2014년 출생·사망통계’(잠정치)에 따르면 2014년 합계출산율은 1.21로 전년도의 1.19에 비해 다소 늘어났다. 하지만 이는 가임 여성의 비율 감소에 따른 착시현상이다. 출생아 수를 보면 4만5300명으로 2013년보다 1200명이나 줄었다. 2013년에 비해 2014년의 합계출산율이 다소 증가했으나 출생아 수는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출생아 수의 감소보다 가임 여성의 수가 더 빠르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애초 계획의 목표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출산율은 1.7명이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 고용 유지 대안으로 시간제 일자리 정책이 시행됐지만, 오히려 여성의 노동시장 내 지위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생산권리의 주체인 여성이 국가 경쟁력과 노동력 충원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6월 26일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 교육회의장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저출산을 질문하다’ 포럼에서 박진경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일·가정 균형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고용률 70% 로드맵의 하나로, 여성의 노동시장 내 지위를 더욱 열악하게 할 것으로 예상하여 문제 제기를 받았지만, 저출산 대책에 재등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여성의 저임금과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낮은 지위로 인해 노동권의 침해는 물론 이로 인한 성별분업의 심화와 가족, 사회에서의 여성 지위를 더욱 열악하게 만든다”며 “젠더 관계 개선 없이 여성인력의 도구적 차원에서 여성에게만 강요된 일·가정 양립과 시간제 일자리 등은 이를 더욱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1·2차 저출산·고령사회정책이 ‘출산·양육에 유리한 환경 조성’을 강조해왔지만, 실제로는 산부인과 감소 등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성들의 부담만 증가시켰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인류학 교수는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은 일과 가정 양립이 얼마나 어려운지 토로하지만,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은 사회적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며 “저출산 담론과 대책이 정상가족 규범을 강화하고 출산을 여성 시민권의 전제로 만들면서 출산을 특권화하고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유동성과 이동성이 강해지고 있는 사회에서 출산 자체의 관점이 아닌 자녀가 주는 기쁨과 긍정성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출산율보다는 성장의 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많은 사람이 글로벌 사회, 다양한 선택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여 어떻게 개인의 행복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에 강조점을 두어야 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저출산은 보편적 현상이다. 계속해서 출산을 더 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오히려 저출산보다는 ‘어떻게 아이를 잘 키울 것인가’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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