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로 영업 중단 결정 “신속한 대처 돋보였다”
면세점 사업권 따내려 현대와 합작법인 설립도
한복 사태 논란, 택시기사 배상 사건서 공감 능력 보여줘

 

5월 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5성 호텔 1호 현판식’에서 이부진(왼쪽 두 번째)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5월 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5성 호텔 1호 현판식’에서 이부진(왼쪽 두 번째)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 CEO가 드문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재벌 딸’ 이미지를 벗고 경영 보폭을 확대하고 있어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내 첫 5성급 호텔’ 타이틀을 거머쥔데 이어 재계 빅 매치인 서울 면세점 사업에서도 저돌적인 추진력을 보여 그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신라호텔 한복 문전박대 사건 당시 발빠른 사과로 여론을 진화한 데 이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가 제주호텔에 투숙한 사실이 드러나자 신속하게 영업 중단 결정을 내려 위기 관리 능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주도는 6월 17일 밤 중앙대책본부로부터 141번 환자가 신라호텔에 머무른 사실을 통보받고 호텔에 영업을 자제해달라고 통보했으나 이 사장은 18일 제주로 내려가자마자 한 발 더 나아가 영업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호텔 영업 중단으로 인한 하루 손실액은 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22일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사태가 발생한 후 600명에 가까운 직원을 사실상 격리조치하고 서울에서 감염내과 전문의를 초빙해 자체 조사와 방역을 했다”고 말했다. 원 지사는 “기업이 가장 극단적인 결단인 영업정지 조치로 고객들에게 공익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줬다”며 “삼성서울병원이 호텔신라처럼 협조했다면 메르스 사태를 훨씬 빨리 진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말 특허 신청 결과가 발표될 예정인 서울지역 면세점 선정을 앞두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손잡고 합작법인을 설립해 눈길을 끈다. 새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이병철 선대 회장 때부터 경쟁 관계였던 현대가와 손잡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 사장의 면세사업 확대 과정은 그야말로 저돌적이다. 지난해 10월 마카오공항과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사업권을 따냈고, 올 3월에는 세계 1위 기내 면세점 사업자인 미국 디패스 지분 44%를 1억500만 달러(약 1176억원)에 인수했다. 2011년에는 인천공항 면세점에 루이뷔통을 유치했다. 

경영 실적도 상승세다. CEO에 취임한 이후 호텔신라 매출은 2010년 1조4524억원에서 지난해 3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다. 해외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연말에는 중국 국영기업인 시틱그룹(中信·CITIC) 사외이사로 선임됐고, 지난 2월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아시아판이 발표한 ‘아시아 파워 여성 기업인 50인’에도 선정됐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현대산업개발과 합작 법인을 만든 데서 알 수 있듯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집요한 추진력, 결단력이 돋보인다”며 “3남매 중 이건희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평했다. 

특히 따뜻하고 사려 깊은 소프트 리더십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호텔 정문을 들이받은 택시기사의 배상액 4억원을 면제해 주고 치료비까지 지급한 일로 대중의 호감도가 상승했다는 지적이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요란스런 리더십은 아니지만 철저한 프로의식과 함께 작은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는 여성 특유의 세심한 경영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특히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주목했다. 남성 CEO와 달리 대중은 여성 CEO에게 배려와 공감을 더 기대하는데 이 사장이 그런 면에서 돋보인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남성 리더는 배려와 공감이 다소 부족해도 본전이지만 여성 리더는 굉장히 마이너스가 된다. 이 사장은 대중에게 소탈한 이미지로 평가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사장이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귀족 경영자’ ‘아버지의 후광을 얻은 딸’ 등의 편견을 깨려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박 대표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지금은 경영 실적이 좋지만 시야를 더 넓혀 글로벌 경영에 힘써야 한다”며 “지금보다 더욱 과감한 사업 영역 확대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같은 1세대 여성 기업인이 은둔자적인 신비주의 행태를 보인 것과 달리 요즘 경영 일선에 나온 재벌가 딸들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국민과의 소통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라며 “더욱이 호텔 서비스업은 고객들과 끊임없이 만나야 한다. 언론에도 적극 모습을 드러내 대중과 접촉하고 교감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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