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전체의 9.4%뿐… 여성 고위직 진출 ‘걸음마’ 단계
총경 이상 11명, 경감 이상 480명에 불과
영등포서 성추행 경위 구속도… 경찰 양성평등문화 언제쯤

 

여경 창설 기념식에 참석한 여경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경 창설 기념식에 참석한 여경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5월 26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소속 김모(51) 경위가 지난 3월부터 2개월간 순찰차 안에서 같은 팀 소속 후배 순경의 허벅지를 수차례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앞서 이 경찰서 소속 여경 50여 명은 김 경위를 엄벌해 달라며 영등포경찰서 수사과에 탄원서를 냈다. A4용지 2장 분량의 탄원서에는 “같은 여경으로서 좌시할 수 없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엄벌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영등포경찰서 측은 “김 경위가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피해자에게 ‘미안하다. 용서를 구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점으로 미뤄볼 때 혐의가 명백하고 죄질이 불량하다”며 구속영장 신청 사유를 밝혔다.

여자 경찰관이 생긴 지 올해로 69주년을 맞지만 여경 비율이 10%가 채 안 되는 가운데 현장에서 겪는 고충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이 매년 7월 1일을 여경의 날로 정해 여경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있지만 여경 전성시대가 되려면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다.

최초의 여자 경찰은 1946년 7월 1일 탄생했다.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신설돼 여성 경찰국장 고봉경 총경을 비롯한 여성 간부 16명과 여경 1기생 64명이 근무를 시작했다. 이들은 당시 성매매와 청소년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이후 형사, 경비 등 업무 영역이 확대되면서 89년 ‘금녀의 구역’이던 경찰대학에 여학생이 처음 입학하면서 여경의 지위가 높아졌다. 99년 여경기동대 창설, 2000년 경찰특공대 여경 배치와 간부후보생 여성 채용 등을 통해 발전해왔다.

 

경기경찰청 기동부대 지휘검열에서 여경들이 불법시위자 체포훈련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경기경찰청 기동부대 지휘검열에서 여경들이 불법시위자 체포훈련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하지만 5월 말 현재 여경은 전체 경찰관(11만169명) 중 1만351명으로 9.4%에 불과하다. 2005년 여경채용목표제와 여경승진목표제가 시행됐지만 10년이 된 지금까지도 여성 비율이 전체의 10%가 못 됐고 승진 문턱은 여전히 높다.

당시 경찰청은 2014년까지 전체 경찰의 10%를 여성으로 늘리는 여성인력 확대 정책을 내놓았으나 아직은 걸음마만 뗀 상태다. 총경 이상 고위직에 오른 여경들도 손에 꼽을 정도다. 현재 총경 이상 여경은 11명, 경감 이상 관리자는 480명에 불과하다. 경찰청은 2013년 말 “‘경찰 내 여성 관리자 확대 목표제’를 도입해 2017년까지 경감 이상 여경 비율을 5%로 늘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청장인 치안총감은 차관급이고 바로 밑 치안정감은 1급이다. 여성으로 첫 치안정감에 올랐던 이금형 전 부산지방경찰청장은 지난해 말 퇴임해 현재 서원대 석좌교수로 후진을 기르고 있다. 지난 1월 경찰 총경 인사에서 여성 경정 4명이 총경 후보자로 승진하면서 ‘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총경 이상 여경이 늘었지만 최고위직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이금형 교수는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도 엄마 역할의 확장’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실은 경찰의 어떤 역할도 엄마 역할의 확장”이라며 “여경 인력 확대는 국민의 신뢰에 목말라 있는 경찰에게 단비 같은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여경 비율이 경감 10%, 경정 7%, 총경 5%, 경무관 5%, 치안감은 1% 이상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청소년 업무뿐 아니라 인사나 정보, 감찰, 기획, 강력수사 업무를 두루 익힐 수 있도록 보직 순환이 필요하고, 여경 리더십 교육도 더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경 관리자들이 여경 고위직 진출의 과도기임을 명심해서 남자 경찰보다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미옥 서울 강서경찰서 강력계장은 “여경을 기르고 보직을 다양화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다. 조사업무 분야는 오래 하는 전문가들이 늘었지만 강력팀은 여전히 여경이 너무 적다”며 “강력팀에 배치되는 여경들이 기회를 얻어도 3년 이내에 포기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육아의 부담감, 강력 업무에 대한 가족의 우려, 불규칙한 생활, 정서적 거리감 등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영등포서 같은 성추행 사건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경찰 내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더욱 철저히 하고 사건 발생 시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이 교수는 “20년 전인 경감 시절 동료 경찰이 나를 ‘여사님’이라고 부르더라. ‘왜 여사로 부르느냐’고 말했더니 ‘대통령 영부인도 여사라는 호칭을 쓴다. 당신을 예우해서 쓴 최고의 존칭어인데 뭐가 잘못됐느냐’고 하더라”고 일화를 전했다. 이 교수는 또 “수년 전 지방 청장으로 있을 때도 남성 총경이 여성 경감에게 ‘여사’라는 호칭을 쓰고 그걸 또 존칭이라고 생각하더라”며 “양성평등 문화 도입은 경찰의 큰 숙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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